박참봉은 오늘, 유난히 유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가 이 고을에 이사와 근 이십 년 동안 큰일 작은일에 훼방을 놓고, 앞으로 뒤로 방망이를 들던 박리균네 형제가, 인제 드디어 박참봉한테 완전히 굴복할 날이 왔기 때문이다.
두뭇골 집 사랑에서―---형걸이 모친 윤씨는 일찌감치 자리를 떠나 안방에서 평양 영감이 잡아들여 온 물고기를 조리는데, 간을 맞추어 장을 두어 주고 갱엿을 청간에서 내다가 간장이 한소끔 끓어 오를 때에 넣으라고 종에게 이르고 있었고, 박참봉은 혼자 자릿속에서 새벽잠에 아직 취해 있었다.
그런데 대문 밖에서,
"박참봉 어른 기침하셨쉥까."
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가 박리균이가 아니면 그의 동생일 게 분명한 건, 어제 저녁에 사랑에 와서 대충 이야기를 맺고, 내일 아침 박리균이든가 박성균이를 직접 들여보내겠노라고 한, 중간에 선 김생원의 말로써 짐작할 수 있었다.
박참봉은 부르는 음성을 듣고, 그게 누구라는 걸 짐작하고도 인차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삼남이란 놈이 대문간에 나갔다 와서 전갈을 할 때까지 베개에 머리를 눕힌 채 있었다.
그는 힘들게 일어나서 옷을 대충 주워 입고 자리를 부욱, 요포단을 가운데로 접어서 뒷목으로 밀어 놓은 뒤에, 사랑문을 열어서 공기를 뽑았다.
"들어오라구 그래라."
이렇게 이르고 그는 버릇인 기침을 두어 번, 그 다음엔 자리끼 숭늉 남은 걸로 입을 가시어 타구에 뱉었다. 아랫목 보료 위에 돌아와 담뱃대를 들어 소털 같은 기새미를 담으려는데 박리균이가,
"너무 일러서 이거 안됐소외다."
하며 들어온다. 오십이 넘어 감투 쓴 머리에는 흰 털이 많이 섞이고, 궁이 끼고 초라스럽게 생긴 갤즘한 상에는, 잔주름과 노란 수염이 채신머리없어 보인다. 이 상판때기가 술이 얼근하면, 연신, "성씨는 박귀성의 처니 성논산의 장녀라"만 되풀이하니, 과시 볼 만한 일일 게라고 박참봉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어서 들어오십시오. 머, 이번에 또 큰 배포를 가지셔서, 아무려나 시세에 따라 남보담 먼저 손을 써보는 것두 괜찮은 일이웬다. 담배나 한 대 붙이우다."
부스럭부스럭 두루마기 속에서 주머니를 만지는 품이, 집문서를 꺼내려는 게 분명한 걸, 박참봉은 또 한번,
"자 한 대 붙이우다."
하고 기새미 담은 옥초합을 밀어 내놓는다. 그러니까 박리균이도 주머니 만지던 손을 빼서, 담배를 한 대 담는다. 옥초합을 밀어 놓고, 놋화로에다 긴 담뱃대를 박고 뻐끔뻐끔 빨아 올린다.
"어젯밤 김생원한테서 대강한 이야기는 들었는데, 머 거기에 더 다른 말씀은 없겠습지요."
담뱃대를 물고, 문갑 옆 사방침에 의지하여 척 한마디를 한 뒤에, 다시 이어서,
"두 집문서에, 사백 냥, 육자 변으루."
하고 이야기의 요령을 추려서 말하니, 박리균이는 물고 있던 담뱃대를 급작스레 쪽 소리가 나게 입에서 뽑고, 안 나오는 웃음을 노란 수염 오라기 옆에 그려 보면서,
"머 틀릴 리가 있가쉥까."
하고 저보다 여남은 살이나 아래인 박참봉에게 껀듯 머리를 숙이듯 한다.
박참봉이 쇠를 들고 뒷벽장문을 열려고 일어서는데, 박리균이는 주머니에서 집문서 두 장과 표 쓴 걸 내놓느라고 앉은 자리에서 아무적거린다.
문서와 표를 훑어본 뒤에, 박참봉은 사백 냥의 돈을 박리균이 앞에 내놓았다.
