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부임해 온 문우성(文宇誠) 선생에게서 산술을 배우고 나면, 고등과 일학년의 오늘 학과는 그것으로 마지막이 된다. 그러나 매일처럼 하학한 뒤에 한 번씩 전교 생도가 정영근 교사의 지휘로 시행하는, 대운동회 목표의 연합체조 연습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래서 형걸이는 책보를 끼고 이십 명 가까운 학도들과 교실을 나와서 곧 운동장으로 내려간다. 고등과 일학년 학도 중에는 머리를 안 깎은 총각 학도는 대여섯 되었으나, 상투를 틀고 초립을 쓴 학도는 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윗학년으로 올라가면 나이 찬 새서방이 많아서, 이들은 관을 썼거나 또는 초립이나 갓을 썼다.
학교에서는 머리채를 땋아 늘어뜨린 총각은 물론, 이렇게 상투를 튼 장성한 학도들에 대하여, 벌써부터 삭발을 장려해 왔고, 더구나 대운동회까지는 될수록 전교 학도가 모두 머리를 깎아야 한다고 훈계할 때마다 주의해 내려왔는데 아직까지도 머리를 그대로 둔 자가 상당히 많았다. 이들은 연합체조에 참가하기를 꺼렸다. 사실 이들 중에는 고을서 몇십 리씩 떨어져 있는 시골서 상당한 한문 공부를 치른 삼십 가까운 청년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공부를 끝내면 연합체조를 피하여 그대로 교실에 남아 버리든가, 날씨가 좋은 날은 산으로 가든가 해버리는 수가 많았다.
정교사는 이러한 학도들의 태도를 가장 엄격하게 다스리기를 주장해 왔으나, 너무 심하게 취급하고 보면, 그렇지 않아도 수효가 적은 학교가 달아나 버릴 염려가 있으므로, 방임주의를 써오는 것이 학교의 정책이다.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오는 길에, 손대봉이가 한반 학도 두서넛과 삼송정 쪽에서 내려오는 것과 맞대었다. 그들은 한 시간 전에 공부를 끝마치고 산에서 시간을 기다리다가, 연합체조 연습에 참가하기 위하여 지금 운동장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형걸이를 보더니 대봉이는 두어 발자국 뜀을 뛰듯 하여 그의 옆으로 오면서,
"갈 때에 쟁고 구경 함께 가자."
하고 형걸이의 등에 손을 얹듯 한다. 형걸네 큰집, 알기 쉽게 말하면 박참봉네 거릿집 행길 건넛집은 이칠성이네 집이다. 그가 평양서 며칠 전에 자행거(自行車)를 사왔다는 것은, 이 고을 안에 하루 동안도 안 걸려서 쫙 소문이 퍼졌다. 그래서 어제 그제, 그 집 앞에는 광대나 잔치패가 왔을 때처럼, 사람들이 꼬이고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칠성이는 박참봉네 근방에 살면서 이모저모로 그의 그늘을 입는 터이라, 자행거를 사온 이튿날, 곧 그놈을 밀고 그 집 사랑 뜰 안으로 와서 온 가족에게 구경을 시켰다. 그때엔 형걸이도 있었고, 물론 안부인네들도 일부러 중대문을 닫아건 뒤에, 문틈으로 자행거를 놀리는 놀라운 광경을 내어다보았었다.
대봉이는 처음 칠성이네가 자행거를 사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까짓 쟁고 같은 걸 뭐 별게라고들 파리떼처럼 꼬여드는가, 작년에 평양 갔을 때 자기는 그런 쟁고를 잔나비가 나뭇가지 위에 놀듯이 재주 있게 타고 노는 걸 봤는데, 칠성이쯤이야 인제 겨우 길이나 섬기나마나 할 정도일 게니, 그까짓 게 뭐 구경거리가 되느냐고 동무들께 호통을 뽑았었는데, 며칠을 지나니 먼발로만 휙 보고 온 자행거의 실물이 보고 싶고, 또 그때 평양서 보기에 반들반들하고 복잡하던, 그놈 자행거의 기곗속 된 모양을 손으로 만져 보고 싶어서, 어제오늘은 적이 안달증이 났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은근히 그의 입맛이 당기는 데가 있다. 그건 얼마 전에 평양서 얻어 온 칠성이의 마누라를 어쩌면 또 한번 볼 수 있을는지도 모를 게라고, 그래서 그야말로 뽕도 딸 겸 님도 볼 겸이다.
