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 12

며칠 전에 나카니시 상점에서는 이 고장에선 보지 못하던 잡화 상품을, 새로이 평양서 소달구지에 한차판이나 실어 왔다. 여태껏 평양과 이 고을과의 일백육십 리 길에 짐을 나르는 데는 마바리꾼이나 돌림장수 모양으로 당나귀나 노새에 싣고 다니든가, 도부꾼이나 납지개장수처럼 등에 지고 다니든가, 상사에 겨울날 눈과 얼음을 이용하여 소발구를 쓰든가 하는 외엔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웬만한 이삿짐이나 잡곡이나 소금이나 그 밖에 해산물 같은 큰 짐은, 대동강을 치거슬러서 비류강까지 올라오는 뾰루대와 수상선 편을 이용해 왔었다. 두서너 집 포목점에서 주단이나 포목을 실어 오든가, 칠성이네가 자전거를 타고 평양 가서 물건을 해오는 것도, 이 배 편을 이용하였고, 나카니시네가 부페짐이 되는 잡화를 상자로 해올 때나, 심지어는 김선구네가 그 알뜰한 과자를 몇 상자 해오는 데도 이 뾰루대와 수상선 편을 이용해 왔다.
그러던 것을 단오를 앞두고 날이 가물어서 물이 적어진 관계로 배편은 날이 지체된다고 나카니시네는 단연코 새로 난 소달구지에 한차판을 실어서, 번뜻한 신작로로 밤낮 하루 해를 걸려, 평양서 이 고장까지 운반해 왔던 것이다.
육중한 두 개의 커다란 바퀴가 붙은 달구지를, 황소가 헐떡이며 끌고서 돌차니 고개를 넘어서 망지다리를 지나 방선문으로 들어설 때, 후루매 입고 게다 신은 젊은 나카니시는 물론, 그 밖에 많은 아이들과 일없는 한가한 친구들이 일부러 구경을 하러 마중을 나왔었다. 그들은 달구지를 따라 거리를 올라와서, 그 달구지 위에 실었던 짐짝을 내려놓고 하나하나 끄르는 것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짐을 내려놓은 뒤에 소는 박성균네 마방으로 끌고 가서 여물을 먹이고, 따라온 달구지꾼은 방 안에 들어가서, 국수 두 돈 오 푼짜리를 세 그릇이나 조져 대었다. (국수는 박리균네가 누르던 것을 이즈음 집을 떨어 고치노라고, 분채를 성균네 부엌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어린아이들 중에는 달구지가 신통할 뿐 아니라, 달구지 부리는 험상궂은 작자가 국수 세 그릇을 먹어 대는 것이 또한 신기해서, 인차 나카니시네 집 앞에 몰려 있는 저희 동무아이들께로 뛰어가서, 좀더 이야기를 보탬해 가며 인제 달구지 끌고 온 장정이 연거푸 국수 다섯 그릇을 먹어 대더라고 헛소리를 놓았다.
그러나 그까짓 국수를 먹는 것보담 아이들은, 지금 한참 짐을 끄르는 대로 그 상자나 볏집 수세미 속에서 보지 못하던 이상하고 괴상한 물건이 자꾸만 쏟아져 나오는 것이 더 재미나고 신기하였다. 한 가지 물건이 나올 때마다 어른들 틈에 어깨를 걸고 서서, 그들은 그것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를 맞춰 대느라고 새새덕거리고 재깔대었다. 나카니시도 우쭐했고, 그 집 고초카이 다로오라고 하는 군청 하인의 아들도 무슨 큰 벼슬이나 한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달구지에 실어다 부리고, 지금 가게에 벌여 놓고 싸 놓고 하는 상품 가운데서는, 석유(石油) 열 상자가 제일 돈 먹은 물건이었다. 미국 뉴욕 솔표 석유라고 쓴 나무상자 속에 흰 생철로 만든 왜유초롱이 두 개씩 들어 있었다. 이놈을 아홉 상자는 그대로 져다가 뜰 안에 쌓아 놓고 그 분주한 통에 천천히 해도 좋으련만, 여러 사람이 보는 중에서 그 중 한 초롱을 쑥 뽑아 놓더니 아깝지도 않게 장도리로 칼을 대고 구멍을 뚫는다. 그러더니 볏집 수세미 속에서 양철로 만든 펌프를 빼들고 와서 구멍에다 넣고, 연신 쇠줄을 한 손으로 낚았다 놓았다 한다. 수채처럼 된 구멍에서 석유가 쪼루루 갓난아기 오줌 싸듯 나와서는, 남포 방등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뒤꼍에 쭈르니 매단 크고 작은 남포등 중에서 큰 놈을 하나 내리어서 갓을 씌우고, 알을 꽂고, 석유 든 방등 가운데 척 늘어진 심지 위 끝에 성냥을 그어 댄다. 해도 지기 전에 불을 켜놓는 것이다. 길 가운데 둘러서서 나카니시의 하는 품을 보고 있던 고을 사람들은, 신기해서 혀를 빼문다. 연신 그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 대니, 장기를 보아야 알겠다고 상점 사람은 장한 듯이 뻐겨 댄다.