"그럼 집을 곧 떨어 고쳐야 단오에 쓰게 되겠군요. 그러구 이왕이니게루 방선문 비각두 떨어 고치기루 하지요."
이 마지막 말은 적지 않이 박리균의 귀를 간지럽게 할 줄 알고 하는 말인데, 오히려 그는,
"첨엔 그렇게두 생각해 봤는데, 내 집을 떨어 고치구, 또 내 아우의집두 대강 고칠 곳이 많아서 돈이 자랄 것 같지가 않구만요. 그래 비각 같은 건 차차루 하구, 우선 두 집에 달린 열 넘는 식구가 살구야 볼 일이 아니웽까."
하고 자기를 완전히 죽여 버리듯이 박참봉의 말에 빌붙고 만다.
"암 그 다 이를 말씀이웽까. 비각이 밥 멕여 주는 건 아니닌 게루. 아무려나 생각은 잘하신 생각입네다. 이제 종차루야 객줏집두 새법을 좇어야지 마방을 가지구야 마바리꾼이나 재웠지, 어데 점잖은 손을 맞을 수가 있쉥까. 신작노두 나구, 인제 평양과 원산 새에 길이 열리구 볼 지경이면, 아마 점잖은 객이 많이 들릴 게구, 지금 칭량사(測量師)나, 모두 이런 신식 양반들이 통히 이 큰 객주에 들게 될 게 아니웽까."
아무려나, 처음은 적지 않이 마음이 불쾌한 대로 하는 수 없이 김생원을 이 집에 보내 돈 교섭을 시켰을 값이나, 이왕 이리 된 바에는 별수없는 일이었다. 겉으로라도 기쁘두룸해서 물러 나갈밖에, 뒷일을 위해서는 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박리균이도 단오에 열리는 대운동회를 기회삼아 제 집을 떨어 고쳐 신식 여관을 차리고, 동생 성균네 집은 그래도 좀 성성하니 그대로 낡은 곳만 고쳐서 마방과 국숫집을 차려 보자고, 형제간 성론이 되어 돈을 내려고 할 때, 처음부터 박참봉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집 저집 다녀 보아도 집을 잡고 돈을 줄 곳은 없었으나, 끝으로 나카니시네 집에서는 틀림없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운동회 앞두고 잡화상을 부쩍 늘릴 생각인지 돈이 바르다고 거절을 당하여, 결국 하는 수 없이 박참봉에게로 사람을 보내 본 것이었다.
박참봉은 박참봉대로 딴 배짱이 있었다. 종차론 여관이나 잡화상 같은 것이 성해 갈 눈치가 뻔하지만, 제 손으로 그런 걸 벌여 보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걸 남보다 먼저 손쓰는 편이 결국 이긴다는 것도 또한 뻔한 일이고 보니, 구차한 일은 남에게 시켜 놓고 자기는 뒤에서 실권만 잡아 두는 게 어느 모로 따져도 영리한 계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여관 같은 걸 차려 놓겠다면, 손해나지 않을 정도로 돈을 융통해 주겠다는 것이 박참봉의 본배짱인데, 마침 날아 들어온 불벌레가 박리균네 형제다.
그래 그는 두 집 문서를 잡고, 그 중의 한 채는 단오 전에 곧 떨어 고칠 것을 약조로, 그편에서 요구하는 대로 한 푼도 깎지 않고 알돈 사백 냥을 돌려 주기로 한 것이었다. 여관이 잘 되면 잘 되는 만큼씩 변리를 물어 가느라 바쁠 것이요, 생각대로 잘 안 되면 일이 년 안짝에 집을 뺏기고 바가지쪽을 차게 될 판이다. 그야 어찌 되었건, 박참봉으로서는 무엇으로든지 한번 박리균네 형제를 꿇려 엎으려고 별러 오던 참이다.
박리균이를 보내고 나서, 그가 만족하여 아침 밥상을 든 것도, 과시 까닭이 없지 않진 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쾌한 일이 뜻밖에 불쑥 생겨난 뒤에는, 가끔 또 불유쾌한 일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튀어나오는 것도, 살아가노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일인 성싶다.