그런데 듣는 말에 어제 아침부터 칠성이는 문을 닫아걸고 자행거 구경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은 조사하노라고 사람들이 꼬여들면, 연방 안장도 두드려 보고, 또 종도 울려 보고, 발디디개를 횅횅 돌려도 보고, 흥에 겨운 때는 그놈을 타고 삐툴삐툴하면서 길 위를 한바퀴 돌아보기도 했는데, 한 사나흘 계속하니 그 다음은 이 일이 시끄러워졌다. 그는 본시 도붓돌이를, 어렸을 때는 상자나 멧산자 보따리를 지고 다니면서, 그 뒤 좀 돈푼이나 모아서는 당나귀로, 이 부근 몇 고장 장날을 빙빙 돌던 것이, 이즈음 일 년 동안 좌전으로 돌려 앉고 이어 평양 출입을 자주 하면서, 가까이는 세매끼장사라고 제법 반찬, 미역, 쌀가마니 등속을 갖다 놓았다. 제 말로는 이왕 신작로도 났으니 이놈을 타고 바삐 평양 내왕을 할 참으로 이 자행거를 사왔다는 것인데 며칠 동안 이걸로 인해 장사도 못 하고 분주히 돌아가다, 생각하니 공연한 짓 같아서, 그 다음부터는 일체 구경을 안 시키기로 한 것이다. 가령, 돈 회계를 좀 하려고 문서책을 펴놓고 주먹구구를 하는데도 아이놈들이 와서는,
"쟁고 구경 합세다."
부처끼리 깨가 쏟아지게 맞상을 하고, 짠지외다 고등어외다 하고 서로 입맛을 다셔 가며 저녁을 먹는데도 아이놈들이,
"쟁고 좀 봅세다으레."
하고 해게를 먹인다. 이놈을 겪어 나가기가 시끄러워, 누구 말마따나 돈이라도 받고 구경을 시킬까 하고도 생각해 보았다가, 그대로 '쟁고 못쓰게 됐다'고 고장을 빙자하여 헛청간에 고이 세워 두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대봉이의 낯이나 세력으로는 이놈의 자행거를 구경할 수가 없다. 형선이가 누구보다도 십상 일등이겠으나 그와는 사이가 좀 좋질 않고, 그래 아삼륙으로 친한 형걸이의 덕을 입자는 판이다.
"난두 타는 걸 보니 안즉 될 날 멀었데. 네가 평양서 잰내비 놀리듯 하는 걸 본 눈으루 본다문야, 구역이 나서 견데 배기겠나."
이러고서 형걸이는 대봉이를 놀려먹는다.
"내가 안타까이 보고푸단 건 아닌데, 길손인가 누구 말인가를 들은 즉슨 암만 봐두 새것 같지두 않구, 꼭 남이 쓰다 낡은 것 같다대그려. 그래 그런 것두 살펴볼 겸, 또 어물어물하다 우리 그놈 좀 얻어 가지굴랑 한번 타는 걸 배와 두는 것도 십상이 아닌가."
"누가 빌려 준다덩가. 지금 아마 제 여편네하고 둘을 놓구서, 어느 걸 빌리겠냐구 물으면 여편네를 내놓면 내놨지 쟁고는 안 될 판인데."
그러나 형걸이 자신도 자행거를 얻어서 배우자는 말엔 귀가 으쓱했다. 말을 타고 몰아치는 맛도 장쾌한 일이거니와, 쇠로 만든 두 바퀴 달린 요놈의 기계에 난뜨럭 올라앉아, 횅횅 둘러서 제비처럼 날아다니는 맛이란 더없이 기막힐 듯싶다. 그래서 어떻게 참 대봉이 말마따나, 그 자행거를 좀 얻어 탈 묘한 방책은 없을 건가 해서 궁리를 하면서 걷고 있는데,
"그깐 놈 쟁고 싫다믄 여편네두 좋지."