새것을 갖고 이럴 지경이면, 지금 나카니시가 남포등에 불을 붙여 댄 갑에 든 성냥도, 이 고을엔 처음 오는 물건이었다. 부싯돌이나, 이런 것보다는 편리하다고 많이 사용해 오던 잎성냥 대신에, 끝에 노란 인이 붙은 놈, 아무 데나 되는 대로 대고서 찍 그으면 켜지는, 들고 다니기 간편한 가치로 된 성냥이 지금 처음 이 고장에 들어온 것이다. 이쑤시개나, 댓자박이나, 샅가시 같은 놈을 돌잔등이나, 기둥이나, 바람벽에 그으면 불이 나니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담배 붙이는 데는 일등 십상이겠다고 누가 말하니, 어린아이 있는 집에서 밤에 불 켰다 죽였다 하기에 무한 좋겠다는 사람도 있고, 또 밤중에 통숫간에 가기에 알맞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구두 버선은 벌써부터 알고 있기는 하였으나 타래째로 묶어 놓은 놈은 처음이다. 갱고지 최관술이가 목다리까지 올려 엮은 구두 속에 꼬여진 놈을 삼성 자박지로 볼을 받아서 신고 다니는 것만 보았지, 무슨 생선 말린 것처럼 툭을 지어서, 맥기를 묶어 놓은 놈은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갱고지 최주사 나리, 이젠 볼 받은 구두 버선은 안 신게 됐다고 누가 말해서, 둘러선 사람들은 모두 소리를 높여 웃었다.
쪽물을 들인 종이봉지에 불광을 그린 딱지를 붙인 건 양초요, 네모난 양철통에 색시가 서 있는 그림이 붙은 건, 오색이 각각 딴 봉지니 물감통이 분명하고, 단장 모양으로 강충하니 껍데기 구럭을 싸서 넣은 놈은 필시 양산일 게다. 커다란 나무상자를 조심성 있게 뜯고서 많은 수세미, 대팻밥을 집어 내길래, 그것이 무엇일꼬 하고 바라보니, 말깃말깃한 사발과 물이든가 밥알이든가 김치쪽이든가가 빤하니 들여다보이는 유리그릇과, 오줌을 누기엔 너무나 황송한 꽃 그린 찬란한 요강들이었다. 동창(東倉)이나 직동(直洞) 있는 토점이나 사기점에서 왜글지글한 커다란 놈을 시프르덩덩한 바탕에다 왜정빛으로 줄을 돌려 긋고, 생선 같은 걸 되는 대로 짓갈겨 그려서 구워 낸 쌍사발만 보아 오던 눈으로, 이 반들반들한 사기그릇과 유리그릇을 보니, 어디 김치나 된장국이나, 이런 걸 담아서는 금시에 흠이 나고 터질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그리 크지 않은 상자가 둘이 남아 있다. 하나는 동아연초주식회사라고 쓴 것으로 미루어 히로궐련이 분명하다. 그보다 좀 더 작은 또 한 상자 속에서는 작은 말똥땅지로 만든 서너 너덧 상잣갑이 나왔다. 그 중의 하나를 아깝지 않게 터뜨리니, 그 속에서 작은 종이봉지를 하나 꺼내고, 다시 그 종이봉지를 터뜨려, 팥알처럼 발간 놈을 쪼루루 손에 쏟아 입에다 탁탁 털어 넣는다. 버작버작 씹어 삼키고는 하아 하고 고추 먹은 입을 불듯 한다. 그의 앞에서 입을 헤에하니 벌리고 쳐다보던 김존위(金尊位)에게,
"하나 먹었소까."
