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 06

쌍네가 박참봉 댁에 종으로 팔려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삼 년 전, 그가 아홉 살 났을 때였다. 그는 이 고을서 삼십 리 서편으로, 강 둘을 건너가면, 마주 보이는 모래 언덕 위에 있는 서창(西倉)이라는 작은 부락에서, 가난한 농가의 딸로 태어났다.
쌍네 위로 딸 둘은 이미 같은 농가에 팔린 뒤였고, 그의 집에는 쌍네 밑으로 아들 둘이 있었다. 그가 팔리던 해에는 장마 뒤에 역병이 돌아서, 그의 모친은 많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 전해에 가뭄이 들어서 이 지방 전체에 큰 흉년이 들었었는데, 또다시 장마에 역병까지 겹친 터이라, 가을이 되어 역병은 까라졌으나 밭에서 거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골마다 농토를 떠나서 유리하는 방랑민이 길을 덮고, 남부여대하여 함경도나 황해도 쪽으로 이주하여 가는 부락민이 초겨울까지 끊이지 않았다. 쌍네의 집 가족도 그 중의 하나였다.
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은 그릇 자박 바가지짝을 꿰어 매어 짐을 꾸려 지고, 네 살 난 놈을 그 위에 올려 앉히고 여섯 살 난 놈과 쌍네의 손목을 이끌면서, 가을도 이미 저문 시퍼렇게 흐린 날 늦은 아침에 서창을 떠나 고을로 들어왔다. 방선문 안 박성균네 마방에서 하룻밤을 쉬어서, 세월 좋다는 원산으로 사백 리 길을 떠나려는 판이다.
네 살 난 놈은 이럭저럭 짐 위에 올려 앉히고 간다 하여도, 여섯 살 난 놈과 쌍네가 연속하여 사백 리 길을 가려면 신작로도 나기 전 험한 길을, 열흘이 걸릴지 보름이 걸릴지 종잡을 바가 없다. 하루라도 바삐 가서 겨울이 닥쳐 오기 전에 자리를 잡아야 할 판인데, 열흘 동안 노비를 쓸 것조차 주머니 속에는 남아 있지 아니하다. 어디 말이나 당나귀라도 하나 얻어서 아이를 태우고 들어갔으면 싶으나, 물론 그렇게 할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밤이 새도록 어린것을 눕히고 생각한 끝이, 드디어 남들이 다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도이었다.
짐을 덜고 노비를 장만하는 일거양득의 길, 그것은 쌍네를 종으로 파는 길밖엔 없었다. 오십이 가까운 아버지는 집을 떠날 때까지는, 결단코 이런 방도만은 취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정작 삼십 리 길을 걸어서 첫날밤을 맞아 보니, 어린 세 아이를 데리고 먼길을 떠나서 오랫동안 여행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처사인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한방에서 자는 마바리꾼에게 상론했자 별 뾰족한 수가 생길 리 없다. 처음은 속으로 노염도 갔으나, 백이면 백 사람의 입이 한결같이 그 방도밖에를 생각지 못할 때, 그는 드디어 이 길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리균에게 부탁하여 종으로 쌍네를 살 사람을 수소문하였으나, 역시 지금 한창 세간을 늘리고 세력을 부리려 드는 박참봉 성권네밖에, 이런 흉년에 뭉텅이 돈을 던져 사람을 살 이는 이 고을에 있는 성싶지 않았다. 그래도 박성균이는 박참봉이 종은 무슨 얼어 빠질 종을 또 살 게냐고 가보지도 말라고 하였으나 결국은 그 집에서 맡아 버리기로 작정이 되었다. 박참봉네 집에는 벌써 나이 찬 종이, 한 집에 하나씩 있어서 별반 새로운 손이 필요치는 않았으나 한편으론 헐값으로 살 수 있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 심술궂은 박리균네가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부쩍 쌍네를 데려다 두기로 채비했다. 그때 몸값이 이백 냥, 아무리 흉년이기로니 삼백 냥은 내라고 졸라 보았으나, 이제 겨우 아홉 살 난 것을 이백 냥에 싫거든 그만두라는 판에, 그만 하는 수 없이 그 값에 흥정이 된 것이다.
아버지는 작은놈을 둘러업고, 짐과 큰아이를 나귀에 싣고서 방선문 밖으로 내키지 않는 길을 떠났고, 쌍네는 그날부터 박참봉네 집에 매인 재산이 되었다.