하고 대봉이는 여전히 딴 변두리에서 흥얼거리며 따라온다.
그러나 그들은 벌써 운동장 가운데 들어와 있었고, 이어서 나팔 소리가 나고, 정교사가 채찍을 들고 뛰어나오는 바람에, 학년을 따라 바삐 나란히를 해야 할 판이었다.
'추립' 하고 호령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가로세로 술렁술렁 뛰어가며 제자리를 찾느라고 바쁘면서도, 아직 대봉이와 형걸이는 각각 자행거와 연줄을 가진 생각에 머리를 묻고 있었다.
그러므로 '기척, 우로 나란히, 내렛, 번호, 우향 앞으로 갓!'을 빨랑빨랑 해치우고, 종대 사열 행진에서 횡대로 변하는 대목을 몇 번인가 되풀이하면서, 한 반 시간 동안 운동장을 빙빙 돌아 행진을 하는 것으로 오늘의 체조연습이 끝났을 때에, 그들은 인차 칠성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대봉이는 밖에 서서 잠깐 기다리고, 형걸이만 흠없는 집이라고 덥벅덥벅 안으로 들어가며,
"칠성이네 형님 있수궤."
하고 제법 존대를 해서 부른다.
"촌에 가구 없이요."
하는 부인네 말소리가 나더니 이어서,
"나오셌소."
하고 형걸이에게 인사를 한다.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밖에서 이렇게 섰을 게 아니라, 좀 능청맞지만 따라 들어가야 할 게라고, 대봉이도 어슬렁어슬렁 형걸이의 뒤로 대섰다. 젊은 부인네는 방문을 열고, 한 발은 문턱에 얹고 왼손으로 문설주를 쥐고 서서 형걸이와 이야기를 하려다가, 웬 한 모를 총각이 어슬렁거리고 들어서는 바람에 잠시 감추듯 하다가,
"아니, 머, 칠성이네 형이 안 계신가."
하고 이쪽에서 묻는 바람에, 다시 얼굴을 문 밖으로 엿뵈면서,
"촌에 가시오."
하고 또 한번 대답하곤, 이번에는 낯을 감출 염도 아니한다.
"그럼 이거 안됐네그려."
하고 대봉이가 형걸이를 바라보면서 눈을 한번 찔끔한다.
"글쎄."
하고 대봉이에게 대답한 뒤에, 두 총각은 안방을 향하여 일시에 벌신하니 웃었다. 이 웃음에 색시도 따라 웃을 듯하다가, 다시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묻는 게 인사라고 생각했는지, 뭐라고 입술을 날름거려 하는 것을 형걸이는 인차,
"아즈마니, 그런 게 아니라요."
하고 한 발자국 안뜰로 들어선다.
"나는, 머, 우리 사랑 마당에서 쟁고 놀리는 걸 봤으니께루, 또 볼것두 없는데 저 손대봉이가, 아즈마닌 모르시는지 모르지만 이 아레 손장이네 자제 되는 이예요. 그래 저 사람이 쟁고가 첨인데 좀 구경시켜 달라구, 그래서 둘이 왔던 길이웨다으레. 그런데 형님이 없으니 머, 일은 다 틀렸지요."
하고 뒤를 돌아다보면서,
"아무려나 자네가 신수는 나쁠세. 며칠이 되두룩 안 와 보구설랑, 똑 안 계실 때 온당께 그게 무슨 얼어붙을 운수란 말인가."
하고 지정머릴 친 뒤에,
"그래, 머 먼 길 떠나셨나요."
하고 이번에는 색시에게 묻는다. 형걸이가 드물게 볼 만큼 제법 주워 섬기는 게 희한하고 또 한편으로 이놈 혼자서 잘 해먹누나 하는 심술도 나는 터라, 어느새에 대봉이는 형걸이의 옆에 와서 빤히 색시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자행거 열 번 타느니 이 재미가 십상이다. 이왕이면 가지런히 마루에 나라니 앉어서 이야기나 했으면…….'