하면서 나카니시가 너덧 알 집어서 치받치는 손에다 놓아 주니,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그는 텁석부리를 헤치고 입 안에 한 알씩 집어넣고 정성들이 어금니로 잘근잘근 씹어 본다.
"맛이 있소까."
하고 물으니 존위는 후우하니 숨을 내뿜으며,
"맛이 있소. 맛이 있소."
하고 고개를 꺼뜩꺼뜩한다.
형선이는 학교에서 점심을 먹으러 오다가, 나카니시네 집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선 게 수상해서, 대문간을 들어가다 말고, 그 집 앞에 가까이 와서 사람들의 등뒤로 가게 있는 쪽으로 넘겨다보았다. 불을 켜서 매단 남포등을 바라보고 지금 막 상자와 궤짝 속에서 꺼내서 벌여 놓는 여러 가지 상품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가, 시간이 늦을까 하여 저희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사랑에 아버지가 있었으나,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어머니보고,
"등피랑, 구두 버선이랑, 양산이랑, 머 이런 거 많이 나카니시네 집이 왔습디다. 사랑에나 하구 두서너 방에 쓰게, 석유하구, 남포등 서너 너덧 개 사옵세다."
하고 말해 본다.
"하나나 사오믄 사왔지, 거 네 개씩 무슨 소용이간. 아지까리 기름 대레 논 게 한 말이나 되는데, 건 언제 쓰간."
어머니는 실속을 차리려고 아들의 말엔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글쎄 사다 한번 켜만 보시구레, 당초에 낮처럼 밝구, 그놈만 켜놓았으면 넓은 방 안이 왼통 낮같이 밝겠습니다."
"아바지보구 말해 보려므나. 내야 아니."
형선이는 서너 너덧 개라고 하지만, 두뭇골 집에서도 이곳에서 켜면 본따서, 너덧 개 쓸 것이니 적어도 열 개는 가져야 될 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온 참, 오마니도 무던히 딱하시외다."
혀를 차며 제 방으로 들어가는 형선이 뒤에서, 어머니 최씨는,
"무슨 돈으루 기름 세력을 할라구. 등피 없이두 비단저고리에 버선코만 잘 기웠다."
하고 혼자말하듯 뇌고 있었다.
형선이는 제 방으로 와서 아내가 들어다주는 점심상을 받아 놓고도 한참이나 남포등이며, 구두 버선이며, 양산이며, 이런 걸 본 대로 아내에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때에 맏형 형준이는 저희 방 윗목에서 낮잠을 자다가 깨어났다. 그는 낑 하면서 벌써부터 몇 놈씩 밀려 다니며 웅웅거리는 파리떼를, 손으로 휘날린다. 그러더니 아랫목에 앉아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아내에게,
"형선이는 뭐라구 저리 지껄인다나. 남 잠두 못 자게."
하고 잠투정을 한다.
"나카니시네 집에 남포등이라나, 등피라나가 왔다구, 오마니보구 사라구 그럽네다."
하고 아내는 제 말 같지 않다는 듯이 종알거려 댄다.
"사올라믄 사오든지 하지, 떠들기는 왜 떠들어 대는 거야."
"누가 머 얼마나 떠들었나요. 생뚱한 소리 하지 말우. 또 괜히 의만 덧나지 말구."
아내가 핀잔 주듯 하니 형준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픽 돌아누워 다시 잠을 청해 본다. 그는 아까부터 꿈을 꾸려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뭣이든 꿈만 꾸면 곧 그놈을 풀어서 해몽을 한 다음 통수로 있는 신도감(申都監)을 따라서, 삼십육계(三十六計)의 덕대가 앉아서 기다리는 박이방네 뒷방으로 갈 참이다. 그런데 대낮에 일부러 잠을 청하려니 그게 좀처럼 올 리도 없거니와, 겨우 들었던 잠은 아이가 울든가, 파리가 콧잔등에 날아와서 간지럼을 피든가, 또 뜰 안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든가 하면, 꿈도 채 맺기 전에 깨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눈만 벌겋게 퀭해 가지고 아무리 꿈꾼 것을 생각하려고 했자, 무어 시시펑덩한 걸 꾼 것도 같은데,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도 겨우 으레 눈을 붙이고 잠을 이루었던 것을, 형선이가 안방 마루에서 어머니와 중얼대는 바람에 놀라 깨었는데, 그 다음은 다시 잠을 청하여도 눈만 새록새록해질 따름이었다. 꿈을 꾸었던 것 같기도 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가다듬어 갈피갈피 더듬어 보나, 어딘가 풀숲을 자꾸만 뛰어가다가 무슨 구렁텅이를 보고, 이걸 넘을까, 그렇지 않으면 돌아서 갈까, 하고 망설이다가 깬 것도 같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웬 한 처녀하고 나무를 베러 시퍼런 낫을 들고 산 속으로 들어가다가 깬 것도 같아서, 통히 어이 된 판국인 걸 알 수 없어 화만 더럭더럭 나는 판이었다.
