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 10

박참봉이 은산서 솔가하여 두뭇골로 왔다가, 행길에다 큰집을 사고 첩 큰댁을 갈라서 두 집 살림을 벌여 놓고 얼마 안 해서, 박리균네 동서끼리와 옆집 음해 잘하는 노파와 셋이, 선앙제터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두뭇골 작은댁에 들러서, 박참봉의 첩 윤씨의 얼굴 생김새를 보고 간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음해 잘하는 노파가, 윤씨의 얼굴을 치쳤다 내리쳤다 하던 끝에 그가 알아 온, 열일곱에 시집 와서 열여덟에 첫아들 낳았다는 두 가지 사실에다, 된 소리 안 된 소리를 잔뜩 부연해서 하는 말이, 박참봉 성권이가 한포락 적에 투전판에서, 남의 갓 시집 온 색시를 도적질해 업어 왔다고 훼방을 놓고 다녔다.
그때 이 고을 사람들은 원체 남의 음해 잘하기로 이름이 난 늙은 것의 수작이니, 뭐 믿을 만한 소리가 되겠느냐고 하면서도, 결국 일 종 시기하는 마음이 따라서 그대로 그 말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 뒤에 다시 그의 내력을 조사해 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사실과 어금비금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을 것인데, 십 년, 십오 년, 이렇게 살아가면서 아이들이 장성해 가고, 박참봉네도 점차 이 고을선 토박이 사람이 되어 가는 데 따라, 사람들의 호기심은 사라지고 이젠 다시 윤씨의 경력을 알고자 하는 이조차 없어졌다.
윤씨는―---그의 아이 적 이름은 탄실(誕實)이었다―---사실 열여섯 났을 때 순천(順川) 고을로 시집을 갔던 적이 있었다. 그의 친정은 자산(慈山) 고을서 오 리 가량 시골로 들어간 곳에 있는 파평 윤씨(坡平 尹氏)로서, 처음은 집안도 훌륭하고 세간도 넉넉해서 행세하는 집안이었으나, 말년에 쇠운이 들어서 집안은 갑자기 기울어지고 역참(逆慘)이 잦아서 그만 말 아닌 형편이 되어 버렸다. 친정의 불운을 지니고 시집을 갔었던지, 그가 시집 가 반 년이 못 되어 새서방이 장마 났을 때 창말 앞으로 반두사냥을 나갔다가, 거센 물결에 휩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본시부터 시어머니와 새가 나쁘던데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보니, 왕신이 붙어 왔다고 비양청 소리가 높고, 집안이 모두 삘기 뽑듯 하는 바람에, 세간을 둘러 싣고 순천서 자산 친정으로 돌아와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친정에는 늙은 부모와, 올케가 아이 둘을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오라비는 연전에 상한으로 좀 앓다가 급작스레 죽어 버렸다. 대감이 동했다나 무슨 왕신이 동했다나 해서, 지난 가을에도 큰 도야지를 잡고 굿을 하고 철철이 토사를 하건만, 집안은 바로서지 않고 세간만 점점 줄어들었다. 양주의 희망은 딸 아래로 하나 있는 열 살 난 아들과 손자 오뉘가 있을 뿐인데, 며느리의 청상처럼 혼자 늙는 것도 보아나기 거북스러운 터에, 이번엔 한번 더 덮쳐서 과부 된 딸까지를 한 집에 두고 속을 썩여야 할 판이었다.
딸 탄실이가, 농바리를 싣고 초라한 보교를 타고 대문을 들어서는 날 저녁, 어머니는 방 안에서 울기만 하고, 아버지 윤초시는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종일토록 술을 마시느라 집에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집안이 불편하려니 시누이 올케, 두 과부끼리의 새가 또 그렇게 알뜰치를 못했다. 같은 팔자에, 함께 서로 위로하고 도우면서 살아갔으면 좋을 것이, 성격인가 성질인가가 서로 틀려서 하나는 우들푸들하고, 또 하나, 탄실이는 나이 아직 열일곱이니 철인들 뭐 제대로 들었겠나마는, 포돌거리고 용졸거리는 편이어서, 같이 부엌에서 나돌다가도 가끔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말썽이라야 별반 큰일로서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찌갯거리나, 행주질이나, 부침개질이나, 또 바느질감 다루는 것 같은, 세세한 일거리로 의견이 맞지 않아 가지곤, 처음은 뭐라고들 쏭알거리다 그 다음은 서로 새프드름해졌다가, 무슨 딴 트집이 생기면 이어 언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고선 종시 어머니의 귀에까지 들어가 큰말이 나오고, 그러다가 어찌 되면 늙은 아버지 윤초시의 귀에까지 가서, 집안이 발끈 뒤집히는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가뜩이 화가 나서 마음을 붙잡지 못하던 때에, 안에서 소동이 튕겨 나오고 보면, 윤초시는 그리 잘지는 않으나 바짝 성미를 돋우어서 높은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다된 세상 잘 되긴 파이니, 모두 다 제각기 집을 떠나고 말자고 고래고래 야단을 부렸다.
'메누리 성화 딸 성화를 무슨 등이 빠질 염병 앓을 녀석이 보아 간다느냐'고 '너이년들이 집안을 옳게 만드는 년들이거들랑, 항우 같은 샛서방덜을 잡아먹구 청승맞게 소년 과부들이 됐겠느냐'고 마지막에는 할 말 못 할 말을 가리지도 않고 입으로 나오는 대로 주워섬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바탕을 고아 대고, 어디 또 술을 마시러 나간 뒤에는, 어머니가 안방에서 지청구를 올렸다. 어머니는 절반이 통곡조로 나온다. 그럭하고 보면 올케는 제 방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안고 역시 울음을 올리고, 시누이는 윗방에 가 콜작콜작 눈을 쥐어짜고 앉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동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윤초시가 술이 취해 돌아온 뒤가 편안할 리 만무하였다. 그는 문을 들어서면서 손에 닥치는 대로 집어서 땅에 굴렸다. 세간일랑 홰까닥 부수어 버리고 모두 내 손으로 죽여 버리자는 것이다. 아이들 울음 소리가 집 안팎에 떠나가라고 높을 때에, 겨우 어머니는 영감의 몸을 붙잡아 떼어 말리고 며느리는 손을 빌며 죽을 죄로 잘못했노라 빌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생뚱한 어머니를 붙잡고,
"이년, 네년이 바루만 가르쳤으면 집안이 이럴 수가 있능가. 당초에 네년이 낳기를 고약스레 낳고, 길르길 덜되게 길러서 집안이 망조가 들었다."