박참봉이 아침을 먹고도 한참 동안이나 두뭇골 사랑에 앉아서, 문서를 정리하고 표를 뒤적여서 채국채국 꿰매 간직하고, 어젯밤 김생원과 먹었던 술찌꺼기를 터느라고 밀수를 타서 시원하니 배를 씻은 뒤에, 오늘은 제법 날이 따가우니 자리 그물이나 한떼 들고 평양 영감과 매생이나 강 위에 띄워 볼까나-―-- 이렇게 척 기분을 돋우면서 감투 바람에 두뭇골서 큰집 사랑으로 나왔던 것이다.
마당엘 들어서니 평양 영감이 그물을 추녀 끝에 널고 있다가,
"날새 안녕하시웽까."
하고 인사를 한다.
"낮에 어데 넘은 강에나 가볼까요."
박참봉은 영감을 위로하느라, 얼마 전부터는 깍듯이 예를 하였다.
"나리께서 자리를 치시구, 절랑 어데 쏘가리나 좀 낚아 봅세다. 잠수를 했으믄 쏘가리놈이나 찔러 내겠던 걸, 늙어서 건 못 해두, 돌꼬미나 미끼해서 어데 ꅙ 놈 낚아 봅세다."
아마 평양 영감도 박참봉의 유쾌한 낯을 대하는 건 기쁜 일임에 틀림없는가 보다.
담뱃대를 물고 박참봉은 마당을 한번 휭하니 돌아본다. 연자간으로, 곡식이 가득하니 들어가 있는 토굴 앞으로, 외양간으로 가서 말을 한참 들여다보고, 그 다음은 다시 이쪽으로 돌아서 바자를 넘어 파종해 놓은 나무샛과, 잎이 파란 과일나무를 바라보고, 뒷대문께까지 갔다가 다시 되짚어서, 사랑 마당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모두 평온하다. 소는 밭갈이를 나가고, 노새는 연자간에서 쌀을 찧고, 그리고 재지풍이 옆에는 두칠이 처 쌍네가 수건을 쓴 채 겨와 먼지에 싸여서 여전히 일을 하고―---그래서 그는 유쾌한 김에 중대문을 들어가 안마당을 돌아보는 것이다. 며느리들이 인사를 한다. 큰댁도 인사를 한다. 손주란 놈이 뿌르르 뛰어나온다. 그는 아이를 좀해서 안아 주는 성질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인 일인지 성기가 걸어나오는 걸 鎗큼 들고 또 한 대문을 들어가 뒤뜰 안으로 간다. 가시 울타리 앞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고, 그 밑이 대감인가 토궁인가 무슨 귀신인가를 모신 볏집 주저리에 흰 백지를 매단 복낟가리가 있고, 그 주위로 창포가 한창 자라나고 있다. 머리칼로 꼰 빨랫줄이 중간에 장때기를 한 개씩 세우고, 이편 추녀에서 저편 추녀까지 살대처럼 건너가 있다. 움이 저렇게 저만큼 보이는데, 모란꽃과 함박꽃이 푸렇게 자라 나오고 있다. 늦은 봄에서 이른 첫여름으로 옮아 가는 계절의 태양볕은, 뜰 안에 쨍쨍하니 함뿍 퍼붓고 있다.
"이놈, 너 웬 밥을 이렇게 먹었노."
"뚱게 뚱게 뚱게뚱."
이렇게 손자보고 중얼대면서 박참봉은 다시 중뜰 안으로 나온다.
"에끼, 그놈 무거워 못 들겠다."
토방에다 성기를 놓으니,
"얘 성기 오늘 호사했구나, 하루바니한테 다 안겨 보구."
하고 형식이를 문턱에 세우고 앉았던 그의 할머니는 손을 너울너울 아이에게로 내미는데, 형준이 처는 부엌문에 있었다. 그들은 시아버지가 중대문을 나가서 없어지도록 그럭하고 서 있었다.
집 안팎을 한번 돌아보아, 모두 평온하고 흡족한 것을 제 눈으로 친히 본 뒤에, 박참봉은 더욱 만족하여, 오늘은 강 위에 매생이나 띄우고, 고기나 낚으면서 고추장 불림에 술이나 한잔 들이켜 보자고 내심에 생각하면서, 문갑과 장간과 벽장을 보살핀 뒤에 옷을 깡충하니 갈아입으려던 때이다. 맏아들 형준이가 조용히 할 말이 있다고 사랑으로 나와서 박참봉 앞에 꿇어앉는 것이다.
