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형준이가 쌍네한데서 마음을 이루지 못하고 삼십육계마저 헛방을 짚은 뒤에, 문길덕이네 집으로 쫓아와 두칠이를 불러 내다, 형걸이와 쌍네의 행동을 꼬챙이질하고 있을 때, 형걸이는 강선루 앞 관가 우물께를 호둘기 바람으로 거닐고 있었다.
형걸이는 어머니한테 두칠이 처를 보아 다닌다고 꾸중을 들은 이후, 어머니의 말대로 다시 쌍네의 방에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밤에는 일체로 밖에 나가지 말라는 훈계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한 이틀 동안은 나가지 않았으나, 삼일 예배에 회당에 간다고 나간 뒤부터는, 안 나가는 날도 없지 않았으나, 무슨 일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나다녔다. 박참봉이나 윤씨는 나가지 말라고 한번 이르기는 했으나 시퍼렇게 젊은 놈을 울 속에 가두어 둘 수도 없을 뿐더러, 이루 못 나간다고 잘게 굴기도, 나이 찬 아들에게 미안스런 일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저야 장가 안 가겠노라고 한마디 뿌루퉁했던 김에 내뱉은 말이 있기는 하나 하루바삐 맞차운 규수를 탐문해서, 형걸이의 혼사를 작정해 놓는 게 부모의 할 도리라고 생각했었다.
형걸이는 오늘 밤 저녁을 먹고 날은 흐릿하고, 공부라고 별로 책도 읽기 싫고, 문교사의 집에나 놀러 갈까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대문 밖에 나서 구룡교 쪽으로 걸어나오며 생각하니, 문선생의 집에도 너무 자주 가면 외려 방해가 될 것 같다. 어젯밤에도 갔었는데, 오늘 밤 또 찾아간다면 언제 가나 싫은 낯 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 주긴 해도, 문선생 할 공부도 따로이 있을 텐데 역시 체면을 차려야 할 것도 같다. 그래 나왔던 김이라, 대봉이를 찾아갔더니, 그는 벌써 어디로 나가고 집에는 없었다. 이칠성이가 어디 간 눈치나 알고, 지금은 칠성이 처한테 가서 화투라도 치면서 놀고 있을 게 분명하다. 칠성이 처는 평양 사창마당에서 국수장사하는 집 딸인데 처녀 적부터 좀 난봉기가 있었으나, 그런대로 어디 상원으론가 시집을 갔던 것이 남편이 어리고 정이 붙지 않는다고 제 편에서 남편을 소박하고 친정에 와 있었다. 칠성이는 본시 돌림장수할 때부터 평양엔 자주 다녔으나, 좌전에서 세매끼장수로 돌아설 무렵엔, 사창마당 국숫집엘 제 집 다니듯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새서방 싫어 친정살이하는 그 집 딸과 눈이 맞아서, 부담마(負擔馬)를 태워다가 살림을 차린 것이다. 살림은 차렸으나, 제 버릇 개 주지 못하고, 칠성이가 장사로 다른 고장에 여행할 땐 심심해서 견딜 턱이 없다. 혼자서 투전목이나 화투장을 주무르고 앉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시골에 와서 처박혀 고적도 하고, 칠성이가 오면 원체 정없이 붙은 남편은 아니므로 그런대로 재미가 날 만했으나, 그가 어디론가 다니러 가면 혼자서 죽을 지경으로 쓸쓸하였다. 자행거 구경 왔던 대봉이는 그래서 곧 좋은 말동무가 되었고, 처음부터 대봉이를 딴생각 있어 놀러 오란 건 아니지만, 날이 거듭해 친근의 도수가 잦아지면, 나이 찬 총각이라 무슨 일이 지금쯤은 생겨났는지 아무도 알 이가 없다.