하고 고래고래 기왓골이 떠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예, 다 내 잘못이왼다. 그러니 어떡허겠소. 마음을 진정하시소. 아이들두 잘못했누라구 일후엔 채심하겠다니 오눌만 참아 두시소."
하고 어머니는 설설 기면서 영감을 겨우 자리에 눕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탄실이가 소년 과부가 되어서 친정살이를 해가며, 집안에 적지 않게 염증을 바치고 있을 때, 하루는 사랑에 시퍼렇게 젊은 박성권이가 찾아왔다. 성권이 아버지 박순일이가 다섯 해 전에 삼백 냥을 육자 변으로 지은 것이, 하나도 세음이 되지 않았다고 그 돈을 회계하고자 찾아온 것이다.
그때 박성권이는 아직 은산 있었고, 그의 아버지 순일이가 아편으로 인연해서 평양서 객사를 한 지 일 년 뒤이었다. 순일이가 죽기 전 몇 해 동안 주색으로 아편으로 재산을 탕진해 버리고, 성권이가 스무살이 될락말락한 때 집안을 상속했으나 남은 거라고는 채권(債權)이 얼마 있을 뿐이었다.
열아홉 수가 나빠서 아직도 앞이 청청하던 아버지 순일이를 객지에서 잃었다고 간혹 사람들은 말하였으나, 박성권이나 그의 가족들로 보면, 끝끝내 자식에게 성화를 시키지 않고 그런대로 그만큼 해서 세상을 떠나 준 것이 오히려 다행하다 할 것이다. 남들이 들으면 욕할 말로 성권이나 그의 아내 최씨나가, 아버지 순일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떤 종류의 안도를 품었다는 것이 근경에 가까운 말일 것이다. 사실 얼마 아니 남은 채무자를 찾아다니며 그것마저 말끔하니 싹 씻어 거두어서, 그 껌뎅인가 하이얀 가룬가 한 놈의 약값으로 들이밀었다면야, 장례비조차 없어져서 시체는 거적 장사를 겪고, 남은 가족은 당분간일망정 바가지쪽을 차고야 말았을 것이다. 제아무리 박성권이란들, 소도 디딤발이 있어야 언덕에 오른다고, 맨주먹 둘을 달랑하니 쥐고 나서서는 어디 돌려 대고 발자국도 떼놓지 못했을 것이다. 평양서 시체를 모셔다가 뫼를 쓰고 일년상을 치른 뒤, 문서를 추려 들고 박성권이는 채무자를 쫓아 돌았다. 아버지와 달라서, 포악하고 아귀통이 센 그는 사정없이 채무자를 닦아 세웠다. 아버지라면 낯이 있고 의리가 있어 차마 못 할 짓을, 그는 눈을 내려감고 막무가내라고 닥치는 대로 해냈다.
이렇게 해서 박성권이는, 자산 파평 윤씨네 이 집에도 찾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성권이는 아버지보다도 연세가 지긋한 윤초시를 사랑에 들어서자 대번에 후려 놓고 보았다.
"그래,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이렇다하는 조상 한마디 없고, 그런 무지몽매한 행동이 어디 있단 말요."
사실 윤초시는 이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제 집안에 참변이 잦고 재앙이 떠날 날이 없어서 경황도 없었지만, 박순일이의 아들이 아직 연소하여, 제 아비 순일이처럼 양순하고 보면, 별반 채무 독촉도 안 하리라고 태평하니 생각했던 것이, 제 집에 발을 들여놓고 통성한 뒤에 대뜸 하는 말이 이 말이니, 그러잖아도 정신이 나간 둥했던 윤씨가 질겁을 한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글쎄 여보게 내 사정말을 좀 들어 보게그려."
이렇게 윤초시가 말 허두를 내다가 박성권이의 기색이 온당치 못한 것을 보곤 이어 말투를 고쳐서,
"바루 춘부장한테 내가 돈을 얻어다 쓰던 그해에, 금점인가 뭔가가 아주 쫄딱 망쌀이 지지 않었겠소. 그렇게 된 다음부터는 어찌 된 세상인지, 머, 내 집안 말 이렇게 털어놓구 하기두 부끄러운 일이지만서두."
하면서 사정을 말하기 시작한다.
"먼저 내 작은아들놈이, 장가들 달에 등창났다구, 장가를 앞두구 설랑, 덜싹 그렇게 되고 말드니, 그 다음은 큰아들놈마저 이리 되고, 마즈막에는 갓 시집갔던 딸년마저 남편을 앞세우고 내 집에 돌아왔으니…… 자, 이렇게 집안이 아주 마지막 망조가 들고 보니, 어데다 낯을 들구 문 밖에 나가기나 하겠소. 그래 두문불출을 하구설랑, 난두 밖에 나가지 않구, 또 찾어오는 사람두 될수룩 피하구, 이래서 아주 딱 세상관 담을 쌓고 지내 오질 않었겠소. 내가 돌아가신 춘부장 어른과야 의리로 보나 뭘로 보나, 그런 일이 생겼다문야 당장 좇아가, 참 대소 범절을 왼통 맡아 치러두 과하다 하진 못할 겐대, 내가 그만 환장을 했었구려. 아니 참 내길래, 여태 목숨이라고 이걸 붙잡고 살어 나가지, 웬만한 이라면야 벌써 구구하게 이러고 있을 린들 있겠소. 그러니 머 박재장께서두 그걸 언짢겔랑 애여 생각질 마시굴랑 춘부장 살어 계실 때나 조곰두 다름없이……."
그러고는 안 나오는 웃음까지 주름 잡힌 얼굴에 그려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방갓을 쓰고 앉았던 박성권은, 그의 얼굴은 눈 붙여 보지도 않고,
"아시다시피 우리가 지금 누구 사정을 한가하니 듣고 앉았을 처지가 못 되는 것이, 선친이 그럭허시다 세상을 떠나신 뒤, 내가 오죽하면야 이 모양을 하구서 남의 사랑을 찾아다닐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머, 조상을 했너니 안 했너니 따위는, 거야 말루 지내가는 말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겠소. 나 역시 잔뜩 쇠운에 든 집안을 맡어 가지구 남의 구구한 사정인들 모를 리야 있갔쉥까. 아니할 말루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구. 그러니깐두루 조상을 오느니 뭐 이런 따위를 가지구야 어데 이러니저러니 할 건덕진들 되겠습니까. 무철한 맘에 괘씸히 생각이 됐던 걸, 그대루 터져 논 게 그리 된 게니께루. 그러나저러나 저두 안즉 궤연을 모시고 있는 몸에, 오래 타처에 와서 묵을 수도 없는 터인즉슨, 묵은 조를 한번 뒤여서 세음이나 보게 해주셔야 하겠수다."