염병할 놈의 남포등이고 뭐고, 그놈 까탈에 넝쿨째 떨어지려던 호박이 하늘로 올라가 버린 것 같아 금시 아무개고 손에 잡히는 대로 쥐어박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뒤주 속에 시집올 때 갖고 온 돈을 뒤져 가지고, 며칠째 밖으로 나가는 통에 어지간히 골치가 틀린 아내가, 이런 대목에 화를 터뜨려 놓기만 하면 대낮에 그것도 적지 않이 두통거리겠다고, 그는 천둥같이 동하는 울화를 꿀꺽 들이삼키고 휙 몸을 뒤채 벽을 향해 돌아눕고 말았던 것이다.
형준이가 삼십육계에 손을 댄 것은 불과 얼마밖에 안 되는 최근의 일이다. 그가 남아돌아 가는 정력을 처치할 길이 없어, 하룻밤 막서리 처 방에를 들어가려다가 형걸이와 부딪치던 그때만 해도 형준이는 도박이나 잡기의 성질을 띤 것엔 손도 대지 않았었다. 어렸을 때부터 투전장을 갖고 노는 데는 더러 섞였으나, 투전판을 따라 다닌다든가, 돈을 대고 큰 판을 벌여 놓든가,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두칠이 처 쌍네에 대하여 품었던 정이 제대로 쏠려 흐르질 못하고, 깊은 웅덩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있을 때, 그는 집안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런 때엔 어디, 신선한 산 속이나 해변 같은 데 여행을 하든가 했으면, 정신도 깨끗해지고 마음도 제법 후련해지련만, 그런 데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그는 곡우(穀雨)가 훨씬 지난 어느 맑은 날 아침 소만(小滿)이 가까우니 꺽지가리가 한창이겠다고, 평양 영감에게 자리그물을 한떼 얻어 들고 비류강으로 나갔다. 안집에 처박혀 있으면 마음만 더 초조하고 집안 식구가 눈에 바로 보이지 않아서, 고기사냥이나 하면서 소풍이나 할 참이던 것이다.
갈로 결은 삿갓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다리를 종아리까지 활짝 걷어붙여서 맨발로 짚신을 신은 뒤에 으슥한 뒷대문을 나섰다. 방수성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향교 골목과 직통하는 숭선교 다리에 이른다. 그는 다리에 올라서 난간도 없이 밋밋하니 저편 쪽 회진대 옆까지 뻗친 거머턱턱한 길을 건너간다. 다리 밑에는 맑은 강물이 급류가 져서 흘러간다.
천주봉 앞에서부터 십이봉을 끼고 둥그렇게 커다란 호수처럼 퍼졌던 강물은, 잔잔하니 강선루와 자복사의 탑을 거꾸로 비치면서 기름처럼 유유히 흐르다가 바로 다리 위 출운대 앞에서부터 여울이 져서 다리 밑에 이르러선 제법 욕계를 이룬 곳조차 있다. 초여름 아침 강바람에 볼편을 쏘이면서, 여물물에 어울려서 그는 콧속으로 흥얼흥얼 강서 메나리를 한 곡조 넘겨 본다.
조개는 잡아서 구럭에 넣고,
내 님은 잡아서 품안에 넣네.
이렇게 한 곡조 뽑아 넘기고는 '홍야라 뎅야라 앙' 하면서 후렴을 정조 있게 가늘게 지어 뽑는다.