대님을 풀어서 버선을 바꾸어 신으면서,
"그래 무슨 말인지 해봐라."
'혹시 얼마 전처럼 또 잡화상 같은 걸 벌여 보겠다고 그러는 거나 아닌가, 만일 그렇다고 보면 박리균네가 집을 잡히고 돈을 내어다, 마방 대신에 커다란 여관 객주를 시작하겠다는 것까지를, 소상하니 말하여서 이제 일이 년만 그대로 집안일을 보살피고 있으라고 타이르리라.'
속으론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뜻밖에 형준이는,
"형걸이 혼사가 어떻게나 되어 가는가요."
하고 첫 허두를 시작한다.
'맏형 된 몸으로, 나이 차도록 장가를 들지 못한 아우의 혼사 걱정을 하는 건, 지당한 일이다. 그래 새삼스럽게 어데 좋은 규수래도 맞차운 곳에 생겼다는 말인가.'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보면서,
"지금두 거저 그러하구 있다."
하고 대답한다.
"머 맞차운 집에 규수가 없어서 그러는 겐가요."
"글쎄, 말하자믄 그렇다구두 할 수 있지만, 그래 어데 될 만한 곳이래두 있더냐."
"아니올세다. 너머 좋은 델 고르다가 시기를 놓치든가, 잘못이 생기든가 할까 봐서 하는 말씸이올세다."
"좋은 델 고르는 게 아니라, 정 너절한 데 피한다는 게 온당한 말일 게다."
여기서 박참봉은 말소리를 좀 낮추어 가며,
"너이덜과는 사정이 다르질 않냐. 어데 웬만한 데는 그쪽에서 잘 안 들을 것 같애, 멀찌감치 비쳐만 보구서 마는 일이 많구, 또 체면이 있으니 마구 처져 붙을 수두 없구. 그래 안즉은 거저 여기저기 비쳐만 보구 그러한 채루 있다."
형준이는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도 물러 나가질 않고 한참 동안 그럭하고 앉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방을 향하여, 고기사냥 갈 테니 점심 준비를 해서 매생이 맨 데로 가져다 두라고 이르려는데, 피끗 형준이의 얼굴을 보니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다는 듯이, 입주둥이를 약간 히둘거리고 앉았다. 그래서 다시 박참봉은 자리를 바로하고 한번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름이 아니오라, 형걸이를 그대루 두다가는 창피한 꼴을 보겠습너니다. 어젯밤 으슥해서 마당을 한번 돌아보는데, 형걸이가 두칠네 방에서 나오는 걸 봤습너니다."
단바람에 죽 일러바치고 형준이는 잠시 낯을 수그리었다. "마당을 한번 돌아보는데" 하고 간단하니 말하였으나, 그 한마디 속에 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만 곡절이 들어 있던 걸 생각지 않을 수 없었던 때문이다.
물론 박참봉은 이 말에 적지 않이 놀랐다. 아닌밤중에 두칠이 없는 쌍네 방에서 형걸이가 나오는 걸 봤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함인지는 설명치 않더라도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박참봉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형준이는 이러한 아버지의 태도에 기운을 얻었는지, 다시,
"그래, 제가 잡어 세우굴랑, 지금 혼삿말이 여기저기서 빗발치듯 하는데, 네가 몸 처신을 이렇게 하구 보면 어떻게 되겠느냐구 일렀습더니, 그는 잠자코 섰다가, 누가 뭐랬는가구 하는구만요. 그래 밤두 늦었으니 인젠 가 자라구 하구서, 두칠이 처보구 ꅙ 마디 기갈이래두 할까 했다가, 외려 덮어두는 게 창피가 덜할 것 같애서 그대로 내버려뒀습너니다."
박참봉은 여기까지 말하도록 잠자코 앉았다가 아들의 말이 떨어지자 곧,
"알갔다. 이전 네 일이나 나가 봐라."