박성권이의 말은 추상처럼 윤초시에게는 냉랭하게 생각이 되었다. 제 애비와의 친교를 보더라도 존장에 대하여 이럴 법이 없을 텐데, 아무리 채권자이기로니 포악스런 언행이라고 괘씸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빚진 죄인이란 말처럼 그는 노염이나 분통이 나는 걸 숨기고 어디까지나 이 젊은 놈의 마음을 농간해서, 그걸 풀어 놓도록 힘쓰는 외에 별 방도가 없던 것이다.
"글쎄 온, 아까 말씀 올린 걸 또 되풀이하는 것만 같지만, 내 신상이 지금 이 형편이 됐으니, 아까 박재장 말씀대루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어데 좀더 액운이 물러가고 형편 몰리는 게 페일 때까지, 참, 이런 말씀 올리기두 미안스럽기 짝이 없지만, 어떻게 좀 사정을 랑, 좀……."
누가 보기에도 창피하리만큼 윤초시의 입과 눈가장엔 비굴한 표정이 떠돌고, 그의 반백이 된 머리는 저절로 굽신굽신하였다. '좀' 소리를 자꾸만 되씹고 앉았는 품은, 박성권이 눈에도 참말로 보기에 난처하였다.
그래서 애써 그의 얼굴은 보지 않기로 하고, 무어 미리부터 생각해 갖고 온 바를 쪼루루 외어 바치듯 한 뒤에 위선 자리를 털고 자산 고을로 들어가서, 누구든가 앞에 설 사나이를 다시 들여보내, 어떻게든 작정했던 대로 실행을 할 채비를 차렸다.
"글쎄 이러쿵저러쿵 할 거 없이 사 년하구두 일곱 달 치를, 육자 변으로 일 년에 한 번씩 표를 된 셈치고, 회곌 놔보구레. 들으니께루 안즉두 윤초시 집엔 밭두 있구 집두 남었다니, 아무것두 없는 맨 건달판이라믄 몰라두, 지닌 게 있으면서야 남의 빚 못 갚겠다구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다 회곗조를 깨끗허니 해치우굴랑, 그 댐엔 또 누구든 중흥하는 편에서, 서로 도와 주게, 이렇게 하는 게 일의 순조가 아니갔쉥까. 자산 고을 가서 볼일이 좀 있으니깐 밤에 사람을 보내든지, 내가 나오든지 하오리다. 나는 나대로 회계한 게 있으니께루, 자알 어데 바루 문서를 살펴보우다."
이 말이 떨어지자 박성권은 불쑥 일어선다. 윤초시가 머리를 들지도 못하고 박성권이의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새하얗게 낯이 질려서 따라 일어섰으나, 입술을 파르르하니 떨고 있을 뿐으로 한참 동안은 말도 변변히 못 한다. 방갓 쓴 박성권이의 뒷몸집이 대문으로 없어진 뒤에야 혼자서,
"이런 변이 있나."
또 한참 만엔,
"이럴 수가 세상에 있나."
그러고는 푹 바람벽에 기대 앉은 채, 정신이 빠져나간 것처럼 어릿어릿하여 눈을 감고 있었다.
윤초시 딸 탄실이는 사랑에 방갓 쓴 손님이 온 건 알았으나 그게 어인 사람인지는 알 턱이 없고, 전날 같으면 절게든가 막서리든가를 시켜서 물을 길을 것인데, 이즈음은 시누이 올케 간 누구나가 손수 두레박을 들고 물동이를 이지 않으면 안 되는 때문에, 그날도 대문 밖으로 나와서 자산 고을로 통하는 길 어구, 커다란 버드나무가 선 우물가에 나가 물을 길어 갖고 오던 참이었다. 부엌에서 직발 우물로 통하는 뒷문이 있어, 사랑 앞을 지날 턱이 없으므로 바깥 손님에게 얼굴을 보인다든가, 그럴 리는 없었는데, 막 물동이를 이고 우물에서 서너 발자국 길 위로 나서다가, 대문에서 불쑥 휭하니 베로 만든 상복자락을 날리면서 나서는 방갓 쓴 손님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한 손으로 두레박을 들고, 또 한 손으론 겨드랑 밑까지 내보이도록 팔을 추켜 들어 물동이를 잡고, 입으론 또아리끈을 물고서 오던 이런 때에, 지금 막 저희 집 사랑에서 나오는 손님과 길 위에서 마주치게된 것이다. 탄실이는 눈을 내리깔았을 뿐, 어떻게 몸을 가눌지도 모르고 길 위에 딱 발을 붙이고 서 있다. 머리카락에 물이 흘러서 이마 위에 뾵거분하니 흘러내리지는 않았는가, 아니 앞가슴이 어떻게 면바로 아미어지기나 했는가, 치마폭은 제대로 아랫도리를 둘렀는가, 이런 걸 갈피갈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고 모양을 하고 방갓 쓴 사나이에게 관선을 당하고야 말았다.
박성권은 방갓 밑으로 차근차근히 마주선 젊은 여자, 지금 토실토실 볼편에 살이 오르는 것으로 미루어 열여덟을 넘을 것 같지는 않은 젊은 색시를 훑어보고, 가만히 길을 비키었다. 물동이가 방갓 밑을 스칠 듯이 지나가서, 그것이 윤초시 집 뒷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뒤, 그는,
'처녀는 아닌데, 그것이 아마 윤초시의 딸로, 바로 과수가 되어 친정살이를 한다는 그 여자이렷다.'
하고 생각해 보며 고을로 들어갔다.
그런데 윤초시는 사랑에서 한참 동안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대로 나가자빠져 정신을 잃고 까무러쳐 버렸다. 본시부터 들락날락한다던 그의 정신이 그만 아주 틀려지고 만 것이다. 집안이 온통 서둘러서 겨우 정신은 피어났으나, 그는 아무런 말도 자유로 지껄이지 못하게 몸이 아주 반편이 지고 말았다. 눈하고 입하고만 히물히물하고는, 손도 발도 그리고 말하는 것까지도 그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산 고을서 일볼 것이 있다고 하던 박성권이는 그날 저녁에 임풍헌네 집에서 술을 먹고 앉아서 윤초시 딸, 탄실이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물으며, 임풍헌에게 탄실이를 어떻게 할 수 없겠느냐고 상론을 하다가, 부엌 사람이 전하는 말로 윤초시가 급작스레 전신 불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권이는 적지 않게 놀랐다. 그에게 손끝 하나 어쩌지는 않았으나 윤초시가 전신 불수가 되도록, 기절을 했든가 정신을 잃었든가 한 직접 원인이, 그에게 있는 것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 재장이 그만 그 소년 과부한테 홀딱 반해 버렸단 말씀이오니까."