그는 다리를 다 건너고 산길에 올라섰다. 고개를 넘어서 넘은 강으로 가려는 것이다. 비류강은 반도처럼 된 긴 산을 돌아서 다시 위쪽으로 흘러 오른 것이다. 앞 강에서 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물이 넘은 강에서 콸콸콸 솟아오른다고 비류강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고개를 돌아서 강기슭으로 내려오면서 그는 또 한 곡조를, 이번엔 흥에 겨워 소리를 바짝 높여 가지고 뽑아 본다.
당항라 적삼에 소낙비 맞은 님,
오리알 같은 젖통 좀 보소.
이놈을 걸찍하게 한번 섬겨 놓고, 이제 다시 후렴으로 간드러지게 메겨 넘기려는데 산등에 있는 사직정 쪽에서 인기척이 난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어인 소리일런가―--- 해서 소나무 틈으로 소리나는 쪽을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웅성거리다가, 누가 이편을 가리켰는지 모두 형준이를 바라본다. 무얼 하는 사람들이 남의 눈을 피하여 저렇게 둘러섰는지,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못 본 셈치고 강기슭으로 덥벅덥벅 몸을 피하려고 하는데 등뒤에서,
"형준네 재장 아닌가."
하고 아는 척하는 목소리가 따라온다. 돌아보니 신도감이었다. 호둘기 바람에 감투만 쓰고 그는 헬레벌떡하며 산을 내려오는 것이다.
"아니 어데루 가는 길이와."
하고 거반 가까이 와선 발을 천천히 놀린다.
"심심해서 꺽지래두 좀 잡아 볼려구요."
형준이가 대답하니, 도감은 그의 앞에 와 서면서,
"오라 참 꺽지 가리 할 때로구먼."
하고 대꾸를 한다. 그러더니 사면을 한번 둘러보고,
"임자 자미난 거 한번 안 해보려나."
하고 나직이 물어 본다.
그 말로 대강 짐작은 했으나 형준이는 짐짓,
"자미난 거라니요. 머 새박에 술추렴은 아닐 게구."
하고 반문하였다. 그랬더니 바른손으로 '그게 무슨 말이냐'고 툭 공기를 휘젓듯 하면서,
"술추렴이 머 자미나는 겐가."
하고 다시 바싹 귀에다 입을 대더니,
"육계의 폭지 하나 안 써보려나."
한다.
"아니오. 내가 무슨 그런 걸 할 줄 아능가요."
형준이는 낯색을 달리하며 사양한다.
"그것두 머, 할 줄 알구 모르구가 있답마. 꿈꾼 대루 해몽해서 치장 붙이문 되는 게지. 임자는 일수가 좋을 테니까 해볼 만하웨니."
신도감은 형준이를 꼭 삼십육계판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순사의 눈이나 끄나풀의 눈을 피해서 날마다 자리를 옮겨 가면서 하는데, 오늘은 사직정 뒤 수풀 속에서 육계판을 벌여 놓았던 것이다. 인기척이 안 나게 조심해서 하던 차에, 마침 육계문을 열어 보니 만금(萬金)에 대포다. 그래서 육계꾼이 신기한 바람에 그만 처소를 잊고 으아하니 환성을 올렸으나, 문득 아래쪽을 보니 그물을 메고 강가로 내려가는 삿갓 쓴 사람이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막 대치장을 읽기도 전에 주(走)자를 놓으려고 하다가, 신도감이,
"그게 박참봉의 맏아들일세."
하는 바람에 모두 달아나기를 그만두었던 것이다. 말이 다른 데로 나가면 재미가 없으니, 형준이를 붙들어다 한몫 끼워 놓자고 성론이 되어, 신도감이 그를 쫓아 이리로 내려왔던 것이다.
"인제 만금에 대포가 터졌는데, 육계끈이 일수가 좋은가 볼세. 치장 돈이 백 냥인데 덕대가 삼천 냥을 물으려니 똥을 싸는 판일세. 자 이런 판에 한번 해보지 않구 언제 하겠나."
그래도 좀처럼 듣지 않으니,
"괜히 쓸데없는 고집은 그만두게. 임자가 너무 제기면 모두 끄나풀인 줄 알구,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구 그러능가."
하고 은근히 위협하듯이 말이 나온다. 마음이 그리 꿋꿋지 못한 형준이는 하는 수 없이,
"내게 돈 가진 것두 없구."