형걸이는 대봉이의 근경을 대체로 짐작은 한다. 그러므로 칠성이네 집으로 대봉이를 찾아갈 생각은 먹을 염도 안 했다. 대봉이가 혼자서들어가 논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고 뜻밖에 칠성이라도 나오면 면구스런 일이기 짝이 없다. 그때 형걸이는 쌍네 생각이 잠시 나긴 했으나 두칠이도 집에 있을 것이고, 또 그가 없다고 하여도 좀처럼 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 그는 집으로 돌아와 잠이나 자버릴까 했다가, 문득 일전에 전도를 한답시고 찾아갔던 부용이 생각이 났다. 대봉이의 훌렁이로 들어가서 객쩍은 수작을 늘어놓고 나오긴 했으나 기생이 예절답고 몸가짐이 품위가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렴발 옆에서 제 손목을 잡았다가 낯이 발개져서 어쩔 줄을 모르던 생각이 간절해서, 그는 저도 채 의식지 못하면서 강성루 쪽으로 거리를 올라가다가, 이렇게 관가 우물께로 휘어 돈 길을 거닐고 있던 것이다.
휘파람도 불지 않으면서 천천히, 그러나 속으론 부용이 생각을 이리저리 해보면서 걸음발을 옮겨 놓는다.
부용이는 지금 무엇 하고 있는가. 평양서 처음 온 기생이라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고 해도, 그의 용모와 몸맵시와 사람 대하는 품으로 보아, 한번 본 사람이면 누구나 놀러 갈 만한 인물이니, 이렇게 날이 어둡고 별조차 드문 밤엔 한량이나 난봉꾼이 아니라도, 그의 집을 찾아가서 주안을 베풀고 가야금이라도 들으면서, 운치 있게 밤을 새기를 아끼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달 밝은 밤에는 달이 밝아 맑게 노는 게 좋을는지 모르나, 이렇게 날씨가 묵죽한 기분을 돋우는 날, 오히려 술잔을 들어 감격을 나누는 이가 더 운치를 아는 이일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예수교 전도라고 한 번 들렀던 저 같은 약관이, 학도의 신분으로 기생의 집을 엿본대야 차례가 올 리도 없고, 차례가 왔단들 어느 기생이 있어 반갑게 맞아 줄 인들 있으랴 생각이 든다. 결국 그를 찾는다는 것도 공연한 허사라 생각이 되는 마음은 더한층 울적하다. 그러나 그대로 돌아가기는 싫다. 담장 밖을 배회하며 방 안에서 나는 가야금 소리라도 듣고 싶다. 간혹 새어 나오는 맑고 고운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발을 옮기고 있는데 얼추 대봉이네 일갓집 된다는 그 집 대문 앞에 왔을 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하며, 얼건하니 취한 젊은이 둘이 부용이 집 담장을 돌아 행길로 나선다.
"촌놈들 버릇없이, 사람 잘못 봤다야 늘상 경이나 치기 알맞지."
이렇게 누구를 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게 중얼거리며, 형걸이 쪽으로 가까이 오는 젊은이는 국자보시를 저마다 쓰고 지카다비를 신은 양다리에는 감발을 치고 저고리는 꺼머룩한 양복을 걸쳤다. 목에 수건을 매고 절반도 안 탄 히로담배를 휙 던지며 나오는 게, 이 고장선 며칠 전부터 처음 볼 수 있는 측량사이기 갈 데 없다. 그런데 뒤이어서 옷자락이 흩어진 채 몸을 가누지 못한 사십 줄 든 사나이가 하나, 누구에게 부축을 당하여 가느다랗게 아이구 소리를 뇌며, 바로 그 담장을 나오더니 저편으로 내려가 버린다.
측량사들은 휙 형걸이 옆을 지나친다. 지금 사람을 치고 나온 힘이 아직도 어깻죽지에 남아서, 형걸이 같은 건 보는 둥 만 둥, 툭 부딪쳐서 밀친 채 길 위에 침을 테 하고 내뱉는다. 저편에 선 또 한 자는,
"무에구 닥치는 대루 파김치를 만들어 버려."
하고 마치 지금 어깻죽지로 부딪쳐 밀친 어린아이놈도 걸리는 대로 후려갈기라는 말조다. 형걸이는 가슴에 뭉클하는 것이 올라 솟구는 걸 느낀다. 그는 얼굴을 돌렸다.
"여보게, 자네덜 사람 그렇게 잘 치나."
깔보는 데 분이 난다기보다는, 지금 싸움이 필시 부용이 집에서 일어났으리라는 데 더 격분이 동한다.
