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 05

긴 거리가 끝나고 방선문을 쑥 나서면, 왼편으로 박리균네 조상 할머니 성씨의 것도 함께 끼여 있는, 다섯 여섯 낡은 비각이 서 있고, 다시 그 비각에 연달아서 맨머리만 뎅그렁한 비석이 초라하게 상판때기가 얼금덜금 더럽힌 채 두서너 개 서 있다. 그 앞은 널찍한 마당인데, 말뚝이 총총히 들어선 걸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하루 엿새마다 벌어지는 장날, 크게 우시장이 서는 곳이다. 항용 불러서 소우전 마당이라 한다. 이 마당 한편 모서리가 뚫리어서, 공동묘지와 손우개로 통하는 작은 길이 있고, 또다시 바른쪽 언저리가 그대로 줄기차게 뻗어서, 커다란 황철나무를 서너 너덧 세운 채, 평양과 원산으로 통하는 새로 생기는 신작로와, 망지다리〔望柱橋〕에서 마주 붙고 있다.
이 밖에 허리끈 같은 가는 길이 신작로를 바른 질름을 해서 각각 두 갈래로, 하나는 돌차니고개〔尉嗟嶺〕를 넘어 평양 가는 방향으로, 또 하나는 망지고개를 바라보면서 원산 쪽으로 개울과 산을 더듬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황철나무의 푸른 눈이 터서 이파리가 파릿파릿 내발리고, 그 밑에 깔린 풀에서 포르스름한 새싹이 돋아 오르고, 아무도 모르게 누가 떠다 옮긴 진달래가 한 포기 분홍빛 꽃을 피우고 있는 따스한 어떤 날 오후도 퍽이나 기울어서, 말발굽 소리를 요란스럽게 울리면서 흰 말이 하나 방선문을 지나 날쌔게 달려오더니, 소우전 마당으로 한 바퀴 휭하니 돌아서, 신작로로 통하는 황철나무 밑을 땅에 붙듯이 휘감아돌고, 흰 먼지를 뽀얗게 날리면서 망지다리를 향하여 달아나고 있었다.
말은 구름 속을 달리듯 거침없이 달아난다. 신작로는 흰 먼지와 말발굽 소리에 휘엉켜서 멀리 가물가물하게 달아나는 흰 말과 그 위에 탄 젊은 기수를 덤덤히 바라보고 있다.
흰 말은 행인 없는 신작로를 날 듯이 달아간다. 멀리 망지다리를 왼쪽으로 휘돌면서 원산 가는 길을 잡아서, 망주산 고개를 쏜살처럼 댓바람에 스쳐 올라간다. 고개를 거반 올라갔다. 그런데 웬일일까. 말은 갑자기 요란스럽게 코를 불면서 앞발을 까맣게 들어서 하늘 허공을 들이찬다. 탔던 기수는 까풀 하고 안장에서 떠올랐으나, 말목에 몸을 딱 붙이고 능숙하니 말을 잡아 길 위에 세운다. 기수는 말꼽지를 잡아당겨서 무서운 속력으로 달아나던 말을, 길복판에다 잡아 세우려던 것이다. 뛰던 말은 그 바람에 한번 앞발을 높이 들고, 공중을 휘젓듯이 살판을 뛰려다가, 우르렁 하고 코를 불면서 길을 가로 잡고, 기수의 시키는 대로 급정지를 한 것이다. 말은 아직도 뛰던 속력이 몸에 남아서 건정건정 신작로를 짓밟으며 돌아간다. 호둘기 바람에 학생 모자를 뒷데석에 붙이고, 턱에다 끈을 맨 젊은 기수는, 말채찍과 말꼽지를 왼손에 몰아 쥐고, 바른손으로 말의 등허리를 뚜덕뚜덕 두들겨 주면서, 찐득하니 흐른 땀을 수건을 내어 문대어 준다. 말은 주인의 애무를 달게 받으면서 눈을 꺼뻑거리고 섰다. 이윽고 말 위에 탄 기수는 고개 아래턱을 내려다본다. 그곳에 삼십 장정이 소를 몰고서 작은 지름길을 더듬어 신작로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다 어쩌실려구 그리우."