하고 껄껄 웃어 가며,
"그까짓 것쯤일랑은 염려두 마시우. 지금 그 집에서두 왓작 覑을 받혀 오구, 게다가 또 그 색시 가마 타구 시집가긴 인제 파이니, 어쨌건 내게다 맡겨만 두시소그려."
하고 떠들어 대던 삼십 활량인 임풍헌도, 윤초시가 전신 불수가 됐다는 말을 듣고는, 취해 오던 술이 금방 깨기나 하듯이 어안이 좀 벙벙해서 멀거니 성권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박성권이는, 저의 생명 같다고 추상같이 울려 대던 채권을,그대로 탄실이와 바꾸어 버리자는 생각을 먹을 만치 호기가 있었으나, 임기하여 웅변하는 재치도 갖고 있었다. 그는 이어 술상을 물리고 임풍헌을 남겨 두고 혼자서 윤초시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가 윤초시 집 사랑에 이르렀을 때에는, 사랑에는 다른 식구들도 나와 앉았다가 인차 물러가고 윤초시 마누라만이 병자 옆에 앉아 있었다. 윤초시 마누라는 낮에 이 방갓 쓴 젊은 녀석이 다녀가자 이런 변이 생겨난 것을 알고 있기는 하나, 처음부터 언성도 높이지 않고 도란도란 주고받던 이야기 끝에 일어난 일인지라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고 있으나 그때에 서로 손가락 하나 오락가락하지 않은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에게 미움이 가기는 했으나, 어인 영문인지를 몰라 가벼운 호기심 같은 것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대체로 윤초시 마누라나, 또 이 집 가족이나, 인근 동네 사람들이나는, 이렇게 윤초시마저 이 모양이 된다는 건 소뱅이 귀신이 발동한 것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굳이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미움이 가기 전에, 귀신, 말하자면 왕신이든가, 대감이든가, 성주나, 지운이나, 이런 게 동한 게라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우선 앞을 섰다.
"상복을 한 죄인이 이렇게 누누이 찾아와 미안하올세다."
하면서 좀체로 방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으려는 것처럼, 성권이는 마루 위에 있었다. 마루 위에 성권이가 올라선 것을 먼발로 희미하게 바라보던 아랫목 자리 위에 번뜻이 누운 윤초시는, 낯색이 좀 달라지며 상판때기가 수상하니 히물히물 경련하고 입 모습을 쭝긋거려, 삽시간에 표정을 자꾸만 번개처럼 바꾸며 돌아갔으나, 그것이 웃는 겐지, 노하는 겐지, 분해하는 겐지, 기뻐하는 겐지는 보는 사람마다 생각할 탓에 달렸었다.
"아, 윤초시 어룬께서 이게 갑자기 무슨 변이오니까."
이렇게 적이 슬픈 표정을 낯에 띠며 말하니, 윤초시는 성권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눈을 덥벅 감아 버리고, 그 다음은 어깨를 추면서 눈물을 흘린다. 필시 이 방갓 쓴 젊은 녀석에게 무슨 곡절이 있다고 그의 마누라가 생각하고 있을 때에, 박성권은 여전히 고즈넉한 표정을 낯에서 없애지 않고,
"갑자기 이 변을 당하셔서 대단히 놀랐었을 게라고 짐작됩네다. 저는 은산골 사는 박성권이라는 사람이온데, 제 선친이 바로 순박순(淳)자와 편안일(逸)자로 여쭙는데, 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너니다. 선친의 유언이 자산 윤초시 어른께서 사 년 전에 돈 얼마얼마를 돌려 쓴 것이 있는데―---"
이렇게 마루에 앉은 채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이 대목에서 뚝 끊고 잠시 윤초시의 얼굴과 그의 마누라의 낯을 번갈아 쳐다본다.
'인제는 영감이 기절을 한 까닭을 알겠다. 과연 이 박순일의 아들놈이 돈 채근을 와서 무슨 포학한 말찌더기를 한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기절을 하여 정신을 잃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고 윤초시 마누라가 생각하자, 금시에 슬픔과 미움과 원한이 뒤섞여 돌개바람 같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의 선풍이, 화끈 그의 얼굴을 지나간다. 이 표정을 슬쩍 바라본 박성권은 이어서 곧 다음 말로 옮아간다.
"약차 이만저만한 이유로, 그 윤초시 어른께서도 이 근경에 여러 모로 재산에 손실이 들었어. 그러허니 우리도 함께 기울어 가는 살림에, 본시부터 없는 것과는 달러, 있다가도 없는 것처럼 딱한 일이 또 어데 있느냐. 그런즉슨 일후에 내가 죽은 뒤일지라두, 만약에 윤초시 어른네가 다시 옛날처럼 큰 세상살이를 한다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렇지 못할 지경이면 나와의 친교로 보아서도 돈냥간을 가지고 어떻게 머 가박스리 그렇게 할 처지가 아니야, 하니 네가 친히 찾어가서 이 아비의 뜻을 전해 올려라, 이렇게 말씀이 계시고 세상을 떠나셨는데, 내가 미천한 몸으로 큰집을 이었고, 또 한편으론 궤연을 모시고 있는 몸이라서 먼길을 떠나지도 못하다가, 오늘 낮에 겨우 이렇게 댁을 찾어오게 되었던 것이올세다."