그때 서른 살이 겨우 넘은 젊은 박참봉의 아낙은, 쌍네가 울고 앉았는 것을 처음은 위로하며 달래다가, 그 다음은 도고하게 음성을 가다듬어 훈계의 말을 한 뒤에, 박참봉은 나릿님, 자기는 마님, 아이들은 도련님이라고 부를 것을 가르치고, 나이 찬 종은 연세에 따라 형 또는 오마니라 부르라고 일러 주었다.
'네 나이 아즉 열이 안 된 어린아이니 대소범절을 가르쳐 주거니와, 첫째는 순종, 둘째는 공경, 셋째는 저 맡은 일을 감당할 거, 이걸 잊지 말고 행실머리를 바로 가져야' 옳다고 다시 당부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쌍네는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는 신세로 되었다. 서각이나 자리 속에서 간혹 눈물을 흘리다가도 누구의 인기척이 나면, 불시에 눈물을 털고 일어서서 그린 듯이 낯색을 고쳤다.
두칠이가 절게로 오게 된 것은 쌍네가 와서 삼 년이 지난 뒤, 그러므로 지금부터 만 십 년 전의 일이 된다. 그때에 두칠이는 스물한 살의 나이 찬 총각이었다.
박참봉의 장인 되는 갱고지 전주 최씨네 작인으로 있는 김바우의 셋째 아들로 세상에 났으나, 형제가 많고 집이 가난하여 나이 차도록 장가도 들지 못하고, 거듭하는 흉작과 살림에 쪼들려서, 드디어 두칠이는 절게살이를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어엿한 부역 병모가 있고, 형제 동기가 수두룩한 몸으로, 절게살이를 떠난다는 것은 장본인으로서도 섭섭한 일이었으나, 돌이켜 생각하면 이 밖에 성가할 뾰족한 딴 수가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제 하나가 희생이 되지 않으면 그해 농사는커녕, 열 넘는 가족이 금시에 굶어 뻐드러져야 할 궁박한 형편이었다. 그래서 김바우는 최초시를 찾아가서 사연을 아뢰고 박참봉 댁에 절게를 살게 해줍시사고 간청을 대었다.
박참봉은 작금 이삼 년 동안 계속되는 흉작과 역병에 농토를 던지는 자가 부쩍 늘어서, 그 동안 한달갈이를 넘게 헐값으로 사둔 것이 있었으나, 작인의 이동이 심하고 맞차운 작인을 만나기도 힘들고 귀찮아서, 어디 절게를 몇 더 늘려서 금년부터는 자농이라도 해보려던 참인데, 두칠이 같은 장정이 제 발로 기어 들어오겠다는 것은 마침 십상이긴 하였으나,
"거 원, 장인영감이 그렇도록 부탁한 게니 두어 보기는 하겠네마는, 지금 있는 손두 남아돌아 걱정인데, 알다시피 곡가는 비싸고……."
이렇게 한번 척 늘어져 본 뒤에, 담배를 떵떵 떨면서, 무릎을 꿇고 겁신겁신 절을 하고 있는 바우와 두칠이를, 먼발로 보는 둥 마는 둥,
"아무려나, 자농을 얼마 해서라도, 어데 내 집에 찾아 들어온 사람을 몰아낼 도리야 서는가. 하니 그 폭을 요량해서, 일일랑 부지런히 해준다믄, 뒷날이라도 해롭진 않을 테야. 농가에서 한참 곤궁할 대목이니 좁쌀이나 두어 섬 가져다가 쓰려는가."
하고 뒷마무리를 해버렸다.
이리하여 조 두 섬을 미리 받아다 먹고, 그해 일 년은 그대로 살아 주게 마련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음해부터는 돈 서른 냥씩을 받기로 되었다. 이 밖에 그가 박참봉 댁에서 받는 것이란 세 때의 끼니와, 두루마기 없는 겨우살이 한 벌, 이른 봄에 푸중의적삼, 단오 대목해서 희중의적삼, 여름에 베등지게, 가을에 솜바지저고리--―-이렇게 옷가지나 얻어 입고 발에 두르는 감발 두 감에, 머리에 동여맬 수건 세 채가 고작인 것이다.