버륵버륵 웃는, 수건을 질끈 동인 장정은 두칠이었다. 말탄 총각은 이 말엔 아무 대답도 안 한다. 그는 물론 형걸이었다.
"말 참 용하게 타시는군."
이 말에도 대답지 않고, 형걸이는 소와 사람이 신작로 위에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다.
"어데루 가나?"
"나무 실으레 삼밭이 가는 길이웨다."
"삼밭이? 삼밭이가 삼십 린데, 이제 가믄 어떡헐라구?"
"요좀 달이 있는데. 좀 늦어선 오갔지요."
그는 소와 두칠이가 고개를 더듬어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럼 잘 댕겨 오우."
하고 처음으로 두칠이에게 하우를 했다. 그랬더니 두칠이는 휙 돌아보면서,
"예, 조심히 들어가시우."
한다. 형걸이는 두칠이가 고개를 다 넘도록 그곳에 서 있다가, 이윽고 말을 지름길로 들이세웠다. 말은 앞을 굽어보며 배배 꼬인 좁은 길을 내려간다. 형걸이는 말꼽지를 느리게 잡고 뒤로 몸을 젖히듯 하면서 말이 꺼득꺼득 하는 대로 허리를 흔들거린다.
형걸이는 지금 말 위에서, 두칠이가 밤이 퍽이나 이슥해서야 집으로 돌아올 것을 생각하고 있다. 오늘은 보름이 인제 얼마 안 남았으니, 밤에는 밝은 달이 우렷하니 산과 들과 집과 강물을 밝혀 줄 것이다. 개나리와 진달래와 병꽃이 활짝 핀 밤, 나뭇가지마다 새 움을 까고, 철 이른 버들가지가 파랗게 향기를 뿜는 밤, 달에서 흐르는 이슬을 받아서 무어라고 종알거리며 피어 나오는 파란 잔디. 이 밤에 형선이는 얼마 전에 데려온 정좌수 딸과, 젊은 감격을 나눌 것이고, 두칠이의 처 쌍네는 오래간만에 해방된, 흠썩하고 탐스러운 몸을 가누지 못하여, 강물 쪽으로 향한 큰집 막간 좁은 한 칸 방에서 혼자 몸을 뒤채고 있을 것이다. 그는 혼자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무 실러 간 남편 두칠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혹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은 채, 뚫어진 창문 틈으로 숨어드는 달빛에,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가슴을 내맡기고 곤하니 잠이 들어 있을까.
말은 평지를 걷는다. 딴눈도 팔지 않고 뚜벅뚜벅 단조롭게 걸어간다. 형걸이는 비로소 눈을 들어 멀리 물이 불은 사창못과, 그 옆에 선 커다란 두 개의 황철나무 가지에 삼 년 전부터 있는 낡은 까치 둥지와, 그리고 그 뒤로 비스듬히 밭을 넘어서 보이는 학교의 운동장을 바라보며, 생각을 털고 바른손을 높이 들어 말궁둥이에 채찍을 준다. 말은 껑충 하고 뛰기 시작한다. 채찍이 또 한번 궁둥이를 휘갈기니, 말은 몸을 펴고 길 위를 날기 시작한다. 밭샛길을 더듬어서 방선문엔 들르지 않고, 산 밑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말은 단숨에 학교 운동장까지 줄달음을 쳤다.