"그래 좀 겪어 보려나."
국자보시는 일시에 머리를 뒤로 돌리고 이제라도 덤벼들어 올 자세를 취한다. 형걸이는 침착하니 서서 그들을 살펴본다.
"너이들 사주 막 냈구나."
어린아인 줄 알았던 것이 돌이켜보니, 두 발로 꽉 땅을 딛고 태연하니 팔장을 결었다. 건방진 자식이―---이렇게 생각하면서, 얼찐하니 취한 머릿속에 은근히 격정이 화염처럼 퍼져 나갈 때, 어느결엔가 형걸이의 두 팔이 하나씩 그들의 멱암치를 받쳐 들었다. 머리로 받으려는 걸 미리 앞질러 놓는 태세다. 대가리를 둘러 보았자 동발처럼 터거리를 받친 형걸이의 팔 힘을 이길 수가 없다. 바른손에 붙들린 자가 날쌔게 발길질을 하려 대드는 걸, 인차 멱암치를 낚아채며 앞 이마를 갖다 대니, 떡 소리가 나면서 이어 파김치가 되어 쓰러진다. 인제는 한 사람 대 한 사람이다. 그러나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형걸이의 왼편 팔에 돌처럼 굳은 두 개의 손이 달려들어 온다. 두 손은 대장간 집게처럼 형걸이의 주먹을 부여뜯더니, 만신의 힘을 갖고 팔뚝을 휘어서 제 배통 가까이로 끌어 낚는다. 인제 다리만 후려차면 팔이 꺾이면서 형걸이는 저만치 가서 나가떨어질 판이다. 형걸이는 머리로 상대편의 앙가슴을 황소처럼 받으며, 왼팔을 잡힌 채 바른손으로 다시 멱암치를 놀려 잡는다. 손이 잘못하여 입술에 가 닿으니 수염이 지저분한 넓은 입이, 날쌘 앞니로 형걸이의 손잔등을 물어뜯는다. 갑자기 전 몸뚱이를 휩쓸고 스쳐 가는 아픔은 그러나 오히려 마지막 힘을 다하게 하는 자극물이 되었다. 손이 찢어져도 좋다. 욱 하고 밀어서 맞은 집 바람벽으로 몰아넣고, 죽으라고 배통이와 앙가슴을 받고 있는데, 저편도 기진하여 입도 팔도 맥을 잃고, 그대로 건들거리다가 바람을 등진 채 물러앉고 만다. 몸을 뽑고 갓신발로 대가리께를 한 번 넘겨 차니, 국자보시가 머리에서 떨어져 구르고 사람은 맥없이 돌베개를 벤다. 피가 흐르는 손을 꽉 붙들고 다시 길 위에 나서니, 캄캄한 밤에 사람의 그림자가 웅성웅성한다.
"거 맞은 건 누군데, 때린 건 누군가."
형걸이는 행길 쪽으로 뒤를 사리고 뺑소니를 쳤다. 순사가 오든가 하면 이편에 잘못은 없지만, 시끄러울까 저어한 까닭이다. 강역으로 빠져나가서 가만히 숨을 돌리려는데 등뒤에 쫓아오는 이가 있다. 그는 그 그림자가 가까이 오기 전에 몸을 감추려고 방수성 밑으로 내려 뛸까 한다. 그러나 뒤쫓아 골목길을 더듬어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거칠지 아니하여, 그는 잠시 동안을 엉거주춤한 자세대로 서 있어 본다. 제 어깨에 닿는 손이 저를 해하려 들면, 그대로 방수성 밑으로 끌고 떨어져 물 속으로 굴러들면 그만이다. 그러나 거칠지 아니한 발자취마저 딱 멎어 버리고 강가는 예전처럼 고요해진다. 승선교 밑 여울물 소리가 멀찌감치 들려 온다. 그는 고개를 돌이켜보았다.
손을 내밀면 잡힐 만한 곳에 뜻하지 아니한 웬 한 젊은 여자가 서 있다.
"누구요."
하고 물어 본다. 필시 싸움터에서 따라온 여자이기 분명한데, 이렇게 자기 등뒤에 와서 아무 말 없이 서 있을 여자는, 이 윗동네에는 있을 성부르지 않다.