이런 걸 생각하고 있는데,
"알메〔卵山〕루 아침 떠났으니 일을 보구래도 아마 내일 저녁에나 오실가 부외다. 그러나저러나 쟁고 구경이야 머 주인 없다구 못 하실 게 있겠소. 저 헛간에 딜여 세우구 보재기를 씌워 놨으니께루, 가만 계시소."
쪼루루 부엌으로 돌아 내려가는 품이 신을 끌고 나올 모양이다. 대봉이는 형걸이를 보고 한번 혀를 날름해 보인다.
"괜찮다."
그러나 형걸이는, 자행거를 보는 게 괜찮다는 겐지, 색시 얼굴이 괜찮다는 겐지 잘 분간하지 못했다. 오히려 형걸이는 이때에 잠깐 두칠이 처 쌍네를 연상하였다. 어차피 자행거 얻어 타기는 파이다. 자행거나 만지면서 남의 여편네와 잡소리를 흥얼거리는 것도 그다지 입맛이 당기진 않았고, 그럴 바엔 길 위에서 한번 간단한 포옹이 있은 뒤에 한 달이 넘도록, 조용한 기회나마 붙들지 못한 채 내려오는 쌍네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던 것이다. 그래서 칠성이 아내가 부엌에서 나오기 전에,
"쟁고는 다 탔다. 난 간다."
하고 나직하니 말하니,
"쟁고보담 색시가 좋다."
하면서 대봉이는 또 한번 눈을 찔끔한다. 칠성이 처는 누런 삼신 낡은 것을, 뒤축을 질끈 눌러서 끌고, 맨발을 하얗게 벗은 채 부엌에서 뜰 안으로 나오면서,
"온, 쟁곤지 뭔지를 신주 때가리 모시듯 하니……."
하고 콧구멍을 발름발름해 본다. 젊은 총각들에게 미상불 악의를 갖지는 않는다는 표적일 게다.
"이거 온 여러 가지루 안됐습네다."
하고 대봉이가 가로맡아 인사를 하니, 그는 붉은 갑사댕기를 뻣드럭하니 빼어 올린, 커다란 머리를 수건도 안 쓰고 흔들거리며 아무 말 없이 헛간문을 열고 들어간다. 헛간 안에서는 소금 냄새, 미역 냄새, 반찬 비린내―---이런 게 함께 엉켜서 적지 않이 코를 울려 대는데, 대봉이는 색시의 뒤에 이어 대서면서, 그의 궁둥이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뜰 가운데 남아 있던 형걸이는 빨랫줄에 걸린 여편네의 속옷다리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가,
"그럼 천천히 구경하구 나오게, 난 집에 가서 말을 끌구 나올게……."
하고 혼자서 대문으로 뛰어나가니, 대봉이는,
"아, 같이 나가지 어드르나구 그러나."
하고 황황히 서두르는 척했으나, 속으론,
'일은 십상 잘 된다. 그놈두 눈칫밥은 안 먹구 살게 생겼는걸.'
하고 은근히 기뻐하였다. 그렇다고 대봉이가 금방 아무도 없는 이 헛간 속에서 남의 집 부인에게 어떻게 나쁜 행동이나 뭐, 그런 걸 저질러 보려는 건 아니다.