다시 방갓 밑으로 눈을 들어 윤초시 마누라를 쳐다본다. 그는 비로소 안심하는 빛을 얼굴 위에 내고, 지금까지 희미하게나마 원한과 미움이 가던 이 사나이가 결코 그럴 이가 아니고, 어쩌면 뒷날일지라도 저희 집을 돌보아 줄 그러한 사람이 될는지도 모를 게라는 생각을 가짐에 이르렀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나가자 윤초시가 곧 노전 위에 나가자빠져 버렸으니, 그건 또 어인 일일런가. 이렇게 아직도 채 풀리지 않은 의심을 눈과 눈썹 새에 약간 남기고 있는데, 박성권이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몸을 좀 도사리고 앉는다. 몸을 움직일 때에야 윤초시 마누라는, 손이 여적 마루 위에 앉아 있는 것을 깨닫고,
"아니 참, 내 정신이 빠져서, 어서 이 방 안으로 좀, 들어오시지요. 그리구 문일랑 닫으십세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여기두 좋다고 몇 번을 더 사양하다가, 박성권이는 방 안 윗목에 들어와 앉는다. 문을 닫은 뒤 박성권은,
"윤초시 어른께 처음 인사를 여쭙고, 또 선친의 생각하신 바가, 약차 이만저만하시다고 아뢰었더니, 그때에 무척 놀라시는 기색을 보이시고, 좀 어릿어릿하시는 것 같길래, 저는 인차 자산 고을에 볼 것도 있으니 그만 물러가겠노라구 아뢰지 않었겠습너니까. 그랬더니만, 그게 무슨 소리냐구, 내 집이 아무리 누추하나마 그럴 수가 있겠느냐구, 막 제 손을 끌어 앉히고, 피차에 이렇게 지낼 집안간이 아닌데 하시는 걸, 급히 다녀갈 길이라고, 그러시거들랑 잠시 동안 집안 이야기나 서로 나누자구, 이렇게 말씀을 올렸습지요. 그래 저로서도 그간 선친께서 타곳으로 떠다니시다 돌아가신 뒤, 미천한 제가 집이라구 맡아서 생도를 세운다는 게, 다행히 식구가 적어서 이럭저럭 지내는 가지만, 그게 이루 참 형언할 수 없는 역경을 맞은 게나 다름이 없습네다. 안즉 나이 있으니 우리야 머 어떻게든 못 살어가겠습너니까. 그랬삽더니 존장께서는, 아무려나 그렇다니 마음이 적이 놓인다구 말씀하시면서, 내 사정일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하다시면서 금점에 실패하신 뒤 가지가지 역참과 화환이 들어서, 대체 어인 변이 이럴 수가 있겠느냐구 그러시더니 적이 흥분하셔서 낯이 하얗게 질리신 채, 지낸 일은 그렇다 치고 종차루 이걸 어찌면 좋겠느냐구, 가령 내가 금시라두 세상을 떠난다든지, 노덕이 아차 하는 날엔, 무철한 것덜이 그대루 쪽박을 차고 나서는 판이 아니냐구. 그러시길래 저는 또 위안엣말씀이나마 그게 무슨 말씀이심너니까, 이 조카가 뼈가 성한 턱까지는 그럴 리가 있갔습너니까 했습더니, 제 손을 꽉 잡으시면서, 이렇게 고마울 게 없겠다구, 다른 것 다 말고, 무슨 순천 고을서 상배를 당하시구 돌아와 계신 아가씨가 계시다든가, 그 말씀을 누누이 하시두만요. 그래서 저두 그런 염려일랑 아여 마시고, 제에게 맡기시라구 이렇게 이야기를 맺구, 자 시각이 바쁘니 고을을 갔다가, 다시 또 찾어뵈올 날 소상한 말씀을 상론합자고, 그 길로 자산 고을로 들어갔던 것이올세다. 그때 어덴가 좀 신색이 달르신 것 같기는 했으나, 또 이런 변이 생길 건 미처 짐작도 못 했었는데, 참 이제 뭐라구 말씀을 올릴는지, 기여 제가 왔기 때문에 이렇게 되셨다는 걸 생각하니, 한 몸을 어떻게 바쳐야 옳을는지……."
잠시 허리를 굽혔다가, 윤초시의 마누라가 적이 감사해하는 표정을 보고는,
"그저 박복한 놈은 가는 곳마두 일만 저지르고 다니니 참."
하고 다시 한번 채쳐 본다. 그랬더니 윤초시 마누라는,
"원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다 그리 되실 팔자 소관이지요. ꅙ 년째 이 집이 받어 오고 겪어 나가는 액운이, 인자 아마 마즈막 고패를 도는가 보외다. 조상의 뫼를 잘못 썼든지, 전생의 무슨 업원인지, 대체 이럴 변이 어데 있갔소. 인제는 시금쪽해서 설움두 안 나구, 눈물두 안 나구, 아무런 일두 암찍하기 싫어서, 존신 섬길 생각두 없어지고 말었소. 성주가 동하셨다느니, 지운이 동하셨다느니, 대감님이 노하셨다느니, 왕신이 화를 내셨다느니, 그래 마즈막에는 무슨 살이 들었다고 살풀이까지를 해가면서, 굿이라, 경이라, 푸닥거리라, 토사라, 머 이 ꅙ 년간 장구 소리 끊은 적이 없건만, 세상살이는 날로 망조가 들어서 기울어 가니, 이게 대체 무슨 변이겠소. 인젠 입에 신물이 납네다. 아무 꼴 보지 않고 그만 목숨을 끊어 죽어 버렸으면, 이 이상 더 상팔자는 없겠는 걸 자식덜 생각을 해서 그럴 수도 없고, 그래 이걸 세상이라고 살아오자니……."
윤초시가 이때에 눈을 부릅뜨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고 몸을 뒤채듯 야단을 치니,
"아니 왜 이러시우. 글쎄 영감마저 왜 이렇게 날 성화를 시키려구 이러우."
하면서 이불을 덮어 주며, 미음 사발을 들었다, 밀수 그릇을 들었다, 약사발을 들었다 하면서 서둘러 보나, 모두 합당치 않다곤지, 그대로 안면 근육을 히물히물 떨고만 있으니,
"아이구 원통해라, 그럼 씨원히 뭐라고 말씸을 한마디 할 것이지, 이럴 변이 어데 있소."
하고 울음조로 나온다. 그랬더니 윤초시도, 기여 눈을 감고 쭈루루 낙숫물 같은 눈물만 볼때기로 흘린다.
이때 박성권은 의젓하니 몸을 일으키어 윤초시가 누운 자리께로 가서, 덤덤히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존장 어룬, 마음을 진정하시오. 그렇게 흥분하시믄 신상에 더 해로우십네다. 아무 염려 마시구, 또 부탁하신 말씀은 그대로 제가 뼈가 가루 되는 한이 있을지라두 실행하겠사온즉 아무 염려 마시구, 마음을 진정하셔서 몸을 고치셔야 안 합네까. 지금, 이 오마니께도 다 말씀을 올렸으니 염렬랑 아여 마시구, 푹 마음을 노시구 몸 치료를 하셔야 안 하겠습너니까."