"저올세다."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이 찬란한 부용의 것이었다.
"부용이."
가느다랗게 형걸이도 중얼거려 본다. 그만큼 그는 뜻밖이고 또 반가웠던 것이다. 지금 제 손에 넘어진 두 측량기사, 부용이 집에서 행패를 하고 나오던 길인 줄은 짐작하였으나 싸움터에 구경꾼이 끼여서 부용이가 섞여 있던 것을 알 턱이 없었고, 뒷감당이 귀찮아서 주(走) 자를 놓을 때에 뒤를 밟아 따라온 이가 부용이었을 줄은 꿈 밖의 일이었던 문제이다.
형걸이는 길 위로 한 발자국 물러선다. 그곳에 부용이가 있다. 얼굴도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걸어서 부용이 옆에 와 선다. 향긋한 기름 향기가 풍겨 돈다. 부용이는 아무 말도 못 한다. 형걸이도 아무 말을 못 한다. 가지런히 섰다가 형걸이가 한 발자국 위쪽으로 옮겨 놓으니, 가벼운 마른 갓신 소리가 그의 옆을 따라온다.
그들은 덤덤히 이화정 쪽을 향하여 비류강 안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에서는 개구리 우는 소리가 나직이 들려 온다. 개구리 알을 까느라고 별 없는 캄캄한 밤에 개구리는 이를 갈듯이 안타까운 소리를 내는 것이다.
부용이는 나이 열여덟이 되도록 누구의 앞에서 이렇도록 말 움이 오무라들어 보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손님 앞에서 인사성 있고 이야기를 잘 받는다고 귀염을 산 그였다. 인사 한마디 변변히 못 하고 치하의 말 한마디를 올리지 못한 채, 이렇게 덤덤히 사나이의 옆을 따라가 보기란 난생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가슴 안에 꽉차 있는 사연을 말해 보려고 애를 써본다. 그러나 입술을 열고 나오는 말이란 말이 하나도 제 마음을 그대로 아뢰어 주지는 못할 것 같다.
부용이는 오늘 저녁 어떤 선비처럼 차린 손님을 뫼시고, 술상을 배설한 뒤에 추수 김부용(秋水金芙蓉)의 시담(詩談)으로 기름 조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밤이 이슥할 무렵에, 본 데 없는 왼데 녀석 둘이 보쌈에 꺽지 격으로 뛰어들어 휘두를 때였다. 손님이 있다고 좋은 말로 얼러 주는 것도 종시 듣지 않고, 생트집을 잡아서 드디어는 손님에게 무엄한 행패질까지 하고 말았다. 뫼시고 왔던 가신이 겨우 손님을 부축해 갖고 나간 뒤에, 조금 있자 밖에서는 또다시 사람 싸우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혹시 금방 옷고름도 가누지 못하고 돌아간 손님에게, 그 녀석들이 포학스런 행패질을 거듭하는 건 아닐까 하고 부리나케 쫓아나와 보니, 그 손님의 그림자는 간 곳 없는데, 행길 가까운 곳에서는 트리싸움이 벌어졌다. 벌써 구경꾼은 네다섯 모였는데 캄캄하여 똑똑지는 않으나, 세 사람 중의 두 사람은 조금 전에 제 집을 나간 외방 사람인 게 분명하였다. 한 자는 길 위에 거꾸러져서 두꺼비처럼 우무럭거리며 신음 소리를 올리고 있고, 또 한 자는 호둘기 바람인 웬 한 청년과 얼러붙어 돌아가고 있다. 부용이 집에서 나오다가 이 청년과 다시 싸움이 어우러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때는 벌써 여남은 사람 모인 군중 틈에서, 두 사람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이가 누군지를 알려고 부용이는 안타까이 머리를 솟구어 본다. 그러나 바람벽으로 몰아다가 머리를 상대편의 배통이에 박고 처박아 대는 청년의 얼굴을 찾아볼 길은 바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맞붙어서 한참 동안을 비벼 대고, 윽박질하고, 헛발질을 하고, 후려갈기고 하면서 옴짝을 안 한다. 한참 만에 어디를 단단히 꼬집히든가 물리든가 했는지, 씩씩거리는 숨결에 섞여서 외마디 비명이 들릴 때, 부용이는 그 목청이 어디서 들은 법하였고, 그래서 더 안타까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는데, 휙 그의 아는 얼굴이 하나 지나간다. 바람벽에 몰아박고 맥을 못 추게 굴렁이를 지운 뒤에, 민첩하게 몸을 뽑아 달아나는 청년의 얼굴―---그것은 일전 공일날 예수를 믿으라고 부용이 집에 찾아왔던 그 학도 청년의 얼굴이기 갈 데 없었다.