대봉이는 이무 시집간 손위의 누이와 단 두 동기간이니, 말하자면 그는 손장이의 독자다. 독자라고 귀해하기는 다른 집 자식들의 몇 배 더했으나, 그리 부자는 되지 못한 때문에 그다지 훌륭한 곳에 대봉이의 혼처를 정하지는 못했다. 밀양 박가, 그중에 박리균네가 그래도 양반이라고 그는 마방을 하는 리균이 동생 성균이의 맏딸, 지금 열아홉 나는 금네〔金女〕와 혼사를 작정하였다. 벌써 폐백도 끝나고 초여름이 오면 장가를 들 판인데, 금년 열여덟 살째 잡히는 그는 그 집에 장가드는 걸 그다지 달가워하진 않는다. 그 집이 공연한 양반 타령뿐으로 실속은 아무것도 없는 건달판인 것도 그리 반갑지 않은 조건이었으나, 그보다도 금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네가 같으므로 몇 년 전까지도 그는 금네를 눈 익히 보아 올 수 있었다. 질쿠냉이를 잘한다는 소문과 마방인 때문인지 음식솜씨가 놀랍다는 칭송이 자자하다고 하나, 대봉이에게 그런 건 다 매력이 되진 못한다. 오히려 무명하고, 명주 짜고, 물레질하는 그런 질쿠냉이를 잘한다든가, 그런 것보다는, 언문이라도 몇 자 안다든가, 아니 통히 그런 것보다도, 얼굴이 얌전하고 살커리나 흠석하다면야 별 불만이 없을 것 같다.
금년이 열아홉이니 한창 피어나는 연세라, 이삼 년 전과는 물론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대봉이는, 그가 이 년 전에 마지막으로 박리균네 국숫집 부엌에서 금네를 본 기억이 지금껏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때 본 바로는 바짝 말라서 살커리는 바르고, 얼굴엔 핏기 하나 없는데 웬한 여드름인가 붉지도 않은 차랍 같은 게 게적지근히 깔려 있던 것이다. 저런 걸 뭣이 얻어 가려나 하고 속으로 은근히 그의 남편 될 사람을 동정했었는데, 그 남편 될 사람이 바로 손대봉이 자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중매쟁이가 왔다 갔을 때, 그는 어머니에게 '난 장가 안 간다'고 한번 제겨 보았으나, 그러잖아도 장가가 늦었는데 그게 무슨 수작이냐고 단댓바람에 코를 떼였다. 그때에 털어놓고, '두꺼비 잔등 같은 그 따위 상판때기를 한 체니는 죽어도 싫다'고 선후를 가려 자상하니 말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대로 장가만 안 간다고 제겨 보았으니 될 리가 없다. 어머니가 친히 선을 보고 와서 혼자말처럼 하는 말이,
"볼따구니에 살 달린 건 미욱해 못쓰는 법이니라, 목이 좀 행금하구 볼편이 가든하야, 상냥하구 영리해서 웃어룬 공경두 잘하는 법이니라. 게다가 자대는 바르구, 난하지 않구, 질쿠냉이랑 임석시세가 일등가니, 예서 더 좋은 혼처는 구할래야 없을 게다. 아무려나 대봉산 신령님의 덕을 끝끝내 입는가 부다."
하고 마지막에는, 가을쯤 잔치를 치른 뒤, 새 곡식이 나면 양덕 대탕지 뒷산 산신령께 떡말 어치나 해가지골랑, 치성을 드리러 가야겠다고까지 말하고 앉았었다.
어떤 때는 색시가 막연히 그리워서 장가간다는 게 그리 싫지도 않았으나, 흠썩한 남의 색시나 처녀를 보면 금네를 데리고 일평생을 지낼 생각이 한심했다. 방선문께를 지날 땐, 인제는 처삼촌이 된다고, 박리균이가 눌러 논 국수에 점심을 먹고 가라고 그를 불러들이는 게 또 하나 질색이었다. 한번 마지못해 따라 들어갔더니 박참봉네 음해질과, 또 노상 외는 '성씨는 박귀성의 처니 성논산의 장녀라'를 되풀이하면서 집안 자랑을 해대는 것과, 안 했으면 좋을 걸 끝으론 조카딸 금네의 자랑까지 늘어놓는 데는, 아닌게아니라 학질을 뗄 뻔하였다. 그래 그 다음부터는 그 집 앞을 피해서 물역으로 다니든가, 간혹 할 수 없을 때 붙들리면, 지금 막 점심을 먹고, 술을 빼면서 오는 참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어떻든 금네에게 장가들기는 싫은데, 바싹 우겨서 싫다는 소리도 못 하고, 한편으론 타고난 성질로 탐스런 색시라도 보면, 진수작이라도 하면서 지정머리를 쳐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 칠성이 처가 자행거 위에 덮었던 보자기를 잡아 젖히니, 아래 위를 한번 훑어보면서,
"그놈 참 묘하겐 생겼군."