이럭저럭 삼 년을 살아 보았으나 별 싹수가 보이지도 않았고, 스물두세 살의 한창인 시절을 남의 일로 허송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헤먹기 짝이 없어, 절게살이를 그만두고 갱고지로 돌아가서 농사를 도울까고도 생각해 보았고, 그의 본집에서는 그렇게 하기를 은근히 권해 보았으나 막상 사 년이 접어드는 봄이 오니 두칠이는 박참봉의 컴컴한 절게방을 떠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절게살이를 계속하면서 소처럼 되게 일만 하였다. 그에게는 미상불 딴 궁리가 없지 않진 못했던 것이다. 열여섯을 맞아 지금 한참 피어나려는 쌍네, 그를 은근히 두칠이는 탐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쌍네는 비록 비천한 몸이기는 하나, 피어나는 처녀의 마음이라, 두칠이 따위를 안중에 둘 리가 없다. 그와 나이 동갑세인 도련님으로 형준이가 있고, 그보다는 삼 년씩 아래지만 형선이와 형걸이가 있다. 종 된 몸으로 어디다 뫼를 쓰고 도련님께 마음일망정 두어 보랴마는, 뚱그렇게 맑은 그의 두 눈은 싫도록 그들을 보아 온 터이다. 이들을 익히 보아 온 처녀의 눈이, 여드름이 툭툭 튀어 올라 벌겋게 관 상판때기와, 어느 윤동짓달에 빗어라도 보았던가 싶은, 마구 땋은 머리채를 빙빙 둘러 꾹 찌르고, 무명수건을 휭휭 둘러 감아 놓은 저, 어수선한 머리빡과 때와 땀에 전 무명옷 주제에 마음이 끌린다든가 쏠린다든가 할 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하루 세 때 제법 밥상이라도 날라다 주던 것이, 나이 차면서는 면바로 그의 얼굴을 쳐들지도 않으려 들고, 밥상 같은 건 나 많은 종에게 내맡기고 두칠이의 옆에 가까이 오는 것조차 모피하였다.
그러나 쌍네는 자꾸만 커갔다. 열여덟으로 접어드니 고된 노동과 하찮은 의식(衣食)에 눌려서도, 꽃은 제 시절을 잊어버리진 않는다. 얼굴을 덮었던 솜털은 새하얀 살결에 몰려서 떨어져 벗어지고, 볼편에는 불그레한 살이 도동하니 올랐다. 쩍지는 일었을망정 입술의 색깔은 유난히 붉어지면서, 가슴은 적삼 속에서 눈에 띄게 부풀어 올랐다. 치마 밑으로 궁둥이의 뼈가, 탄력 있는 근육에 흡신하니 둘러싸였다. 인제는 누구의 눈에도 나이 찬 색시의 것으로서, 부끄러움 없을 발육을 보인 여자의 육체였다.
두칠이의, 자라나서 몸에 겨운 성욕은 마침 스물일곱의 무서운 고개를 넘고 있었다. 어느 으슥한 여름날 저녁, 두벌 기음을 늦게까지 조밭에서 매고 온 두칠이는, 제 방에서 저녁상을 받았다. 그날따라 나 많은 종은 심부름을 가고 밥상을 들고 온 것은 쌍네였다.
굵은 맹패치마로 아랫도리를 두르고, 말라 올라붙은 베등지게가 하이얀 살을 그대로 내놓았다. 밥상을 그의 앞에 놓으려 할 제, 상에는 통히 정신이 없는 두칠이는 눈으로는 푹 수그린 쌍네의 가리마를, 그리고 두 손으론, 상 언저리를 잡은 쌍네의 활짝 걷어붙인 두 팔을 덥석 붙들었다. 상은 그런대로 방바닥 위에 고이 놓였으나, 벌떡 일어서는 두칠이의 무릎이 갓짠지 냉국을 밀어 엎었다. 성난 짐승처럼 두 팔이 쌍네의 웃통을 낚아채려 들 때, 쌍네는 발로 문턱을 벗디디고, 찰거머리 같은 사나이의 손을 털어 버리려 든다. 냉국물이 쏟아져서 발등을 적시고, 이어서 잎숟가락이 그릇에 부딪쳐서 왱가당거리며 소리를 내었으나, 두칠이의 귀에는 들릴 염도 안 했다. 무서운 힘으로, 버둥거리는 쌍네의 몸을 방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인기척이 났다. 잡았던 손을 놓는 바람에 쌍네는 토방에 뒤로 나가자빠지고, 두칠이는 십 리 길이나 뛴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컴컴한 방 안에 넘어져 버렸다.
"아니 쌍네가 왜 이러니."