그 학도―---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두 손목에서 울리는 억센 혈맥을, 그는 한참 동안이나 제 손목에 넣어 본 일이 있다.
항우 같은 두 외방 사람을 거꾸러뜨리기는 했으나, 한참 어울려 싸울 땐 비명을 올리리만큼 그도 피곤하였을 것이다. 비호처럼 몸을 뽑아 행길을 건너 강기슭으로 달아나는 학도의 뒤를 쫓아, 부용이는 저도 모르는 흥분에 싸여 골목길을 뛰어내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 청년 학도의 옆에서 덤덤히 위쪽을 향하여 고요한 강기슭을 걸어올라가면서, 부용이는 심장에서 뭉쳐들던 솜방망이 같은 것이 사뿐히 풀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와사처럼 가슴에 찼다가 목구멍과 코를 통하여 얼굴로 퍼져 올라간다. 그것이 전 몸뚱이에 퍼질 때 비로소 부용이는, 제가 행복된 분위기 속에 싸여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기 앉아 봅시다."
이화정이 저 언덕에 우중충하니 서 있을 것이나, 칠흑 같은 밤엔 그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수양버들이 머리 위에서 간지럼을 피우는 걸로, 그들은 버들 포기 밑에 온 것을 아는 것이다.
늙은 버드나무 긁을 손으로 더듬어서 가지런히 두 자리를 찾아본다. 형걸이는 다치지 않은 한 손을 캄캄한 속에 내밀어 본다. 치마에 손끝이 스치는 듯하는데, 곧 따가운 섬섬옥수가 그의 손을 찾아든다. 먼저 제가 앉고, 그 옆에 부용이를 이끌어 앉혔다. 여자의 향기가 버드나무 밑에 엉켜 돈다. 천주봉만이 겨우 하늘 속에 희미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밑에 흐르는 강물도, 정각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승선교 위에 어화가 하나 별처럼 간들간들 졸고 있다. 개구리 소리조차 멀어졌다.
"내가 누군지를 아시겠소."
형걸이는 가만히 물어 본다.
"모르는 이를 따라서 별 없는 밤에 이렇게 무엄스리 굴 년이 있겠습니까."
형걸이는 한 손으로 부용이의 두 손을 꼭 잡아 본다. 가락지가 따끈한 손 속에서 산뜻하니 차다. 한 손 속에 두 손을 넣고, 부용이는 비로소 사나이의 바른손을 생각한다. 그리고 아까 싸움터에서 울리던 외마디 소리를 연상한다.
"오른손을 다치셨나요."
"대단친 않으나, 그 녀석이 물어뜯은 모양입니다."
"본데없는 치사한 놈들."
부용이는 꾸짖으며, 사나이의 손 속에서 두 손을 가만히 뽑아 손수건을 찾아보나, 엉겁결에 뛰쳐나오느라 그것조차 잊고 나왔다. 그는 소리 안 나게 치마 고름의 한끝을 끊는다.
"이걸로 동여맵시다."
"피는 멎은 모양이니 그대루 두어도 좋을 텐데."
"아뇨, 이걸로 더 맵시다."
캄캄한 속에서 잔등이 부풀어 오른 손을 부용이는 터매 준다. 그 손을 제 손 속에 가만히 올려놓고 쓰다듬듯 해본다.
"쑤시지 않아요."
"술취한 김에 물어뜯었을 테니까, 무슨 독을 깊이 먹었겠소. 두어 두면 낫겠지요."
그들은 이 이상 더 싸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밤에, 그런 쌍스러운 생각을 갖고 싶지 않았던 때문이다.