하고 안장을 툭툭 두드려 보고, 다시 핸들을 손끝으로 만져 본 뒤에,
"요놈이 아마 종이지요."
하고 동글납작한 흰 쇠로 된 놈을 이리저리 바라보노라니, 색시는 기쁘드룸한 표정으로 만족하니 서 있다가, 필시 이 총각은 종을 울릴 줄 모르는 모양이라고, 가만히 바른손을 얹어 따르릉 한번 고놈을 틀어 보았다. 대봉이는 짐짓 놀라는 척하며,
"이크 이게 무슨 소리웨까. 아니, 거 참, 그 속에서 요란한 소리두 납네다. 그래 이 안장에 올라앉아, 이놈으루 길을 잡아 섬기면서, 가끔 개새끼나 사람이나를 만나면 요놈을 째르릉 하구 울려 댄단 말입지요. 허허― 참."
그러고 나선 또 발디디개와 사슬 있는 쪽을 살펴보고, 바퀴를 손끝으로 눌러도 본다.
"아마 칠성이 형님은 잘 타지요."
하고 색시의 얼굴을 쳐다보니,
"머, 갖에 사온 게 잘 탈 새 있나요."
하면서 또 발신하니 웃는다.
"오늘 아침 알메루 가셨다면서 왜 쟁골 안 타구 가셨나. 오라 길이 사나우니."
"그럼은요. 길두 사납구, 또 험한 길에 잘 타지두 못하는 어른이 실수하믄 어떡해요. 그래서 인제 평양 갈 때나 타신대요."
여기까지 오고 보니 인젠 별로 더 할 말도 없다. 그만 잘 구경했노라고 인사의 말이나 하고 나와 버린다든가, 퇴짜 맞을 걸 각오하고 라도 한번 길에서 타보았으면 싶다구 염치없이 대들어 보든가 할밖에 없는데, 그래서 그는 또 한번 자세히 자행거를 살펴보는 척하다가,
"아즈마니 댁이 평양이시란데 어데신가요."
하고 물어 본다.
"사창마당이에요."
"사창마당? 오라 그럼 바루 설수당꼴 맞은쪽인가요."
하고 들은 풍월로 대붕이가 집어 섬기니,
"아니 피양엘 갔더랬나요."
하고 칠성이 처는 놀라는 듯하면서도 반겨하는 표정이다.
"머, 작년에 한 번 운동회 때 갔더랬시요. 그때 쟁고를 보기는 했는데."
이 소리를 듣더니 칠성이 처는 손잔등으로 입을 가리며,
"애걔 망칙해라, 그런 걸 종을 못 친다구."
하고 웃어 본다.
"보기나 했지 실자루 만져야 봤이야지요."
하고 대봉이도 따라 웃는다.
"거 칠성이 형님이 여간 본때가 있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하고 이번엔 혼자말처럼 푸념을 치면서,
"피양 아즈머니 넌뜨럭 얻어 오더니, 이번엔 또 쟁골 사오구, 좌우간 이 고을선 뭐이던간, 일등이구 처음이닝께루."
칠성이 처는 이 말엔 좀 낯이 발개지면서,
"온 벨소릴 다 합네다. 그까짓 나 같은 거나 평양서 줘다가 뭘 하겠소. 괜하니 평양물만 디려 놓지."
"아니 왜요. 온 난두 가봤지만, 평양이라구 아즈머니보담 인물 나은 이 어데 또 있습뗑까."
이 총각이 기어이 나를 놀리려 든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으론 결코 불쾌치는 않아서,
"그까짓 촌에 와서 썩기야."
하면서 한탄조로 나온다.