하는 나직한 목소리가 늙은 종의 말소린 것이 분명할 때에, 두칠이는 다소 안심하였다. 이러한 사연의 내용을 알아차리고 뜰 안에서도 아무 말이 없다. 쌍네는 늙은 종의 옆에서 어깨춤을 훌쩍훌쩍 추면서 어청어청 부엌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누구의 눈에도 띄리만큼, 두칠이의 앞에 나서기를 쌍네는 꺼렸다. 한번 그가 밀마당질을 하려 두서넛 일꾼과 방선문께를 갔는데, 쌍네더러 점심밥 광주리를 여다 주라니까, 그는 상전마님의 명령인데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부엌에서 주춤거렸다. 쌍네를 가엾어하는 늙은 종이, 제가 간다고 나서는 바람에 별일은 없었으나, 박참봉의 아낙은 그때부터 두칠이를 꺼려하는 쌍네의 태도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박참봉은, 두칠이가 고된 일에 불평도 없이, 육칠 년 동안이란 긴 세월을 소처럼 근직하게 일해 내려온 것이, 자라나는 쌍네에게 맘을 둔 탓이라고 넘겨짚어 오는 데가 퍽이나 오래였다. 그러므로 마누라 최씨가,
"두칠이란 놈이 쌍네보고 무슨 장난을 쳤는지, 밭에 점심도 안 가지고 갈랍네다레."
하고 알려 바칠 때, 입에 물었던 담뱃대를 빼물고,
"두칠이 나이 얼마 안 해 삼십이 아닌가."
하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다시 입에 담뱃대를 물고, 뻐금뻐금 연기를 내뿜는 박참봉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의 마누라는 지금 말로는 안 하지만 속으론 영감이 '참 그러고 보니 쌍네가 오래지 않어 스물이 되는구만' 하고 어쩌면 새삼스럽게 활짝 피는 쌍네의 팡파짐한 궁둥이께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게라고 선뜻 생각해 보고 얼굴이 좀 붉어졌다. 그러나 마누라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안방으로 물러가 버렸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작은 사건이 마누라의 눈에 띄었다. 맏아들 형준이가 삭명 경주 김씨의 집으로 장가를 들던 날, 쌍네가 아침밥도 안 먹었고, 밤이 이슥해선 뒤뜰 안 벌통 앞에서 시름없이 우는지 한숨을 짚는지 멍해 앉았더라는 게다.
형준이가 장가를 들자 곧 색시를 데려왔으니 부부간 의가 나쁜 처지도 아닌 바엔, 쌍네가 아무리 공연한 생각을 품어 보았자 이러니저러니 말썽이 일어날 리도 없었으나 한 해를 넘어 열아홉이 된 몸짓을, 가만히 눈붙여 보매 쌍네의 얼굴이 점점 남의 눈에 띌 만큼 아름다워지는 것이 사사모사로 일을 저지를 위험성이 없지도 않았다.
맏아들은 그대로 아무 일 없다 쳐도, 장차 형선이와 형걸이가 장성해 가고, 또 한편으론 돈 모으는 재미에 작은댁 이외에는 딴 염을 못내었던 영감도, 아니할 말로, 이제부터는 어떻게 몸을 가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뻗치니 한시라도 빨리 묘방을 써야 될 것처럼, 그리고 꼭 아들이나 영감이 그런 잘못된 골로 빠지고야 말 것처럼, 갑작스레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래서 두루두루 혼자 궁리한 끝에 얻은 것이 한 가지 지혜였다.
그런 어떤 날 오라비 되는 최관술이가 사랑에 온 것을 조용히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관술이는 그때 동학인가 뭔가를 믿기 시작한다고 처음 서울 출입을 하기 비롯할 무렵인데, 매부 되는 박참봉에게 개화사상과 동학을 깨우쳐 드린다고 자주 사랑에 발길을 하던 때이다.
"두칠이를 우리집 쌍네에게 장가들이는 게 어떨까 해서 의논하는 말인데, 주사는 어떻게 생각이 감마."
하고 누이가 물으니, 삭발하고 개화경을 낀 관술이는, 그때는 아직 갓을 쓰고 다녔는데, 한번 버릇처럼 갓끈과 수염을 만져 보고는,
"개화사상은 서학이나 동학이나를 물론하고 모두 비복을 해방하라는 주장이올시다. 그러니 쌍네가 낳는 계집 자식을 일후에 다시 종으로 잡아 둘 생각만 없으시다면야, 물론 그렇게 하시는 게 지당한 일이올시다. 그런데 원 형님이 들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공손히 누이에게 말한다.
"거야 임자 형님도, 두칠이가 쌍네에게 맘을 두고, 고된 일도 아무말 없이 십 년 가까운 세월을 이 집이서 지내 온 걸 알고 계시니까."