"이 고장이 마음에 듭니까."
이 말엔 선뜻 대답지 아니하고 부용이는 가만히 웃어 본다. 산도 좋고 물도 좋으나, 당신 탓에 더욱 마음에 든다고 대답하고 싶으나, 그 말이 차마 입 밖에 나오질 않던 때문이다. 그는 한참 만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뫼는 푸르고 물은 깊은데, 사람조차 외로우니, 여기가 도원이 아니겠소."
형걸이는 부용이가 무산 십이봉과 비류강과 강선루를 읊은 옛 시를 들어 말함인 줄 알고 속으로 그 원시를 외워 보았다. 장문보의 시에,
山碧水深人寂寂(산벽수심인적적)
不知何處問桃源(부지하처문도원)
이라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을 입 속으로 외우고 나서, 형걸이는 부용이더러 물어 본다.
"부용이, 강선루의 압축(壓軸)을 들은 적이 있소."
"온 지 얼마 되지 않어서 아즉 들은 적이 없습니다. 어떤 선비다려 물으니 그 양반도 모르노라 말하시둔요."
"난두 들은 데 얼마 되지 않은데, 가르쳐 주는 이도 지은이의 이름은 모르면서."
잠시 말문을 닫았다가,
"응상에 운유습이요(凝想雲猶濕),
영정에 우불수라(榮情雨不收),
서기 조모우하야(庶幾朝暮遇),
십일에 구등루라(十日九登樓)."
한 번을 다시 외우고 난 뒤,
"별루 잘된 것 같지 않은데, 신선 내리는 누각이란 이름을 따서 지은 글 같습니다."
부용이는 가만히 입 속으로 한구 한구 새겨 보다가,
"마지막이 어떻게 되던가요."
하고 물어 본다. 형걸이가 한 번을 읽으니 뒤이어,
"거이 아침나죽 만날까 하야
열흘에 아홉 번 다락에 오르더라."
하고 글자를 따라 새겨 본다. 바람이 우수수하니 인다. 버드나뭇가지 흐느적거리는 소리가 솨하니 들린다. 이어서 바람은 자는 듯하면서 비가 푸뜩푸뜩 내린다.
"비가 오나."
하고 형걸이는 손을 내밀어 본다. 빗방울이 하나 손 위에 떨어진다.
"비가 옵니다. 옷을 맞추기 전에 어서 갑시다."
형걸이는 일어서나, 부용이는 자리가 아까운 듯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 좀 맞으면 어떤가요."
하고 한번 졸라 보았으나, 형걸이가 일어서서 움직이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그도 따라 일어선다.
"비 오시는데 제 집에 들렀다 가세요."
하고 형걸이 옆에 와 서면서, 부용이는 졸라 본다.
"난 시하에 달린 몸이라, 일찍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두 비가 오시지 않어요."
"비가 오니까, 비 맞지 않게 얼른 가야 안 합니까."
그들은 올라왔던 길을 천천히 내려가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집에 들러 우산 쓰고 가시면 되지 않아요."
형걸이는 아무 말도 안 한다.
"전날에 오셨다가두 총총히 가셨는데. 전 아직 성함도 모릅니다. 그게나 알으켜 주시구 가셔요."
"이름 같은 거야 아나마나, 또 아시려면 여기서도 넉넉하지요."
그러나 그는 길 가운데서 제 이름자를 가르쳐 주려곤 하지 않았고, 강선루 앞 골목으로 올라서서 행길가에 나서면서도, 부용이가 이끄는 손을 뿌리치려곤 하지 않았다. 아까 싸움하던 자리엔 개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예까지 오니 빗발만 제법 잦아졌다.
형걸이는 부용이 뒤를 따라 그가 안내하는 대로 대문을 들어섰다. 대문의 빗장을 들이고 제 방으로 들어서면서, 마루에 선 채 허성대는 형걸에게 수건을 내어 준 부용이는,
"어서 들어오세요. 비가 풍길는지도 모르니까."
하면서 발을 들치고 내어다본다. 형걸이는 전날 대봉이와 대낮에 찾아왔던 이 방이, 어쩐지 처음 보는 딴 방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윗문으로 가만히 방 안에 들어선다.