하고 안문 쪽으로 터거리를 돌렸다. 또 무슨 말을 내친김에 좀더 늘어놓으려다가, 형준이는 아버지의 말에 좀 무색해져서,
"예."
하고 나직이 대답하곤, 푸시시하니 안뜰로 통한 문을 열고 나갔다.
형준이가 나간 뒤에 박참봉은 잠시 동안을 멍하니 앉았다가 바꾸어 입었던 옷을 다시 갈아입었다.
평양 영감이 재촉이나 하듯이 윗마루로 올라와서 방문을 벙싯하니 열어 보는 것을,
"난 또 갑재기 볼일이 생겨서 못 갈까 부외다. 내일이나 가보갔수다."
하고 말해 버린다.
박참봉은 지금 당한 일이 적지 않게 불쾌했던 것이다. 평양 영감은 얼굴에다 웃음을 띄면서 매생이 놀음을 재촉하려다가, 느닷없이 거절을 당하고 나서 어인 일인지는 모르고, 좀 메사해서, 방문을 닫았다. 그가 그물과 낚시를 들고 매생이죽을 둘러메려 할 제, 박참봉이 감투 바람으로 휭하니 대문을 나가는 걸 바라보고 속으로 혼자,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하고 생각해 보았다.
박참봉은 담뱃대를 뽑아서 휭휭 내두르며, 향교 골목을 돌아 밭샛길로 들어서서 두뭇골로 댓바람에 쫓아갔다. 물론 형걸이는 학교로 간 뒤이다.
그러나 박참봉이 지금 두뭇골 집으로 되짚어 오고 있는 것은, 형걸이를 불러 세우고 책망을 한다든가, 사실의 진부를 가리려든가, 뭐 그러기 위하여선 아니었다. 그러므로 형걸이야 있건 없건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대문을 들어서서, 그가 완전히 두뭇골로 돌아왔다는 걸 의식하였을 때, 금방, 제가 하고 있는 행동이 좀 채신머리없이 느껴진다. 그만한 일에 제가 고기사냥 가려던 걸 중지하고, 부리나케 두뭇골로 쫓아왔다는 건 생각해 보면 창피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들이 비복의 방에 들었다는 것―---그것이 가령 형준이 말대로 사실이라고 해볼 값이라도, 이렇게 큰 변이 난 것처럼 서둘러 댈 거야 없지 않느냐 말이다.
이렇게 생각이 가니, 그는 그대로 방 안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실인 즉 작은댁과 형걸이의 혼삿말이나 두루두루 급히 이야기해 볼 양으로 달려온 것인데, 그것 역시 급히 서둔다고 신통하게 잘 될 일도 아니고, 또 그다지 시각을 다툴 만한 일거리도 아니었다.
사실 박참봉의 이러한 저 자신조차 종잡을 수 없는 수상한 행동의 동기가 된 것은, 유쾌한 아침을 갑자기 흐리게 한, 그것에 대한 분통이었다. 형준이가 그런 걸 듣고 형걸이의 혼처를 너무 고른다느니 뭐니 하는 게, 마치 작첩(作妾)에 대한 무엄한 비평같이 들려서 그게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형준이의 말에 이러니저러니 타박을 하고 싶은 지향없는 격분이, 이렇게 그로 하여금 두뭇골로 통한 길을 부리나케 쫓아가게 마련해 버린 것이다.
그는 다시 마당을 휭 돌아 무어 잊어버린 거나 찾는 양,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다가 그대로 대문을 나와 버렸다. 그 다음은 누가 보면, 느지막이 두뭇골 집에서 조반을 먹고, 지금 행길 큰집으로 가는 길이란 듯이, 늘어지게 담배를 뻐금뻐금 빨면서, 왼손을 하나 주먹을 만들어 뒤꽁무니에 대고, 구룡교 옆으로 개울을 끼고 나와서 행길로 올라선 것이다.
평양 영감은 벌써 강으로 나가 버린 뒤였다. 그래서 곧 다래끼나 광주리에 점심을 담아 보내라고 이르고, 박참봉은 무심결로 자리그물을 한떼 더 들고 물역 뒷대문께로 나갔다. 그런데 채 뒷대문을 나서기 전에, 제 방에서 나와 토방으로 돌아드는 두칠이 처 쌍네를 만났다. 오늘 잡아 두 번째 보는 얼굴인데, 형준이의 말을 들은 뒤이라 쌍네의 얼굴이 아까와는 달리 보였다. 그렇거니 해서 그런지, 저편에서 낯을 붉히고 여느 때보다 더 머리를 숙이고 길을 비킨다.