하고 엄숙하게 위로조로 나오니, 말귀를 알아듣곤지 못 알아듣곤지, 윤초시는 그대로 눈물만 흘린다. 옆에 앉은 초시 마누라도 따라서 홀짝홀짝 울어 대면서,
"영감, 이제 다 이 재장한테서 자상한 말씀을 들었소와요. 뜻대로 할 터이오니 아무 염려 마시고, 하루 바삐 깨끗하니 탈을 놓아 주소고레."
한다.
"그럼 저는 고을 들어가서 볼일을 마저 보구, 또다시 떠날 길에 한번 찾어뵈옵구 가겠습너니다."
따로 누구에다 대고 하는 말이 아니고, 두 사람 윤초시 부부에게 아뢰듯 하면서 성권은 몸을 뽑듯이 하여 사랑방 문턱을 넘는다.
"이거 원, 저녁두 못 대접하구, 참, 이게 원 도리가 아니외다."
이리하여 박성권은 윤초시 집을 물러나와 그 길로 자산 고을 와서 하룻밤을 잤다.
그런데 윤초시는 새벽에 해가 치밀어 오를 때 기여 정신을 잃어, 다시 깨어나지 못한 채, 까무라친 게 영영 주검이 되고 말았다.
아침을 먹기 전 부고를 듣고, 박성권은 고을서 대강 장례에 쓸 물건을 사서 지고 상갓집으로 나가, 사흘 만에 장례를 치르고, 이어 윤초시의 딸 탄실이를 소실로 맞게 마련하였다.
그러나 박성권이가 탄실이를 소실로 맞고도 곧 은산 있는 저희 집으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전부터 잘살던 끄트럭이라 집이나 방은 넉넉하였으나, 아직 아버지의 삼년상도 치르지 못한 처지였다. 그래서 탄실이가 그 이듬해에 형걸이를 낳고도, 한 해를 지나 삼년상을 치른 뒤에야, 자산서 친정살이를 그만두고 겨우 은산으로 옮겨 왔다.
그 뒤에 곧 갑오년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이 끝나자 박성권은 솔가하여 지금 사는 이 고을로 이사를 하여 처음으로 두뭇골에 집을 세웠다.
열여섯에 까다로운 시부모 밑에서 시집살이를 했고, 그 다음은 친정살이를 삼 년 가까이 해본 뒤에, 작은집살이로 들어선 윤씨―---탄실이었으니, 어디서 한 번이나 남에게 고함을 치며 버젓한 살림을 가져 본 적인들 있었으랴마는, 두뭇골 와서 큰댁과 큰댁의 소생과 함께 작은집에서 볶아 댈 때처럼, 속을 썩이고 속 상하는 세상을 살아 본 적도 없었다. 원체 박성권이가 마누라나 첩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첩 큰댁 싸움에 참견을 하거나, 그럴 이도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첩 큰댁 간에 말썽 같은 게 생기도록 내버려둘 위인도 아닌 탓에, 작은댁의 대우를 받고, 서자의 취급을 받는, 윤씨와 형걸이만 억울한 세상을 살았다. 이즈막과도 달라서 서모에게는 오문절도 안 하던 그때 시속이라, 언언구구가 수모나 모멸 아님이 없었으나, 이에 대해서 단 반 마디의 대꾸조차 건넬 수 없는 처지다. 이런 생활이 일 년 이상을 계속되었다면 어떻게 그의 팔자를 영영 고치기라도 해야만 할 결심을 먹었을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본시 추근추근치 못한 성질은 올케와의 한부엌 살림에 적지 않게 누군누군해졌지마는, 아직도, 성미껏 해선 한바탕을 포달거려 보아야 시원할 것을 그대로 삭이려니, 하루 종일 골치가 지끈지끈 쑤셔 내는 적이 없지 않았다.
박성권이가 행길 거리에 집을 사고 큰댁과 그의 소생을 그리로 옮긴 뒤, 옹졸스럽기 짝이 없던 첩 큰댁 한집살이를, 이러나저러나 면하게 된 다음에야 숨을 내쉬고 제법 살림 같은 살림을 배포해 볼 수가 있었다.
집도 활짝 늘려서 앞마당을 갖춘 사랑도 세우고, 전에 쓰던 방은 대개 청간이나 토골로 고친 뒤 새로이 의젓하니 안방을 늘려서, 행길 큰집처럼 크지는 않으나, 무어 불편을 느낀다든가 그렇진 않을 만큼은 아담하고 청초해졌다.
비복도 거느리게 되어 부엌에 드나들 염려도 없어졌고, 영감은 거지반 이 두뭇골 집에 와서 자고 조반상을 받았으므로, 음식 시세나 그런 것도 결코 옹색을 느끼지 않게 채비를 차리도록 마련이 되었었다.
윤씨는 작은댁이거나 소실이거나 하는 아름답지 못한 칭호를 받을 값이라도, 인제는 제법 큰집을 도맡아 갖고 사는 어엿한 부인네가 되었다. 아직까지 자산서 살고 있는 친정에는, 박성권이가 얼마간의 재물을 지니게 해주어 재정상 교섭을 끊어 버린 뒤부터는 친정 걱정도덜고, 친정이라야 어머니는 그 뒤 얼마 해서 세상을 떠나고, 남은 건 남동생 하나이었는데 그는 평양 있는 먼 일가로 여각(旅閣)을 보고 있는 집에 가 있는 지 오래이므로, 인제는 그다지 생각을 쓰거나 그렇지 않아도 좋을 식구뿐이었다.