"온, 자리를 깔어 놨으니, 참 어머니두 무던히는 성급하시지."
혼자 종알종알하며, 붉은 깃 달린 남빛 차렵이불을 접어서 발치 구석으로 몰아놓고, 보료를 내려 깔면서,
"비 맞으셔서 선선하실 텐데 아랫목으로 내려오세요."
하고 웃어 본다.
"비야 무슨 비를 맞었을까마는, 이렇게 호둘기 바람으로 파탈한 몸이라서 되려 미안하외다."
물기가 남아 있는 손으로, 얼굴을 내려 쓰다듬으면서 형걸이도 버륵하니 웃어 본다.
"온 별말씀도 다 하시네. 그러시지 마시구 어서 이리 좀 내려오세요. 방이 누추하다구서 너무 흠삼지 말으시구."
제 방 안에 들어와서 유경에 켜놓은 불이 벌겋게 밝은 가운데를, 치마폭도 가볍게 오락가락하면서 주고받는 부용이의 말은, 밖에서보다 퍽 가벼워진 것 같다. 어석버석한 느낌이 없고, 마음을 허락한 사나이란 듯이 거침없이 하는 말조다. 형걸이는 부용이가 그렇게 친밀스레 저를 대해 주는 게 되레 고마워서, 권하는 대로 아랫목에 와서 펄석하니 까치다리로 앉는다.
사나이를 아랫목에 모셔다 앉히고, 부용이는 다시 가만히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 이마, 코, 눈, 입, 귀―---부용이는 만족한 듯이 낯을 수그려 가슴과 무릎을 본다. 그러나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보고 그는 깜작 놀라 일어난다. 그 발로 장롱에서 눈덩이 같은 솜을 꺼내, 사온 지 얼마 안 된 석유를 묻혀 오는 것이다.
"아이머니나."
손으로 헝겊을 끌러서 상처를 보고 부용이는 또 한번 놀란다. 부풀어 오른 손잔등에 이빨 자국이 또렷하다. 석유를 바르고 입술을 가까이 대고 여러 번을 불어 주다가,
"솜으로 좀 지져 볼까요."
하는 것을,
"내버려두시오. 만지믄 되레 오래 간다우."
하고 형걸이는 웃어 버린다. 그러나 부용이는 솜으로 지지는 대신, 문갑 서랍에서 흰 오징어 뼈를 내어, 칼로 갈아서 상처에 뿌려 준다.
형걸이는 이렇게 부용이의 쓰다듬을 받으면서, 이상한 감흥을 느낀다. 만일 이대로 집에 들어간다면 어머니가 눈이 동그래져서 이게 어인 상처이냐고 법석을 대며 일변 솜으로 지진다, 약을 바른다 하고 서둘러 대고, 한편으론 상노아이 삼남이든가 종을 시켜 의술을 불러들이며 야단이 날 만치 치료에 극진할 것이지만, 어머니의 애무와는 다른, 어떤 형언할 수 없는 감흥을, 그는 부용이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때는, 사랑을 받는 자기보다, 사랑을 주는 어머니가 더 행복되리라 생각이 갔는데, 지금 그는 비로소 사랑을 받는 자기의 행복감에 그윽이 취하여 있는 것이다. 상처를 쓰다듬어 주는 부용이보다, 안심하여 가끔 사양하면서 상처를 내맡기고 앉았는 형걸이 자신이, 한없이 행복되어 보인다. 그는 일순간 이 상처가 길이길이 나을 날이 오지 않고, 이렇게 섬세하고, 따스한 체온이 흐르는 부용이의 두 손길이, 언제까지나 제 옆에서 떠나지 않을 것을 상상해 본다. 아름답고, 행복되고, 윤택이 나는 생활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본다.
"무얼 그리 생각하십니까."
묻는 말이 곱고 아름다워서 형걸이도 빙그레 웃어 본다.
"엉뚱한 생각에 잠겼던 중이었소."
이 말을 채 끝마치지 못했는데, 형걸이의 왼팔은 가만히 부용이의등을 기어올라간다.
"몸은 문 위에 서 있으나, 마음은 그대 따라 길 위에 가도다."