운동장에는 형선이도 있고 길손이도 있고, 대봉이도 있다. 그 밖에도 두서넛 있었다. 그들은 활짝 두루마기와 모자를 벗어붙이고, 삼신에 들메를 깐 듯하니 한 뒤에 경주연습을 하고 있었다. 철봉 밑에 백묵으로다 땅바닥에 줄을 긋고 그 위에 바른 발을 하나씩 내짚고 있다. 발은 백묵을 타고 신호가 나기를 긴장하여 기다리고 있다. 길손이는 줄 밖에 서서 신호를 부르고, 다른 네 명이 뜀을 뛸 참이다. 철봉을 하던 이태석이도 손을 비비며 그것을 바라보고 섰다.
"하나."
길손이는 기운 있이 불러 댄다.
"두울, 셋!"
셋 소리와 함께 네 사람은 달아난다. 길손이는 흰 줄 위에 서서 뛰어가는 경주자를 뒤로부터 바라본다. 형걸이는 말 위에서 내렸다. 말을 나무에 매고 그는 운동장으로 넘어 들어온다.
경주는, 운동장 저만큼 서 있는 황철나무를 치고 돌아오는 거다. 떨어지고 앞서고, 뒤엉키면서, 제각기 황철나무를 손뼉으로 갈기고는 그들은 되짚어 뛰어온다. 형선이가 맨 앞이다. 그 다음이 대봉이다. 나머지 두 사람은 한 칸만큼씩 떨어져 있다. 그러더니 거반 가까이 와서 대봉이가 바싹 채치는 바람에, 형선이는 입을 감물고 애를 다하나, 한 발만큼 떨어져서야 금을 넘었다.
"형선인 요좀 기운을 너머 빼서, 하하하."
하고 태석이가 웃어 대니, 잔디 위에 펄신하니 앉아서 푸푸 하고 헐떡거리던 형선이는,
"에라 망할 자식, 내 우정 륖다."
하고 벌떡 일어선다.
"그래, 덕분에 내가 한 번 이겼다."
하면서 형걸이를 보고 대봉이는 눈을 찔끔한다. 형걸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풀판 위에서 손을 땅에다 대고 휙휙 살판을 몇 번 뛰었다. 그러고는 다시 두 팔뚝을 걷어붙이고 철봉으로 가서 윅윅 턱걸이를 몇 번 했다.
"대운동회 때 씨름두 할라는가 몰라."
하고 태석이가 잔디 위에 앉으면서 말하니, 형걸이가 그 옆에 펄신하니 마주앉으면서,
"단오에 씨름을 안 할라구."
한다.
"글쎄 대운동회하는데 어데서 할까."
하고 형선이도 그 옆에 와 앉는다. 그는 장가를 들고서 곧 머리를 깎았다. 대봉이는 며칠 전에 두 번째 깎아서 새하얀데, 형걸이와 형선이는 머리 깎은 지가 한 달이 훨씬 넘어서 수북이 돋았다. 장가갔다 사흘 만에 돌아와서 형선이는 머리를 깎고 학교로 왔다. 그 뒤에 한 달이 지나서 곧 색시를 데려왔다. 농말이 아니라 그가 학교를 필하면, 이렇게 동무들과 노는 동안도 색시 생각이 나서 안절부절을 못 할 지경인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늘 이겨 오던 대봉이한테, 마지막에 힘이 모자란 것을 놀려 대는 태석이의 말도, 미상불 바로 맞힌 말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대운동회는 하루믄 안 되나. 그러니 첫날은 방선문 소우전 마당에서 씨름 붙이구, 대음날은 솔밭 소재에 예펜네덜 구눌 띠우구, 사흘 째 되는 날 여기서 운동회하믄 그만 아닌가."
형걸이는 형선이의 말을 잡아서 자상하게 설명해 들려 주듯 한다.
"글쎄 그렇게 하믄 몰라두, 씨름을 붙인다게 되믄 하루엔 아마 못 될 게라."
형선이는 아우의 말을 별로 바로잡는 것은 아니나, 다시 좀 제 의견을 세워 보려 한다.