윤씨는 앞이 트이는 제 팔자를 과히 안심하여 느끼게 되었고, 이럴 수록 이게 모두 존신의 점지하신 덕분이라고, 저희 집 친정에서 어렸을 적부터 눈 익히 보아 온 대로 각색가지 귀신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안방 뒤의 복낟가리하며, 대문에는 수문장, 상기둥엔 성주, 작은 기둥엔 사방으로 지운, 청간엔 제석, 부엌에는 종왕, 방 안 천장 밑에는 손각시까지 모셔 놓고 사철로 토사, 때때로 굿과 푸닥거리, 선앙제며, 살풀이며 이루 들어 말할 수 없이 마귀를 섬긴다는데, 또 이 밖에 통선암에 불공이나 치성을 드리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그런데 어이 된 일인지 세존님이 노염이나 갔는지, 형걸이를 낳은 뒤에 다시 태기가 없어서 연년이 세존제를 지내고 칠성단 묻어 놓고 밤마다 물을 떠놓고 빌어 모시지마는 그 뒤엔 까막하니 소식이 끊어졌다. 처음 몇 해에는 거의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이 근경에나, 그것도 일 년에 몇 차례씩 겨우 방을 같이하는 큰댁이 딸과 아들을 낳아 보패와 형식이를 얻었는데 윤씨는 그 뒤 어찌 된 셈인지 자식을 가져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단 하나인 형걸이가 그래도 아들인 것, 그 아들이 생김생김도 출중하고 인물도 성글성글하여 사나이답게 생긴 것만은 윤씨에게 더없는 기쁨을 주었다. 어렸을 적엔 서당 아이들과나 또 큰집 형준이나 형선이와도 곧잘 싸움을 하였으나, 한 번도 그 애들한테 져보는 적이 없고 뒷날 말썽거리는 남겼으나, 그런대로 상판때기를 들지 못하고, 매나 얻어 건사하며 풀이 죽어 다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연세로 따져도 형걸이가 셋짼데, 서자라고 분수엘 넣지 않고 형식이를 셋째라고 부르는 대신, 그를 자산놈, 자산놈 하고 불러 대는 것에 참을 수 없는 아니꼬움을 느끼던 윤씨는, 형걸이가 큰집 아이들에게 지지 않고 어디 코통이라도 터치고 들어오는 게, 한편 시원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작은댁이나, 서자라고 푸대접을 받을 때는 혼자 속을 썩일밖에 별도리가 없던 것이, 형걸이가 나이 차서는 그런 빛만 보이면 어느 놈이고 맞붙어서 해대었다. 항용 제 소생이 누구에게 상처를 입히든가 한 때에는, 뒷마무리를 하느라구 어머니가 그의 집을 찾아가서 미안하단 말이라도 올리는 게 습관이었으나, 아이들 싸움을 갖고 이러니저러니 첩 큰댁 간에 말썽을 만드는 건 박참봉이 극히 싫어하는 성미였으므로, 혼자 속으로는 큰댁 최씨가 무슨 앙심을 먹는지 몰라도, 입 밖에는 터럭끝만큼도 그런 기척을 내발리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건 마침 십상이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시치미를 똑 뗐다가, 간혹 얼굴을 대할 때거나, 그럴 때에 한두 마디,
"온 형걸이 성화에 참 속상해 죽을 일이외다. 아이놈이 어떻게 그리 세차고 포악스리 생긴 놈인지 원."
하고 인삿마디나 해두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형걸이가 열 살을 넘어 총각꼴이 보일 때부터는, 윤씨에겐 한편으로 딴 걱정이 새로이 불쑥 솟아 올랐다. 그 근심은 형걸이가 열아홉이 잡히도록 줄창 계속되어, 지금 그의 가장 높은 고팽이에 올랐다고 할 것이다. 그것이 형걸이의 혼사 걱정이었다.
형걸이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느라고 윤씨는 안방에 혼자 불을 돋우고 앉아 있다. 저녁부터 흐리고 물쿠던 날씨는, 밤이 이즈막해지니 기여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빗발은 굵지 않으나 바람이 좀 있어서, 우수수하니 나무를 울리고 마루에까지 빗발이 풍겨들었다. 윤씨는 사랑으로 나가 등잔 심지에 불을 켜보았다. 영감은 종일 강에서 해에 그을려 혼곤한데다, 얼근히 술에 취하여 나직하니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윤씨는 자리의 주위와 앞뒷문을 한번 보살피고 불을 끈 뒤에 다시 안방으로 돌아왔다. 종을 먼저 재우고 그는 자리도 깔지 않은 채,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생각과 추억에 서리어서 담배만 빨고 앉아 있다. 박참봉이 제 아버지 윤초시를 지레 죽게 만든 불측스런 위인인 걸 알 턱이 없는 윤씨는, 제가 순천서 첫서방을 여읜 때부터 친정으로 쫓겨와서, 그 다음 올케와 철딱서니 없는 싸움을 거듭하는 생활이며 다시 박참봉을 몸에 가까이할 때로부터 은산 살림, 두뭇골 살림에 이르기까지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되새겨 추억하면서도, 종시 그런 건 의심해 볼 염도 아니했다. 물론 지금 그가 그 비밀을 알았다고 했자, 박참봉에게 아버지 원수를 갚거나, 이 집에서 몸을 빼내어 영영 딴사람이 되거나, 그렇진 못했을 값이지만, 무슨 일에 영감더러 화풀이나 넋두리라도 할 때엔 영감을 공박하는 유리한 조건으론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비밀을 대충이나마 눈치채고 있던 임풍헌이 갑오년에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 버린 뒤에는, 이 비밀은 영원히 박참봉 혼자의 비밀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벌써 박참봉과 같이 살게 된 이후로 스무 해 동안, 물론 적지 않게 충돌이 일어났다든가, 불만이 있었다든가 한 일이 없진 않았다고 하여도, 영감이 그를 위하고 사랑한 것만은 사실이라고, 윤씨는 만족하여 그를 섬겨 오는 것이었다.
형걸이의 혼사, 그걸 두고 말해도 제가 작은집이고, 또 형걸이가 서자라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팔자 때문에 뒤틀리는 일이지, 박참봉이 큰댁 아이들과 차별을 두든가, 그런 때문에 그리 되는 것이 아니란 건 윤씨도 잘 알고 있다. 영감은 오히려 형걸이가 계집애처럼 얌전하거나 그렇진 못해도, 사나이답고 좀되지 않은 성격에 다른 아이들보다도, 희망이나 기쁨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혼삿말이 한참 잦은 이즈음에, 형걸이가 막서리 처의 방으로 드나든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영감이 적지 않이 노해서, 형걸이를 밤엔 일체 문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라니, 인제 장차 일어날 일이 혼삿말에 못지않게, 성홧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건 또한 종차로 일어날 일이라손 치더라도, 우선 눈앞에 매달린 일로, 형걸이가 들어오면 뭐라고 말을 붙여서, 머리 깎은 이후, 여러 모로 뒤설킨 그의 감정의 문을 두드려 볼 수 있을 것인가―---이렇게 사뭇 생각에 잠겨서 윤씨는 대문에서 발자취 소리가 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비가 약간 멈칫했다가 다시 또 퍼붓는다. 그러나 발자취 소리는 좀처럼 들려 오지 않는다.
그리 익숙지도 못한 담배를, 얼마나 정신없이 빨아 뿜었는지, 돌려 닫은 방 안에는 연기가 자욱하여, 등잔이 안개 속에 서린 어화(漁火) 같은데, 머리까지 아찔아찔하다. 그는 일어나서 바람이 풍겨들지 않는 윗문을 한 짝 열어 놓았다. 희미하나마 불빛이 쑥 뜰 안으로 내뻗쳐서, 비단실 같은 빗줄이 반뜩반뜩한다. 연기가 외곬로 몰려 나가다간, 비바람이 휙 몰아치면 꾸풀꾸풀 천장으로 출렁대면서 찬 공기와 환기가 된다.