"얘, 너 점심을 넣어 놨을 테니 매생이 있는 데루 니구 나오나라."
예사대로 이렇게 이르니,
"예."
하고 대답하기는 하나, 쌍네가 저쪽으로 사라져 없어졌을 때, 박참봉은 제가 지금 말만은 여전히 하였으나 속은 좀 주춤거리던 걸 되새겨본다.
'저게 처음은 종간나드니, 막서리의 처를 지내서, 인제는…… 그렇다. 인제는 셋째 아들의 정부란 말이다.'
이런 걸 생각해 보면서,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이 별로 형걸이의 못된 소행인 탓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일을 저질러 놓은 형걸이에게 급작스레 미움이 가든가 그렇진 않던 것이다. 강가에 나서면서는 박참봉은 벌써, 그런 지저분한 시끄러운 생각은 애써 털어 버리려고, 매생이가 있는 방수성 아래를 눈에 손을 얹고 먼발로 내려다보다가,
"페양 영감, 잠시 매생이를 돌려 붙이우. 난두 가치 갑세다."
하고 고함을 질렀다. 매생이는 기슭을 떠나서 고기잡이터로 막 여울을 훑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는 삿갓 쓴 머리를 소리나는 쪽으로 돌려 보고, 그것이 박참봉 나리라는 걸 알자, 아무 말도 안 하고 매생이를 궁개로 돌려 대며 다시 말뚝을 박은 기슭으로 저어 온다. 이것을 보고 섰다가 박참봉은 방수성을 내려서서, 어청어청 아래 청파니〔靑坡〕께로 향하여 걸어갔다.
"아니, 머, 일을 다 보셨습너니까."
하고 비로소 벌죽하니 웃으면서 한 손으론 꽉 매상죽을 붙들고 박참봉을 맞아들이는데, 그는 그물을 먼저 들여놓고 낑 하고 배 안으로 들어서면서,
"대강 다 봤수다."
하고 배 가운데로 온다. 다시 매생이를 떼려는 걸,
"가만있수, 좀 끓일 것과 술을 넣으라고 했으니 인제 누가 니구 나오리다."
저만큼 방수성 위에서 아랫길을 잡아 쌍네가 광주리에 무얼 담아 이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해는 따가우나 바람은 비류강 위를 스쳐서 싸늘하다.
급작스레 쏘가리 생선국을 끓여 반주로 한 그릇 먹고, 박참봉은 얼근히 취해서 두뭇골 집으로 왔다. 어두운 지 한참 되는 초여름 밤인데 저녁때부터 날이 흐릿해 오더니 밤중 안에 비가 오려는지 공기가 제법 훗훗이 물쿤다.
사랑으로 들어오니 작은댁 윤씨가 등잔을 돋우고 자리를 깔아 놓고 기다린다.
"저녁은 머 잡수셨소."
"잡아 온 걸루 쏘가리 생선을 끓여 먹었지. 그래 참 고기 디레 왔던가."
"쏘가리 두 놈하구 지가리새끼 메기새끼랑은 끓여서 형걸이랑 주구, 모래무치랑 마지랑은 장조림을 해두었지요."
박참봉은 발을 뽑고, 자리끼를 부욱 끌어다 벌떡벌떡 마시는데,
"부주주하시거던, 오미자나 밀수를 타올걸요."
하고 말로만 텀을 한다. 그러나 박참봉은 물을 한참이나 마시고,
"형걸인 집에 있나."
하고 묻는다.
"좀전에 바람 쏘인다구 나가두군요."
"또 나가서?"
박참봉의 낯을 다소 언짢은 기색이 지나간다. 그러더니 곧 되짚어서,
"어젯밤은 어느 때에나 돌아왔나."
하고 묻는다.
"글쎄요, 자정 전이었겠지요."