한편 대봉이를 칠성이네 집에 남겨 둔 채 행길을 건너서 큰집 대문을 들어선 형걸이는, 오른손 쪽으로 보이는 사랑방 윗목에 선 고기잡이꾼 평양 영감이 그물코를 꿰매고 앉았고, 아버지는 아랫목 문갑 앞에서 커다란 주판알을 따지며 치부책을 뒤적거리고 있는 걸 보고는, 이어 중대문 앞을 지나 연자간으로 돌아가 보았다. 연자간에는 처맸던 헝겊을 눈에서 벗기고 맷돌을 끌다가 그대로 서서 마른 여물을 먹고 섰는 노새가 코를 벌심거리고 있다. 노새를 몰고 쌀을 뒤채 놓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없다. 쌀이 멍석과 멕함지에 담긴 채로 재지풍이 앞에 버려져 있고, 키와 채 같은 게 그대로 흩어져 있는 걸로 보아, 금방까지 일을 하다가 짐승에게 마른 여물을 주고, 자기는 어디 잠깐 물을 먹으러 부엌으로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오줌이라도 누러 간 게 분명하였다. 쌍네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 섰을까, 그러나 그는 일부러 보고 싶어 찾아온 것처럼 보이는 건 싫었다. 역시 말 외양간으로 돌아가서 말을 보고 오는 길에 우연히 들른 것처럼 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 외양간으로 가려는데 발자국 소리가 등뒤에서 난다. 쌍넨가 하고 돌이켜 보았더니, 열두 살 난 누이동생 보패였다.
"오라바니 왜 여기 세인."
내심을 들킨 것 같아 좀 부끄러웠으나,
"말 오양간에 가던 길이다."
하고 그대로 가던 길을 내처 걷는다. 외양간에는 당나귀는 없고 흰말이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형걸이는 한참 그곳에 서서 말을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쌍네가 연자간으로 나왔는지 보패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도란도란 들린다. 그는 그대로 돌아서서 연자간으로 왔다.
"당나귀는 어짼."
하고 딱히 누구에게라고 없이 물어 본다.
"두칠이가 타구서 보항〔步行〕가서."
하고 쌍네의 옆에 섰던 보패가 대답하니,
"어데 멀리루?"
하고 재처 물어 본다. 이렇게 물어 놓고 쌍네를 보았으나, 그는 얼굴이 발개져서 공연히 좁쌀 멍석만 뒤채고 있었다. 형걸이도 자기의 묻는 말이 품고 있는 내용에 생각이 미쳐서 잠깐 주춤하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딴 곳으로 돌릴 양으로,
"작은오래비 뭘 하던?"
하고 또 한번 물어 보았다.
"몰라, 작은형님 방에서 뭘 하는지."
"작은형님은 뭐 하던?"
하고 이번엔 좀 탈선된 질문이긴 하나 보부를 물어 본다.
"작은형님은―---"
하고 들고 섰던 빗자루로 맷돌이 지나간 뒤를 한번 쓸어 올리고,
"작은형님은 아마 성경책을 보든가, 바느질을 하든가 그러구 있겠지."
"성경책?"
"그럼. 예수책 말이야. 찬미책 말구 또 하나 두꺼운 거 있지 않네."
형걸이는 잠깐 덤덤히 서 있다.
"머 작은형님은 예수를 믿는다던?"
하고 좀 있다가 물으니, 보패는 비를 놓고 멍석귀로 나앉아서 쌀장난을 하면서,
"내가 한번 물어 봤더니 믿지는 않는대. 믿는 사람은 이방 사람관 혼사 안 한다는데."
하고 제법 자즈레하니 이야기를 꺼내려 든다. 그래서 형걸이도 기독학교를 좀 다녀서 예수교 문제는 다소 알면서도, 보패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짐짓,
"이방이라니 무슨 말인가."
하고 물어 본다.
"이방두 몰라, 예수 안 믿는 사람, 이방 사람들, 것두 몰라."
하고 보패는 생글생글 웃는다.
"그럼 예수를 믿는 사람이드면 우리집과 혼사를 안 할 텐데 이방 사람덜끼리가 돼서 혼사를 지냈단 말이구나."
하니 쌍네가 이 말에 처음 발신하니 웃는다.
"그래 또 맏오라바닌 뭐 하던?"
"맏오라바닌 낮잠 자구, 맏형님은 애기 젖 먹이구."