이렇게 말하기는 하였으나 관술이 누이 최씨는 속으론 물론,
'영감이야 반대하든 말든, 어서 두칠이와 쌍네를 부부를 만들어 줘야 모든 일이 안심이 된다. 만약에 이 말에 반대를 놓을 지경이면, 그 이면이 아무튼 구린 게 분명하니,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뜻대로 작정을 지어야만 할 게다. 가령 마지막에는 쌍네가 형준이에게 맘을 두었던 게 이러저러한 걸로 보아 틀림없는 일이니, 지금은 장가들어 얼마 되지도 않으니 딴맘을 먹을 새도 없을 게로되, 계집의 맘이란 꼭 두부 모를 뜨게 하는 고양이의 도굿과 같아서,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집안에 백 년의 화를 남길는지도 모를 게라든가, 쌍네의 생김새가 계집애로서 영악하고도 간사스러워, 종차론 형선이와 형걸이에게도 어떤 한갓 되지 않은 행실머리질을 할 염려도 없지 않아 있다든가―---어떻든 간에 영감이 깨우쳐 알도록은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해서라도, 이 일만은 작정을 보아 둬야 한다.'
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도록 주밀스레 갈피갈피 생각하고 궁리해 둔 걸 채 털어놓기도 전에, 박참봉은 마누라 최씨의 의견을 그대로 단마디에 좇아 외려 마음이 께름칙했다. 요렇게 반갑게 대답이 나올 리도 만무하고, 다굿통이 센 영감이 많은 돈을 먹여서 사놓은 재산을, 이렇게 대수롭잖이 놓아 줄 이치가 없는데, 혹은 속으로 무슨 딴속을 차려 볼 생각이 있지는 않은가. 두루두루 되새겨 보아도 그럴 법한 생각이 도무지 머리에 떠오르질 않는다.
"개화문명이 모두 그렇다고 하니 시세에도 좇을 겸, 아니할 말로 아이들도 나이 차서 장성해 가는데, 종차로 무슨 실수를 저질러 놓을는지도 염려가 되고요, 이모저모 그렇게 하는 것이 십상일 것 같애서 권해 본 말씀이웨다으레."
하고 최씨는 다시 한번 다져 놓은 뒤에 뒷일을 자상하게 상론해 두었다.
박참봉 내외의 생각이 일치하고도 또 얼마를 그대로 지낸 뒤에, 하루는 두칠이가 노는 날을 택하여, 박참봉은 사랑으로 그를 불러다 앉히고,
"네 나이 내년이면 스물아홉이니 오래잖아 삼십이야. 네가 내 집이 온 지도 팔 년이 됐으니 인제는 성가를 할 나이 아닌가. 너는 잊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너보고 처음 해둔 말도 있지 안한가, 일만 부지런히 할 지경이면 뒷날 결단코 해롭겐 안 할 테라고. 그래 어떤가, 네 맘만 내킨다고 보면 쌍네도 이왕 나이 차랐으니."
여기서 좀 말을 끊고 두칠이의 낯짝을 바라보니, 그의 얼굴엔 기쁜 표정이 가득하였으나 그 커다란 입을 벌신하니 웃어 보이며,
"나릿님 처분에 다시 이를 말씀이 있습너니까."
하고 굽신 머리를 굽혀 절을 할 뿐이다. 두칠이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출 수 없는 즐거움을 넌지시 바라보고,
"네 처 될 년으로 말할 지경이면, 아홉 살에 제 애비가 원산으로 가면서 내게다 ꂛ긴 것인데 그때 한참 바른 돈에 적지 않은 금액을 지애비 손에 들려 주었더란 말일세. 그러고 보니 오늘날 그 이자를 따진다고 들어도 수천금에 이를 것이야. 하나, 내가 너에게 그렇게 야박수레 굴 생각은 없어 (이 대목에서 약간 긴장했던 두칠이의 얼굴에 안심의 빛이 돌며, 또 한번 굽신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무릎 위에서 맞부비어 본다.) 또 하나 너에게 말해 둘 건, 년에게서 나오는 소생이 만약 딸자식이고 볼 지경이면, 고것이 고대로 내 집에 메우는 것이 되는 건 여태껏 내려오는 관습이로되, 내 생각하는 바가 따로 있어, 종차론 그런 풍속을 없이 할 생각이니, 아들을 낳건 딸을 낳건 그건 너희들 맘대로 기르란 말이세. 금년은 이대로 지내고 내년 추수나 치른 뒤에 머리나 올려 주고, 물역 쪽 막간을 맡아서 살아 보게나 그래."