윤씨의 대답에 박참봉은 아무 말대꾸를 않고 한참을 멍하니 등잔불만 바라본다. 아직 사십 전인 윤씨는 눈매와 자태가 그대로 이쁘게 젊은 것 같다. 다른 날따라 없이 찌풋한 영감이 어인 까닭인지를 모르고,
"어서 저고리랑, 이 감투랑, 좀 벗으시구 누우시구려."
하면서 감투를 벗겨 문갑 위에 놓고, 손수 저고리를 벗기고 또 허리끈도 끌러 준다.
"해가 따거운지 좀 타셨구려."
그러나 몸을 맡긴 채 박참봉은 자리에 누울 염도, 윤씨 말에 대답할 염도 안 하고 있더니,
"형걸이놈이 밤에 어데 가 노는지 몰라."
하고 느닷없이 형걸이 말을 또 묻는다.
"글쎄요, 저 학도덜끼리 어데 뫼여 놀든지, 교사네 집엘 가든지 그러겠지요."
박참봉은 자리에 누워 버린다. 그러더니 또 일어나서 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담배 붙일까요."
하고 묻는 데는 대답을 않고,
"청시울서 무슨 소식이 없었나."
하고 묻는다.
"오눌 저녁 해 넘어가기 전에 중매 여편네가 왔는데, 하는 말이 채 말은 안 뗐으나 될 성부르다구 하긴 합데다만, 원 색시나 가문이 맘에 들으야지요."
"왜, 그 집이 어드래서."
"어드렇다니요. 망조에 들어 기우는 집안이 아니웨까."
"망조에 들었거나 집안이 기울거나, 규수나 똑똑하믄 그만이지, 처갓집 국물을 얻어먹을 차빈가, 누가."
"글쎄, 세간이야 어찌 됐건, 규수가 똑똑하믄 그만이라지만, 처갓집두 너무 가난하구 보면 사사모사로 시끄럽지 않은가요. 그러나저러나 규수나 얌전하다믄 모르겠는데, 말을 들이니 질쿠냉이두 변변히 못 하구, 아이가 또 영리하질 못하다누만요. 게다가 또 궁합이 안 맞는다는가 부외다."
"궁합이 안 맞아? 그럼 그른 혼사지."
질쿠냉이를 못 한다든가, 생김새가 좀 영리칠 못하다든가, 한다는 것쯤은 어떻게든 우겨 대 볼 길도 있을 것이고, 더구나 사돈집이 쇠운에 들어서 세간이 기울어져 간다는 것 같은 건 소뱅이 문제도 안 되는 말이라고 재겨라도 보겠는데, 실소린진 몰라도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덴, 박참봉도 어이할 방도가 없었다. 그래 그는,
"뭐이 뭐인데, 궁합이 안 맞나."
하고 좀더 소상히 천착해 본다.
"겉궁합이 토끼하고 뱀이라서 맘이 덜 내키는데, 속궁합은 또 말할 수 없게 나쁘답네다그래."
이 말을 듣고 박참봉은 붙여 주는 담배를 몇 모금 빨다가 이어 윤씨에게 주고, 자리에 누워 버린다. 누비이불을 사뿐히 덮어 주면서,
"불을 끄리까."
하고 윤씨가 묻는 것을,
"오눌 밤 형걸이 둘어오거들랑, 인전 밤에 아여 밖에 나가질 말라구 일러두게."
하고 눈을 한번 감아 본다.
"아니, 왜요. 어데 못 갈 델 간답디까. 기 애가."
윤씨가 좀 실색한 빛으로 묻는다. 박참봉은 그렇게만 말해 두고, 사실은 깨우쳐 말하지 않으려고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그 녀석이 두칠이 처를 봐 댕긴다니, 원, 하구많은 계집 중에."
이렇게 말하고 이야기를 채 아물지 아니하니, 윤씨는 깜짝 놀라,
"그게 무슨 말씀이웨까. 형걸이가 막서리 처를 보아 당기다니, 어데서 음해의 말씀이라도 들은 게지. 차마 그럴 리야 있겠소. 그래 어데서 진정을 알아보셨나요."
"글쎄 그렇게만 알구 있어. 여러 말 옮길 게 없이."
박참봉은 몸을 한번 뒤채고 푸 술 냄새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윤씨는 무얼 말하려고 입술을 나불나불하며 그의 옆에 앉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