모두 늘어진 상팔자로다 하고 형걸이는 생각했으나, 물론 말로는 내지 않았다.
"작은오래비 오눌 너보구 멜하지 않던?"
하고 또다시 물으니,
"멜하긴 뭘, 학교 댕기란 거? 아버지가 알지 누가 아나."
그러더니 무엇을 생각했는지 홀딱 일어서서,
"그럼, 난 해지기 전에 앞집 탄실이하구 둘이 가갔다."
하고 중대문께로 뛰어간다.
"아니 어델 간단 말이가."
하고 뒤에서 물어도, 보패는 대답지 않고 치맛바람을 내며 뛰어만 간다. 멍석에서 멕함지에 조를 옮겨 담다가 남매끼리 주고받던 말끝을 받아서,
"산나물 뜯으러 같이 가자구 그러는 걸, 일 때문에 어데 갈 수가 있어야지요."
하고 쌍네가 별로 형걸이에게 대답하는 말 같지 않게 끝을 우물거리고 만다. 대답해 줄 생각으로 시작은 해놓았으나, 도련님과 단둘이 있는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설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설렁거리긴 형걸이도 매일반이었다. 달 전에 길 위에서 잠깐 동안 감격을 나눈 뒤 얼굴만은 가끔 마주볼 기회가 있었으나, 단둘이서 말을 주고받긴 이번이 처음이다.
둘은 한참 동안 이상스런 분위기를 몸과 마음에 느끼면서 덤덤히 서 있었다.
다 찧어진 쌀을 퍼다가 재지풍이에 옮기고, 새로이 조를 퍼 넘겨야 할 텐데, 도련님의 두 눈이 볼때기에 따가워서 도무지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멕함지에 붙듯이 쪼그리고 앉아서, 공연한 쌀만 모았다 폈다 하고 있다. 한참 만에 형걸이의 기침 소리가 난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게다 하고 귀를 기울이는데,
"보항을 어데로 갔어?"
하고 좀 떨리는 목소리다.
"한 이틀 걸리는 먼 길이래요."
겨우 이 말을 대답했는데, 사랑 마당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형걸이는 지금 아버지와 사랑 마룻전에서 이야기를 하고 섰는 것이 손대봉인 것을 알았다.
"그럼 말궁이 있는 데 가보겠습네다."
하는 대봉이 말소리는 쌍네도 들었다. 이 바람에 쌍네는 훌쩍 일어나서 연자매께로 가서 노새를 세우고, 이어서 비와 바가지를 들고 맷돌 뒤로 돌아갔다.
"여기서 뭘 하구 섰나."
하고 대봉이가 싱글싱글 웃으며 형걸이의 등뒤에 선다.
"노새는 연자망질하구, 당나귀는 어데 촌에 가구, 흰말밖엔 없는데, 그래 쟁고는 어떻게 좀 얻어 탄?"
형걸이는 본정신으로 돌아와서 대봉이를 마주본다.
"쟁고, 쟁고를 타긴 어떻게 타, 말이나 끌구 방선문께 나가자. 그놈이나 좀 타보게."
이윽고 형걸이와 대봉이는 말궁이 있는 데로 갔다. 형걸이가 외양간으로 들어가서 말을 풀어 내다 대봉이에게 꼽지를 잡히고, 자기는 안장을 꺼내다가 등허리에 얹는다. 끈을 말 배통이에 깡듯하니 추켜 매고 말꼽지를 받아 잡는데, 대봉이는 나직한 목소리로,
"얘, 밤에 칠성이네 집에 놀래 가자. 가만히 보니 칠성이 처가 적적해하길래 우리 둘이 밤에 마실간다구 했다."
대봉이의 추근추근스럽고 붙임성스러운 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형걸이는 벌신벌신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고 있었으나 이윽고,
"난 싫다. 안 갈란다."
하고 대답해 버린다.
"왜, 무슨 일이 생겐? 누구 오늘 밤 오라는 이래두 있던?"
이 말엔 아무 대답도 안 하고 형걸이는 흰말을 마당 가운데로 내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