이 말이 끝난 다음 두칠이는 코가 땅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고 제방으로 물러 나왔다. 절게로부터 막서리로 되는 것이 기쁜 게 아니다. 인제 누가 뭐래도 그 탐스런 쌍네가 제 것이 될 테니 그것이 기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튿날 쉬 저녁때쯤 해서 사랑에서 물러 나온 쌍네는, 두칠이와는 반대로 두 눈에 눈물이 어리어서 그대로 서각으로 뛰어갔다. 아무도 없는 재통에서 그는 한참 동안을 울어 보았다. 울어 보니 무슨 소용이랴. 좋건 글렀건 내년 가을이면 그는 두칠이의 아내가 되고 마는 것이다. 먼 데로 도망을 가거나, 목숨을 끊어 강에 던지거나, 비상을 먹고 살을 썩이든가 해버리기 전에는 울어 보나 버둥거려 보나, 그는 두칠이의 아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뜻에 합당한 남편이라면 종신을 종으로 지낸다고서 무슨 원한이 남으랴, 그 남편이 절게면 어떻고, 생기는 딸자식이 대를 이어 종살이를 한단들 무슨 유한이 있을 거냐―---더구나 종간나보다 막서리의 처가 얼마나 훌륭한 지윈지, 절게보다 막서리가 얼마나 월등한 지벌인지, 쌍네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막서리가 된다 해도 하는 일, 당하는 일은 매한가지가 아닐 거냐, 그럴 바엔 마음에나 내키는 사나이와 한세상 살아 보고 싶은 것만이 단 한 가지의 소원이었다. 마음에 내키는 사나이 아니면 안 된다고 작정한 사나이라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 두칠이에게만은, 징그럽고 구질구질하여 마음이 도무지 끌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신세타령을 한다고 든다면, 아예 당초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종으로 팔았을 때부터, 일은 이렇게 되기로 마련이 된 것이 아니냐. 지금 이 지경이 되어서 이러니저러니 조밥이다 쌀밥이다 하고 가리려 드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쌍네는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박참봉이 하는 말에 푹 머리를 수그린 채 아무 대꾸도 못 하고 사랑을 물러 나온 것이다.
일은 작정한 대로 가혹하게 실행이 된다. 그리하여 그 이듬해 가을에는, 쌍네는 두칠이의 아내가 되어, 박참봉네 큰집 물역 쪽으로 있는 막간방에서, 두칠이의 오랫동안 막혀 쌓였던 정욕의 가엾은 대상이 되어 버렸다.
우렷한 달빛이 창에 훤하다. 두칠이 처 쌍네는 비류강 쪽으로 향한 막간방에 혼자 자리도 안 깔고 번듯이 누워 있다.
그는 두뭇골 댁에 설기떡을 갖다 두고 오던 길에, 형걸이를 길 위에서 만나 뜻하지 않았던 변을 당하고, 한참 동안은 흐르는 눈물을 씻지도 않고 그대로 종종걸음쳐서 행길로 나왔다. 물역 쪽으로 난 뒷대문으로 돌아서 저희 방을 옆으로 보며, 그는 안뜰을 지나 부엌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이리 늦었느냐"는 말에, 두뭇골서 베 도투마리 감는 걸 잠깐 도와 주고 온 탓이라고 거짓말을 할 만치, 그때에는 벌써 가라앉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방 안에서 그 말을 듣던 최씨는,
"심부럼 간 사람을 잡아 놓구 일을 시키문 어쩌자는 겐가."