"안 되믄, 소재 오르는 날, 사나히들끼린 씨름 붙이믄 그만이지."
별로 아무개에게서도 말이 없다. 형걸이는 생각난 듯이 말 있는 쪽을 잠깐 돌아본다. 그 바람에 모두 말을 바라본다. 말은 뜯어먹을 풀도 없어서 시름하니 눈만 꺼먹거리고 서 있다.
"운동회 때 어데어데서 올려넌지 몰루나, 안즉."
하고 길손이가 손을 조끼 주머니 속에서 아무적거리며 물으니, 말을 멍하니 바라보던 대봉이가,
"작년에 페양 왔던 고장선 거반 다 올 게다. 그렇거믄 위선 페양."
하고 넌떡 손을 들어 꼽으면서,
"쉰천, 은산, 자산, 엥유, 강세, 농강, 이것만 해두 닐급이지. 거기다가 대드리에서 올 게구, 기창이랑 아마 이런 데서두 올 게다. 강동이랑 양덕 촌놈덜두 올래나. 아마 거긴 안즉두 학교가 없는지두 몰라."
길손이도 조끼 속에 넣은 손으로, 대봉이를 따라 손가락을 꼽아 세고 있다가, 대봉이의 말이 뚝 떨어지자,
"아야, 거 법제히 많갔넌데, 다 오믄 열한 고장이구나. 아따 인제 참 굉장하갔다."
하고 두 손을 쫙 들어 열을 만들었다가, 다시 또 엄지손가락 하나만을 번쩍 들어 본다.
"그럼 패일날 백일장은 어떡허나."
이렇게 형선이가 또다시 걱정을 하는 것을,
"그까짓 패일놀이 좀 번디문 어때. 대운동회가 한 달이 있으믄 올 텐데, 그때나 한번 본때 있게 해야지."
하고 제 맘대로 할 것처럼 형걸이가 가로맡아 이야기한다.
"패일날은 백일장보다두 비류강에 등불 띄우는 게 더 보기 좋더라. 백일장은 전부 협잡이 많아서 원."
하고 태석이도 한말 추렴에 든다.
한참 또 덤덤히 앉아 있다. 저녁해는 화줏머리 위에 너웃너웃한다. 둘러앉은 젊은 축들은 모두 저저끔 생각에 취하여 멍하니 딴 곳만 바라본다.
―---형선이는 처음은 파일날 생각을 잠깐 하다가, 곧 색시 생각을 하고 있다. 저녁이 다 되었을 텐데 기다리지 않을까, 가봐야겠는데, 먼저 일어서면 놀릴 게고…….
―---형걸이는 언뜻 두칠이 처 쌍네가 지금은 큰집 부엌에서 뭘 하는가, 연자간에 있는가 물을 긷는가, 물에 나가 다리를 걷어 올리고 물 속에서 빨래를 헹구지는 않는가, 이런 걸 생각하다가, 다시 대운동회할 때든가 씨름터에 다른 이는 몰라도, 그는 구경 올 수 있으려니, 두루두루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있고…….
―---대봉이는 작년 평양 대운동회에 나갔던 걸 회상하고, 그때 그 굉장하던 광경을 이 자그마한 고을 안에다 이모저모 옮겨다 놓으면서 있고…….
모두 제가끔 생각이 갈라졌는데, 길손이는 씨름이 한창 어울리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가기 전에 씨름이나 한 번씩 하자."
하고 방정맞게 궁둥이를 털고 일어선다. 이 바람에, 모두 달콤한 생각이 깨어져서 푸수수 일어나는데, 그럭하고 생각하니 참말 씨름이라도 한 판씩 했으면 싶은 표정들이다.
이런 땐 서글서글하니 형걸이가 불쑥 잘 나선다.
"옛다, 한 판 어느 놈이구, 절구 굴리듯 해보자."
하면서 사포를 휙 풀판에 던지고 반반한 잔디 위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번쩍 두 팔을 내벌린다.