"돈이야 내 얼마든지 꾸어 주지. 머, 임자만 해가지구야 돈 안 대줄 사람이 있겠나. 꿈만 바로 꾸었다믄 대구푼 대루 대게나."
하는 수 없이 형준이는 그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가보니 사람은 불과 여남은 사람밖에 없었다. 그 중에 육계꾼은 다섯 여섯, 그 밖에는 덕대와 치장과 통수들이다. 통수들이 점잖은 사람들한테서 모아 온 폭지와 돈을 맡아 갖고 그들 대신 육계문 열 때 셈을 보아 주는 것이다. 난봉꾼이기는 하나 삼천 냥 돈을 물어내는 덕대는 그래도 상판이 새파랗게 질리었다. 그는 형준이도 잘 아는 이였다. 투전 잘하기로 유명하던 오만달이란, 사십이나 되었을까말까 한 건달놈인데, 눈이 하나 해뜩한 알백이다. 지금 치장을 부르는 대로 커다란 전대에서 돈을 치러 주는데, 정각 뒤 수풀 속 웅덩이가 진 속에서는, 서너 너덧 육계꾼이 처소도 잊어버리고 떠들어 대고 있다.
"자 내 꿈을 좀 보게, 어찌 됐던 간에 흰 백설기를 한 시루 잔뜩해놓구, 이놈을 떡집 작은 메누리하고 마주앉어 서루 시시닥거리며 먹어 냈는데, 양껏 먹구 그 댐엔 그 색시와 또 적지 않게 의좋게 놀았단 말일세. 그러니 이놈이 꿈을 뭘루다 푼단 말인가. 처음은 떡을 실컷 먹은 것보다두, 색시와 논 게 더 생각이 내끼드라니. 사부인(四婦人) 가운데서 명주든가 상초루 쓰려구 했다가, 저 알백이가 사부인을 달았을 것 같진 않단 말야. 그리구 이놈이 또 첫 판이길래, 만금에다 썼네그려. 그랬더니 아 이놈 보게, 대포루 맞어떨어지데그려, 대포루. 참 그놈 신통두 하데."
이렇게 상투에 그냥 수건만 질끈 동인 젊은 녀석이 지점벌여 대니, 맞은편에 앉았던 곰보딱지가,
"내 평생에 꼬장떡을 또 배가 터지두룩 먹어 본 적은 금시 처음일세."
하고 꼬장떡 먹은 꿈 꾸고 만금에 붙였다가, 대포가 맞은 게 신기하다고 지저귀어 댄다.
"여보게 말 말게. 난 어젯밤 물 떠놓구 아주 손이 발이 되두룩 빌었네."
시시펑덩한 꿈타령을 주절대고 있으니 돈을 다 나누어 준 덕대는 눈살을 찌푸리고,
"인제 그만들 떠들게. 또 그러다가 감옥 구덩이 속에서 꿈꾸지 말구."
하면서 핀잔을 준다. 형준이는 정각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덕대와 통수들과 육계꾼들이 떠들어 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장지에 누렇게 들기름을 먹인 뒤에, 먹으로다 사람의 몸뚱어리를 그리고, 서른여섯 고대에 각각 육계의 문을 적어 논 것이 판판한 잔디 위에 놓여 있다. 신도감은 그놈을 집어 들고 형준이 앞으로 온다. 또 한 손으론 황양목으로 새긴 각판을 들고서, 종이를 쭉 판판한 땅바닥에 펼쳐 놓더니,
"자 이게 모두 삼십육문일세. 여기서부텀, 점괴(占魁), 판계(板桂), 영생(榮生), 봉춘(逢春)."
한번 뚝 끊어지곤 각판을 찾아서 가르쳐 주고, 다시 이어서,
"그 댐이 사부인으로 간옥(艮玉), 명주(明珠), 상초(上招), 합동(合同). 알지 이건. 부인네와 합동해 본 꿈이거들랑 합동―---이렇게 되는 게니께루. 그 댐은 삼괴(三槐), 합해(合海), 구관(九官), 태평(太平), 자 이럭허군 목뎅이가 일산(日山), 의관이나 사포나 이런 건 화관(火官), 정리(井利), 발뒤축이 천량(天良), 눈은 광명(光明), 유리(有利)는 옹(翁) 유리라고 영감이나 두상망택이, 강사(江祠), 복손(福孫), 이렇게 쭉 내려가는 겔세. 아마 알겠지."