하고 혼자 두뭇골 작은댁을 나무라고 있었다. 말이나 노새나 당나귀나 소의 여물들은 어찌 됐는가고 물었더니, 늙은 종이 전부 갖다 주었다고 한다. 그래 쌍네는, 떡 한 그릇과 두칠이가 오거든 주라고 밥과 오가리 찌개와 김치를 함지에 얻어 이고, 제 방으로 돌아왔다. 좁은 부엌에 함지째 놓아 두고 그는 그대로 방 안에 들어왔다. 저녁 생각이고 뭐고 도무지 배가 고픈 것 같지가 않다. 가슴이 금시에 울렁거리다가도 얼마 전에 길 위에서 당한 일이 꿈은 아니었던가, 내가 미쳐서 어느 귀신에게 홀렸던 거나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 영락없이 그리 된 일임에 틀림없는 것도 같아서, 가슴은 철썩 물러앉고 낯에서 피가 쭉 밑으로 흘러 버려서 가벼운 현기증조차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꿈에도 당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와 동갑 되는 맏도련님 형준이가 삭명으로 장가를 드는 날 밥도 안 먹고 밤에는 뒤뜰에 있는 벌통 앞에서 한숨을 짚었다는 것이, 그 뒤 늙은 종이나 작인의 마누라들간에 한갓 되지도 않은 주둥아리의 군입심감이 되었다고 하나, 그거라고 별로 도련님에게 마음이 달떴던 때문도 아니었다. 다른 집 따라 없이 열여덟이 되도록 도련님들의 혼사를 지내지 않는 이 댁 풍속이, 남들은 이러니저러니 시비질을 하지만, 어느 겨를에 시집이고 뭐이고 가마 탈 세월이 올 것 같지도 않은 쌍네에게는, 상전의 도련님이 아직 장가갈 염도 안 하는데, 하여 적지 않이 위안이 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위안조차 형준이의 혼사로 인해 부서지고 말았으니, 그러잖아도 마음이 산란스러워 참을 수 없는 낫세에, 한숨이나 눈물이 나와 솟구쳐 오르지 않을 리 만무였다. 대체, 저를 이 고장에다 내버려두고 원산 쪽으로 살 길을 찾아 길을 떠나간 지가 십 년이 되었건만, 생사의 소식조차 전하지 않는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죽어 뻐드러져 흙이 되어 버렸는지, 귀신이 되어 어느 허공에 실 끊어진 종이연 모양으로 너풀거리고 있는지, 궁금하다기보다 그립고, 그립다기보다 안타깝고, 안타깝다고 가슴을 부여뜯을 땐, 우선 눈물이 낯을 적셔 버린 뒤이었다. 나를 어쩌라고 이 구덩이에 몰아넣고―---이렇게 원한까지가 뒤섞이면 이런 세상 한평생 살아가느니 오히려 목숨을 끊어 자결을 해버림만 같지 못하다는 욕된 생각까지 들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겨우 진정하고 마음을 수습하노라니, 아침밥도 굶었던 것이요, 밤이 으슥해선 뒤뜰 안에 혼자 앉아 시름없는 세월도 보냈던 것이다. 도련님의 품에 안긴 꿈이라니, 어느 하늘에 머리를 솟구고 무엄하게도 입 밖엔들 낼 수 있을 것이냐. 그렇던 그것이 얼마 전에 꿈도 아닌 생시에, 도련님 중에서도 가장 미츳하고 깨끗한 두뭇골 도련님과, 어엿하니 길 위에서 벌어졌다니, 귀신에 홀렸다는 생각을 가짐도 과시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꿈은 아니었다. 눈을 바로 뜨고 창문을 바라본다. 창살 구멍이 저렇게 똑똑히 보이고, 그 틈으로 하늘 중천에 한 모가 이지러진 보름 가까운 달이, 물 같은 달빛을 뿌리고 있는 것이 저렇도록 분명히 보이는데, 귀신에 홀렸다는 건 더구나 안 될 말이다. 혀를 내어 입술을 빨아 본다. 아직도 쌍긋한 두뭇골 도련님의 침맛이 남아 있다. 불보다 더 따가운 도련님의 입술이, 볼때기와 인등께를 미칠 듯이 돌아가다, 겨우 제 입술을 찾았을 때에 느꼈던 감격이, 아직도 이 몸에 남아 있다. 꿈은 결코 아니었다. '달이 넘어갈 때' 하는 도련님의 더운 입김과 함께 배앝은 말이 생각힌다. 그는 불현듯이 물역 쪽으로 통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대문에 이르기 전 저만큼에, 나지막한 가시울타리가 있고 작은 문이 달려 있다. 필시 도련님이 오신다면, 물역 쪽으로 돌아서 뽕밭 머리를 지나 이 울타리 문으로 들어올 게다. 아직 두칠이가 나무를 싣고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바깥 큰대문이 열려 있으나 그 문을 지나자면 사랑 마당과 외양간을 지나고 서각 뒷목을 돌아와야 이곳에 이를 것이니, 남몰래 이 방을 밖에서 찾아들자면 물역 쪽, 이 울타리께로 오는 것이 가장 곧바르고 틀림이 없다. 안으로 통하는 외짝문이 있으나, 그것은 다시 부엌을 넘어서야 바깥 뜰 안으로 통할 수 있다.