"한번 어울려 볼까."
하면서 연세가 제일 많은 태석이가 허리 괴춤을 죄면서 대선다. 길손이는 제 허리끈을 풀더니 샅타래를 만들어서 두 사람이 마주앉은 데로 던지고, 또 한 학도도 허리끈을 풀어서 형걸이를 준다.
그들은 샅타래를 바싹 올려 끼고 서로 맞붙어서 슬슬 어른다. 형걸이는 한 손으론 샅타래를 끼고, 또 한 손으론 태석이의 궁둥일 뚜덕뚜덕 뚜들겨 본다.
"아니, 이거 아즈마니가 이렇게 살지게 길러 줌뗑까?"
하고 말하니, 태석이는,
"엑키 버릇없게, 누가 그런 죄 될 말두 하나."
하면서 일어서려고 어름어름한다.
"버릇없는 걸 볼라믄."
이렇게 말을 해놓고, 훌떡 형걸이는 일어서면서 그 다음은,
"어르라."
소리를 요란하게 불러 댄다. 들어 던지려고 하나, 태석이가 배를 주지 않아 맞붙지를 못하고, 그 다음 배지기를 들어 날쌔게 휙 감아 던지며,
"오눌 나죽에 아즈마니께 미안하다구 그러우."
하고 땅에 손을 짚은 태석이를 굽어보며 손을 털고 다리를 뽑는다. 태석이는 형걸이를 바라보고 벌신벌신 웃으면서, 그대로 두 손을 땅에 짚고 궁둥일 쳐들고 앉았다.
"자, 이젠 형제끼리 한번 붙어 봐라."
하고 대봉이가 형선이의 손을 끌고 잡아당기니, 형선이는 눈을 약간 찌푸리며,
"에라, 씨름은 무슨 씨름."
하면서 손을 뿌리친다. 형선이의 생각을 알아채고 형걸이는 인차 모자를 쓰면서,
"저낙이나 먹으레 가자."
하고 말 있는 길가로 뛰어간다. 형선이가 바로 집으로 가는 길이니, 그에게 말을 맡기고 자기는 곧바로 두뭇골 집으로 가면은 십상 좋겠는데, 형선이는 몸을 아껴서 본디부터 저 혼자는 말을 타지 않았다.
그래 형걸이는 그들을 뒤에 두고 말잔등으로 뛰어올랐다. 길손이 혼자서 향교 앞으로 도로 올라가고, 나머지 여럿은 쭈르니 일자로 서서 거리로 통하는 긴 길을 뭐라고 떠들어 대면서 내려오고 있다.
이들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등뒤에 남겨 놓고, 형걸이는 말 궁둥이에 채찍을 하나 주었다. 말은 네 다리를 골고루 놀리면서 건성건성 뛰기 시작한다. 피 덩치처럼 붉은 해가 십이봉을 넘느라고, 하늘과 산봉우리를 주홍빛 놀로 물들이고, 비류강 있는 앞쪽은 파르스름하던 신록이 까맣게 싸여 보인다. 형걸이는 그곳을 먼발로 바라보면서, 말 가는 대로 맡기고 있다. 말은 이윽고 우물께를 지난다. 그런데 웬일인지 뚜벅뚜벅 걸음을 늦추며 코를 한번 부르릉 불어 본다. 이 소리에 놀라 길 앞을 보니, 두칠이 처 쌍네가 양푼에 무엇을 넣어 들고, 큰길을 이리로 오다가, 두뭇골 가는 작은 길로 들어서려는 것이 보인다. 말은 하루 세 때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쌍네를 그곳에서 발견하고 반갑다곤지 코를 한번 불어 본 것이다. 형걸이는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 뜻밖에 쌍네를 만난 것이, 처음은 가슴이 뚱하였으나 그 다음은 적지않이 반가웠다. 쌍네는 말이 아는 체하는 것이 고맙고 반가워서, 말께 대고 발신하니 웃어 보다가 힐끗 말 위에 탄 형걸이를 쳐다보곤, 얼굴에서 황급히 웃음을 거두고 총총히 작은 길로 들어서 버린다.