담뱃내가 다 나가서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중대문 소리가 난다. 인제야 형걸이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는 문에 빗장을 지르더니 어머니 방에서 불빛이 훤하니 비치는 걸 보고, 곧바로 제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잠시 이쪽을 바라본다. 우산도 못 얻어 쓰고 삿갓을 쓴 채, 갓신 신은 발은 대님을 풀어 활짝 걷어붙였다.
"형걸이 너, 인제 오네."
하고 불을 내대이면서 물으니,
"오마니 여태 안 주무시우."
하면서 삿갓을 벗으며, 옷에 묻은 빗방울을 턴다.
"네가 안 들어왔는데, 비는 오구 해서 어떡허나 하구 기대리던 참이다."
"비 같은 거 오는데 머, 무슨 일 있을라구요."
하면서 형걸이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려고 한다.
"그대루 좀 왔다 가거라. 자기 전에."
한 발을 토방 위에 올려놓다가 주춤하면서,
"저요?"
하고 뻔한 걸 한번 더 물어 보며, 형걸이는 고개를 숙이고, 토방 위를 삿갓을 든 채 건너온다.
"아니 우산두 못 얻어 쓰구 왔네? 어델 가 놀댔길래."
어머니의 말에 어디란 말은 못 하고,
"우산이 머, 집집이 그렇게 흔한가요."
하고 종시 낯을 면바로 들지 않은 채 발에 묻은 진탕을 만지기나 하듯, 어름어름하고 토방에 서 있다.
"좀 둘어오나라."
"발두 진데, 머."
"게 걸레 있는데 씻으려무나."
형걸이는 방 안에 들어온다. 그러더니 그제야 대체 무슨 일이요 대관절, 하듯이 낯을 어머니께로 바로 쳐든다.
"게 좀 앉거라."
담뱃대를 놓고 어머니는 휭하니 아랫목에 가 앉는다. 형걸이도 윗목에 앉았다.
"아버지가 너 어데 밤에 댕기는지 걱정하시더라. 그러구 인제부텀은 밤에 나가지 말게 하라구 말씀하시드라."
댓바람에 요진통을 쪼루루 말해 놓고, 윤씨는 아들의 표정을 먼발로 바라보았다. 흐릿한 불빛에도 눈에 띄게 휙끈, 낯색이 변해지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형걸이는 아무 대답이 없다. 그저 덤덤히 앉아 있을 따름이다. 그 동안 그의 안색은 몇 번이나 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윽고 머리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본즉 곧,
"그 말씀밖엔 따루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하고 물어 본다. 별로 아무 감정도 안 섞인 나직한 말소리다. 그러나 어머니는 잠시 당황해한다.
"그렇다. 그래 너는 어째서 어룬 묻는 말엔 대답을 않느냐."
어머니는 처음은 그렇지도 않았던 것이, 말을 끝막을 때엔, 어딘가 아들을 책망하는 어조로 나온 것 같아서, 제 자신이 가벼운 흥분에 싸인 것을 느낀다.
아뿔싸--―- 이렇게 감정을 돋우어 할 말이 아니었는데, 이 녀석이 불쑥 밸이라도 나서 뻥하니 건너가 버리든지 하면, 외려 말하지 않음만 같지 못하지 않은가. 어머니는 말만은 그렇게 해놓고도 내심은 어지간히 캥겨도는데,
"어데 갔던 줄을 미리 아시고들, 물으시는 것 같애서 대답지 않었습네다."
하고 여전히 침착하게 대답한다.
침착하니 존댓말로 대답하는 형걸이의 말이, 윤씨에게는 되레 폐부를 건드리는 데가 있었다. 차마 그렇게 둘러엎어서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막서리 처를 보아 다닌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낯을 붉히며 머뭇거리다가, 무어 두어 마디 발명하는 말이라도 중얼대고 말 것이요, 만약 그 말이 생뚱한 지어낸 말이라면, 그게 무슨 당치 않은 말이냐고, 지금 막 아무개네 동무 집이든가, 교사의 집에서 오는 길이 아니냐고 어엿하니 뻐겨 대고, 휭하니 제 방으로 건너가 버릴 줄로 알았던 것이, 어머니의 한 말을 엎어 가지고, 버젓이 내가 두칠이 처를 보아 다니우, 하듯이 밝혀 놓고 마는 것이, 윤씨에게는 천만뜻밖이었던 것이다.
"그래두 난 그 말이 정말루 들리질 않아서 물어 본 말이다."
어머니는 낯을 좀 수그린다. 이 말을 듣고, 그 말하는 투가 어딘지 쓸쓸한 것 같아서, 형걸이도 좀 마음이 언짢은지 낯을 따라 수그린다.
"원 또 얼마나 미욱스리 자주 단니믄, 남의 눈에 띄게 단긴단 말이냐."
이 말은 아들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면서 어머니가 하는 말이다.
"누가 자주 갔나요. 큰집 맏형이 저두 맘치구 나왔다, 서루 들킨 게지요."
'아니, 맏형 형준이가?'
그러나 이 말은 입 밖에 내지 않고 윤씨 혼자 속으로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는 다시,
'그리군 제 스스로 영감에게 고해 바치다니.'
하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런 걸 들고 이러니저러니 하면 동기간 의리도 상할 것 같아서, 윤씨는 다시 뇌지 않고 한참을 덤덤히 앉았다가,
"아무리 남아의 몸이라 할지라두 제 몸은 제가 사랑하구, 제 처신만은 바루 가져야 하느니라. 그 애가 아무리 맘에 든다 해두 신분이 있지 않으냐, 또 너는 지금 한창 혼삿말이 사방에서 자자한데, 소문이 밖에래도 나가면 창피두 하려니와, 다른 일에두 밑지는 일이 아니냐."
그러나 이때에 형걸이는 불쑥 일어났다.
"전 장가 안 갈래요."
그러고는 훌쩍 문을 열고 아직도 비가 내리는 뜰 안으로 나간다.
"아니 뭐?"
하고 따라 윤씨도 일어섰으나, 다른 말이 나오질 않아, 그는 한참 동안 방 가운데 서 있었다. 이윽고 방문 있는 쪽으로 가보니 형걸이는 벌써 제 방에 들어가 버린 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