그는 버선발로 뛰어나가 걸렸던 울타리 문을, 밖에서 밀면 수이 열릴 수 있도록 빗장을 뽑아 놓았다. 달을 쳐다보니 십이봉 위에 아직도 두 발만큼이나 떨어져 걸려 있다. 저놈이 진 때라면, 두칠이가 올 때일 텐데, 하고 무심코 생각하고 나니 자기가 과연 도련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아랫목에 아무것도 깔지 않은 채, 번듯이 드러누웠다. 두칠이 생각이 난다. 그가 매일처럼 고된 몸도 돌아보지 않고, 달게 구는 것이 그렇도록이나 싫던 쌍네로서, 도련님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이왕부터 마련되어 있어서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비천한 몸이기로니, 그리고 두칠에 대한 애정은 있거나 없거나, 자기는 남의 아내 된 몸이 아니냐. 생각을 돌이켜보면, 생뚱한 총각에게, 입술을 뺏기고 품에 안겼던 것만 해도 죄스럽고 원통한 일인데, 그는 제 스스로 남편 아닌 딴 사나이가 찾아들라고 문을 열어 주고 있지는 아니한가.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나서 문을 걸러 나가려곤 하지 않았다. 길 도중에서 남편인 두칠이가 무슨 이변이라도 만나서 새벽녘에나 돌아오면, 아니 그대로 삼밭 농막에서 밤을 새고 동녘이 훤히 터서야 돌아오면은―---이렇게 그의 마음 한귀퉁이에선 은근한 기원을 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는 부질없고, 거추장스럽고, 찌껍찌근한 다른 생각은 일체 하지 않기로 기를 쓴다. 단 하나 도련님과 길 위에서 만나서 헤어지던 대목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덥벅덥벅 좁은 길을 양푼을 들고 걸어오던 것과, 길 가운데서 불쑥 허연 것이 솟아오를 때 기겁을 하여 놀랐던 것과, 그것이 뜻하지 아니한 두뭇골 도련님인 데 또 한번 가슴이 놀라고 거진 소리를 지르려다 그 다음은 어쩐지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던 것과―---여기까지는 대충대충 빨리 생각을 채치고, 도련님이 그에게 존대의 말을 엉겁결에 건네던 고비에서부터는, 될수록 느리게 발걸음을 쓸데없는 곳에서 마실을 시키면서 끌어 오다가, 입을 맞춘 뒤에 몸을 뽑아, 달이 구름장을 지나가는 우렷한 길 위를, 종종걸음을 치며 까닭 모를 눈물을 흘리던 고팽이까지를 그는 양껏 향락해 보는 것이다. 이것을 되풀이하여 싫증이 나기 전에 도련님의 발자취 소리가 뽕밭 머리에서 들려 오기만 한다면, 그 뒤에는 두칠이 따위가 소를 몰고 돌아오든 말든, 아무 계관이 없을 게라고까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는 여태껏 무수하니 두칠이와 잠자리를 같이하였고, 머리 올린 지 반 년 만에 유산까지를 치른 경험이 있지만서도 이렇게 도련님의 애무를 상상해 보고 있을 때엔, 마치 아무개에게도 몸을 허락한 적이 없고, 고이고이 싸두어서 누구 하나 손끝도 얼씬 못 한 처녀인 것처럼 자기가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길을 막고 물어 볼 말로, 시집이라고 든 지 달로 쳐서 일 년 하고도 반 년 동안, 한 번인들 이러한 감격에 몸을 맡겨 본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두 손을 들어서 가슴을 눌러 본다. 제 가슴을 제 팔로 꽉 껴안아도 본다. 그러나 엉겁결에 한 손에 양푼을 든 채 도련님께 껴안겼을 때와 같은, 벅차고도 울렁거리던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좀처럼 솟아나지는 않는다. 그는 푸 한숨을 짚고 몸을 뒤챈다.
어느 동안에 창문 있는 쪽이 어둑어둑해져 갔다.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누지 못하며 창을 바라보니, 달이 산봉우리 뒤로 거지반 떨어져 간다. 그는 두 팔로 낯을 꽉 가리고, 이 일을 어찌할까냐고 고함을 지를 듯 안타까워한다. 그것은 달이 떨어지니 인젠 곧 도련님이 올 게라는 두려움 섞인 심리의 발작인지, 넘어가는 달을 잡아 두고 싶은 간지러운 희망의 표시인지, 그로서도 도무지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사랑 쪽으로 난 큰대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가 나며, 확실히 두칠이의 말소리로 이라 쩌쩌 하는 소 모는 소리, 큰 나무 바리가 대문 문설주에 싹 하고 대이는 소리조차 똑똑히 들린다.
두칠이가 왔다. 도련님은 아니 오고 두칠이가 왔다―---이 생각이 그의 머리에 뚜렷하니 새겨질 때 쌍네는 머리에서 손을 떼며, 꿈에서 깬 듯 '잘됐다' 하고 가느다란 한숨을 짚었다. 두칠이는 오락가락 육십 리 길을 소를 몰며 다녀오고도, 아무런 불평 없이 사랑 마당에서 나무만 부리고 있다.
쌍네는 가만히 일어나서 컴컴한 방 가운데 잠시 서보았다. 뗑해진 머리를 두 손으로 부둥켜 들고 또 한번,
"이르게 오길 잘했다."
하고 소리가 나도록 중얼대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