말은 그대로 거리를 향하여 뛰어간다. 형걸이는 쌍네의 종종걸음을 쳐서 걸어가던 양푼 든 뒷모양과, 말을 보고 발신하니 웃다가 제 두 눈과 부딪치자 웃음을 거두던 표정과, 낡은 흰 수건으로 머리를 두른 밑으로 약간 보일락말락하던 해에 그을지 않은 살커리가, 얼마나 희고 보드랍던가를 말 위에서 생각해 보고 있었다. 말은 행길로 나섰다. 형걸이는 그 길로 곧장 외양간에 가져다가 말을 매어 두기가 싫고, 비류강을 줄기차게 건너간 승선교를 한번 건너갔다 오고 싶었으나, 불현듯이 다시 무엇을 생각하고 말이 가는 대로 내맡겨 두었다. 말은 제 외양간을 찾아갔다.
말을 외양간에 매고 사랑 앞마당을 지나는데, 중문 안뜰을 지나서 형선이 처 보부가 뒤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번끗 들여다보였다. 형걸이는 잠깐 주춤하니 서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듯 하였으나, 이윽고 아버지 눈에 띄지 않게 휭하니 사랑 마당을 빠져서 다시 행길로 나와 버렸다. 그는 다시 향교 길로 들어서서 지금 마주 내려오는 형선이, 대봉이 들과 인사말로 헤어지곤 곧 우물께에서 두뭇골로 가는 작은 길에 들어섰다. 해가 넘어가 버리니 갑자기 벌판 위에는 꺼머룩한 장막이 땅 위에 기어들고, 동녘만 희멀그럼하니 트여 있다. 형걸이는 외로운 길 위에서 잠시 주저앉아,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일을 수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저녁을 먹을 염도 안 하고 길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두뭇골로 갔던 쌍네가 돌아오는 것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기 위함이란 걸, 스스로 의식하기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그는 잠깐 놀란다. 내가 진정 쌍네에게 맘을 두는 것인가. 이것을 면바로 생각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지금의 형걸이로선 겸연쩍었다. 그는 여태껏 이런 질문이 저의 속에 떠오를 기미가 엿보일 때마다, 그것을 회피하여 멀리로 도망질을 하였다. 저의 마음이 두칠이 처 쌍네에게 끌린 것이 진정에서 나온 것인지, 그것조차 그는 분간키 어려웠다. 아름답기나, 깨끗하기나, 신선함이 어이 보부를 따를 것이냐, 그러나 그는 이무 형수였다. 그를 번끗 먼발로라도 본 뒤에는, 형선이는 어떻게 복을 탄 놈이기에, 저렇도록이나 이쁘고 훌륭한 색시를 맞을 수 있었던가 하는 희미한 오기가 뒤따른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은 쌍네의 활짝 핀 난만한 얼굴이 덮어 버리고 만다. 과연 이것은 보부를 그리워함인 때문인지, 쌍네에게 맘이 더 쏠리는 탓인지 제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다. 종잡을 수 없는 만큼, 그대로 그런 생각이 나올 여지가 없도록, 덮어 버리려는 노력이 앞을 서는 것이다.
그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두칠이 처는 또한 이무 두칠이 처다. 그는 남의 아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그는 그의 집 종이었고, 지금도 그의 집 막서리다. 어떻게도 할 수는 있으나, 그런만큼, 한편으론 창피도 하다. 이러한 여러 갈래로 벌어진 문젯거리가 쌍네를 기다리고 있는 이 어둠이 찾아든 외로운 길 위에 총총히 뿌려져 있는 것을, 그는 의식하곤가 못 하곤가 그대로 한참 동안이나 덤덤히 앉아 있을 뿐이다.