이렇게 읊어 본다. 이윽고 부용이의 머리를 만져 보다 말고, 얼굴을 돌려 유경 있는 윗목을 바라본다. 병풍 앞에 놓인 등잔불이 너울너울 붉은 춤을 추고 있다.
身離倚門立(신리의문립)
魂逐美人去(혼축미인거)
그러나 부용이는 옛날 추수 김부용처럼,
驢勞凝我重(여로응아중)
添載一人魂(첨재일인혼)
이라고 대놓을 수가 없었다.
나귀 힘들어하매
어인 줄을 몰랐더니,
그대 마음 더 엎쳐서
이토록 무거웁네.
이토록 뾰족하니 놀려 댄 추수의 마음이, 사나이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곤, 부용으로서 상상할 수 없었다. 이백 년도 더 오래인 옛날의 일이매, 지금의 부용으로서는 상상키도 힘드는 일이나, 옛날의 추수 김부용이가 어느 선비의 노래에 대하였다는, 그와 같은 구절 속에 품기어 도는 마음씨는, 결코 사랑하는 생각 속에선 나올 수 없는, 깜찍한 재주라고 오늘날의 부용이에게는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걸이의 읊는 노래에 그는 추수의 구를 갖고 대놓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형걸이가 저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고마워, 지금은 아늑한 행복 속에서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있으나, 인제 한번 환선(紈扇)을 들어 갈라진 뒤엔, 언제라고 다시 만날 기약인들 있으랴 생각하니, 추수의 유명한 상사시(想思詩)가 머리에 떠오른다. 그래 그 중의 한 구절을 들어,
"사건에 눈물은 젖었으되, 만날 기약이 막막하외다."
하고 어리광 피운 말에 섞어서 가만하니 외워 보고, 얼굴을 들어 사나이를 본다. 바른팔을 뻗쳐 문갑 위에서 붓을 들어 둘둘 만 장지 위에,
紗巾有淚(사건유루)
紈扇無期(환선무기)
라고 적어 본다. 붓을 놓는 걸 기다려 형걸이는 왼손으로 다시 부용의 허리를 휘감아 본다.
"진정 그렇게 생각하오."
그러나 부용은 아무 말이 없다. 얼굴을 바짝 들고, 이렇게 젊은 여자의 마음을 다짐받는 청년의 열정이 어떤 것인가를 찾아보기나 하려는 듯이 형걸이의 두 눈을 바로 들여다본다. 두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나 눈보다 입이 먼저 쭝굿쭝굿 흩어진다……. 껴안았던 팔을 놓고 형걸이는 부용의 손을 장난질한다. 마디가 없이 날씬하니 쪽 빠진, 옥 같은 손이, 발그스름한 핏빛에 홍도색을 띠고 있다.
"추수 비상에 각수명가(秋水臂上刻誰名),
묵입 설부 자자명이라(墨入雪膚字字明)."
가만히 중얼거려 보니, 부용이는 곧 걸게 실을 꿴 바늘과 벼루를 가져다 놓고,
"차라리 비류강물이 다하여라(寧有沸流江盡),
어이 그대와의 이 기약을 잊으리오(妾心終不負初盟)."
한참 동안을 그렇게 쳐다보다가 먹을 진하게 갈고, 제 왼팔을 걷어 붙인다. 형걸이는 동여맨 바른손에 먹칠한 바늘을 들었다.
"무어라 새길까요."
"성함을 새기세요."
그때야 그는 부용이가, 아직 제 이름을 모르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는 제 이름을 기다랗게 부용의 팔뚝에 새기고 싶진 않았다.
"우리는 별이 됩시다. 해도 말고, 달도 말고, 캄캄한 밤에 혼자 빛을 내는 별이 됩시다."
형걸이는 부용이의 팔에 바늘 끝을 가져간다. 날카로운 바늘 끝이 하이얀 부용의 피부를 뚫는다. 까만 흑점이 또렷하니 새겨지도록 부용은 만족하니 웃고 있었다. 다시 형걸이의 바른 팔뚝에 까만 수영을 꿰고 나서, 둘은 덤덤히 기름 조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첫닭이 울어도 형걸은 부용의 집을 나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