사실 그는 이런 것과는 딴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눈, 코, 입, 등골, 그리고 가슴, 저고리 속에 감춰진 채 불룩한 가슴, 이런 것을 두루두루 언뜻언뜻 머리에 떠오른 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저편 쪽에서 희끄무레한 것이 나타났다. 이 그림자가 이쪽으로 가까이 오는 것만 알고도 그의 가슴이 울렁거리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는 먼발로 어떤 희끄무레한 그림자를 발견하자, 이렇게 가슴을 두근거려 본 적이 기왕에 있었던가, 가까이 오는 그림자가 쌍네의 것인 줄을 똑똑히 알고, 길 위에 몸을 숨기고 그가 제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이렇게 산란스런 마음으로 기다려 본 적이 지난날에 있었던가, 남의 아내, 아니 자기 집 비복, 어렸을 땐 업으라고도 하고, 끄덩이를 낚아채며 때려 대기도 한 이 종간나를 지금처럼 가눌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는 생각으로 기다릴 날이 찾아올 것을 예상인들 한 날이 여태껏 있었던가―---그러나 거의 이런 걸 생각할 나위도 없을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대로 마음이 설레는 것을 빡 눌러 버리고, 한 줄기 모든 감정을 운전하는 커다란 힘에 이끌리어, 그는 불쑥 몸을 일으키었다.
뜻하지 아니한 사나이가 불쑥 길 위에서 솟아나는 바람에, 빈 양푼을 들고, 말 여물을 누가 주었는가, 여직 말이 먹을 것을 못 받고 자기가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지는 아니한가―--- 이런 얌전한 생각에 싸여서 종종걸음을 쳐오던 두칠이 처 쌍네는, 적지 않이 놀라서 거의 소리를 지를 듯 기겁을 하며 길 위에 오뚝 섰다. 그러나 길 위에서 일어난 사나이가 다른 사람 아닌 상전의 도련님, 지금 양푼에 별식이라고 설기떡을 가져다 주고 오는, 두뭇골집 도련님, 바로 그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쌍네의 놀람은 또 한번 더하였다.
어둠이 낯색을 희끄무레하게 감추어 버린 뒤라, 형걸이의 얼굴에 불그레하니 떠오른 상기된 표정을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뭐라고 이야기를 걸려고 하다가 주춤거리며 푸 내뿜는 입김이 얼마나 홧홧하니 뜨거운 것인지는 넉넉히 분간할 수 있었다. 두 눈이 벌겋게 핏줄이 내발린 것은 물론 쌍네에게는 자상하게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힐끗 쳐다보는 사나이의 눈이 이상한 불길에 횃불처럼 이글이글 끓고 있어, 그는 대번에 그 눈살을 피해 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사나이의 표정이 어떠한 의사를 표시하는 것인지는 쌍네로서도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예상치 못했던 말이라든가 행동이, 자기의 몸 위에 떨어질 것을 고요히 기다리기나 하듯이, 쌍네는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형걸이의 앞에 서 있다.
"어데 갔더랬소."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겨우 이 한마디를 하느라고 형걸이는 부득부득 애를 썼다. 그러나 이 한마디 말이 지금의 형걸이의 마음을 표시하기에는 너무도 동떨어지고, 또 싱겁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 한마디 말이 두 사람에게 동시에 이상한 어울리지 않는 어감으로 느껴진 것은, 그것이 형걸이로서는 뜻하지 아니하였던 존대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쌍네로서도 난생 처음 이러한 조심스런 말을 들어 보았다. 한편 형걸이는 제 입으로 금방 나온 말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도무지 제 말 같지가 않았다. 그는 겨우 제정신을 찾아 붙든 듯이,
"두뭇골 갔더랬어?"
하고 어인 일인 줄을 몰라 덤덤히 서 있는 쌍네에게서 눈을 돌리듯 한다. 가느다란 한숨이 나오며, 그는 비로소 감정이 한소끔 끓어 오르다 잦은 때처럼, 고요한 적막을 느끼면서 평정을 찾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여유를 만들려고 마주선 데로부터 한 보를 물러선다. 다시 쌍네를 굽어보았을 때, 그는 오무라졌던 목을 들고 안심한 표정을 얼굴에 그리면서,
"두뭇골 댁에서 저녁 늦으시다구 기다리시든데요."
하고 다시 발밑을 내려다본다. 길만 비켜 주면, 이 이해할 길 없는 장소에서, 어서 몸을 빼 달아날 것을 그의 생각은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형걸이는 그러나 쌍네의 그러한 말은 무시하듯 덮어 버리고,
"두칠인 삼밭이루 가드만, 아마 늦게야 올걸."
하고 쌍네의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땅거미가 이무 캄캄한 어둠으로 변한 속에서, 커다란 두 눈이 색시의 눈 속을 들여다보려고 눈시울을 활짝 뻗치는 것이다.
쌍네는 지금에야 비로소 형걸이의 여태껏의 수상한 행동을 알아차린 듯하여, 진정으로 부끄럼을 느꼈다. 일순간 그는 비복의 지위를 망각한, 순수한 하나의 젊은 색시인 자기를 의식한다. 그러나 곧 그는 두칠이의 아내요, 다시 두칠이는 지금 눈앞에 선 도련님네 막서리요, 자기는 여태껏 이분의 비복이던 것을 생각하고, 그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죽을 용기를 다하여 길을 비켜 달라는 듯이, 고개를 숙인 채 한 발자국을 나서서 바른편 개굴 쪽으로 몸을 뽑으려고 하는데, 덤석 형걸이의 커다란 팔이 그를 붙들어 버린다.
"누가 보믄 어떻게 하실라구."
말로는 이렇게 부드럽게 건네 보면서도, 그는 팔 속에서 가슴을 밀어 던지며 파득여 보았다. 물론 그의 연약한 팔힘이 형걸이의 굳게 껴안은 가슴과 팔을 거역할 힘은 없었다. 그러고 있는 새에 형걸이의 입술은,
"밤에, 달이 넘어갈 때."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토막말을 조약돌처럼 배앝으면서, 낯을 돌리는 쌍네의 입술을 찾아서 더운 김을 내뿜다가, 드디어 기진한 듯이 양푼 든 팔을 늘어뜨리고, 팔 속에 파묻히고 마는 색시의 얼굴을 눈앞에 가까이 부둥켜 올린다. 한참 만에 다시 생각난 듯이,
"놔달라구요."
하고 몸을 뒤채 보는 것을, 또 한번 얼굴을 더듬어 입술을 빼앗은 뒤에 그는 겨우 쌍네에게서 팔을 떼었다. 쌍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형걸이의 팔 속에서 몸을 뽑더니 양푼을 한 손으로 추켜 들고 덤덤히 길을 쫓아 뛰어간다. 그는 아직도 '두칠이가 오기 전에' 하던 형걸이의 목소리를 귀밑에 새록새록하니 생각하면서 큰길로 올라섰다.
겨우 발그레하니 빛을 내는, 한 귀가 으스러진 달이 얇은 구름 속을 지나가는지 길이 포근하게 희다. 쌍네는 흐르는 눈물을 씻지도 않고, 이 눈물이 자기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려는 것인지, 불행을 가져다 주려는 것인지를 분간치 못한 채, 흰길 위를 종종걸음을 쳐서 뛰어갈 뿐이다.
형걸이는 쌍네가 길 위에서 보이지 않게 되도록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쌍네가 향교 골목을 돌아서 행길 쪽으로 몸을 숨겼을 때, 그는 달을 쳐다보고, 다시 두뭇골 쪽으로 가만가만히 발을 옮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