형준이도 대강한 걸 알고 있기는 했으나 잠자코 들었다. 이렇게 신도감이 한참 동안을 설명하느라고 바쁜데,
"인제 앉은 자리에 한번 더 달아매 보자나."
하고 덕대가 물어 본다. 그는 지금 삼천 냥이나 잃은 놈을 어떻게 반분이라도 봉창을 대고 싶었던 게다. 그랬더니, 웅덩이 속에 있던 곰보가,
"꿈은 어떡허나."
하고 앉은 자리에서 되짚어 벌여 놓는 것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해서,
"아니 여보게, 대포 맞히구 안 하는 법두 있는가. 꿈이야 눈 붙이면 꿀 게지. 인제 하자구 해."
하고 마주앉은 수건 쓴 녀석이 팔을 두르며 뛰어나온다. 그래 그 자리에서 또 한판을 벌여 놓기로 했다. 신도감이 폭지라고 종잇조각을 갖고 형준이한테로 온다.
"집에 가서 써놔 두면 내 갖고 와두 되는데 한판에 섞이기가 좀 무엇하거들랑 그렇게 해보지."
그러나 형준이는 아무 대답도 안 하고 폭지를 받았다. 그는 지금 어젯밤 꿈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덕대는 종이와 붓을 갖고 외딴 쪽으로 간다. 그는 목을 매어 달아매일 육계문을 남이 모르게 쓰려고 숲속으로 가는 것이다.
"산꼭대기루 오를 땐 아마 곤산(坤山)이나 지고(志高)를 써널 모양이네그려."
하고 웅덩이서 나온 곰보가 놀려 대니,
"잘 알거들랑 생각대루 폭지에 써넣게나."
하고 싱글싱글 웃으며 나무 수풀 속으로 사라진다.
형준이는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어젯밤 쌍네의 방엘 들어갔다가, 순사에게 붙들린 꿈을 꾸었던 것이다. 어찌 된 판국인지, 반항하는 쌍네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뒤채고 엎치고 하면서 돌아가는데, 덜컥 문을 열고 달려든 장정이 있었다. 이게 두칠인가, 형걸인가 하고 놀라서 보니 뜻밖에 순사였다. 순사는 네가 지금 강도질을 하러 이 집에 들어온 게 분명하다고, 아무리 변명하여도 박승을 지우며 잔말 말라고 정강이를 후려찬다. 덜미를 짚어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문으로 내쏠리다가 문턱에 발뒤꿈치가 걸려서 막 앞으로 거꾸러지던 차에, 요행 눈을 뜨니 꿈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꿈을 갖고 사부인이나, 원길(元吉)이나, 원귀(元貴)나, 길품(吉品)을 써넣을 턱도 안 되고, 불가불 점괴나 써넣어야 할 텐데, 같은 점괴라도, 제 스스로 순검이 되어 봤다든가, 그들과 술추렴을 하든가 했다면 모르겠는데, 남의 유부녀 방에 들어갔다가 강도 혐의를 받고, 순사에게 결박을 당하여 문턱에 발뒤꿈치를 걸고 거꾸로 굴러 떨어진 꿈이 되고 보니, 어딘가 께름칙한 게 불쾌하였다. 그러나 쓰게 된다면, 점괴밖에 쓸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남들이 모두 써넣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만에 수풀 속에서 덕대가 보퉁이를 꾸려 들고 나오면서,
"육계문 목 매서 달아매네."
하고 소나무 가장자리가 꾸부정하니 가지를 챈 끝에 그놈을 꾀꼬리 둥지 모양으로 매달아 놓는다.
치장은 흰 종이에 각판을 들고 폭지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통수들도 모여들고, 다른 육계꾼도 어슬렁어슬렁 모여들었다. 그들은 돈과 각판을 기록한 폭지를 치장에게 내밀었다. 형준이도 하는 수 없이 점괴를 쓰고 있는데, 신도감이 찾아와서,
"얼마나 대겠습마. 한 스무 냥 대겠나. 첨인데."
하고 물어 본다.
"그러시구레."
형준이는 신도감에게 폭지를 주었다. 폭지를 조사해서 치장 붙이는 것은 형준이도 가까이 와 보았다.
"자, 육계문 연다."
알백이눈을 샐름샐름하면서 덕대는 나뭇가지에 손을 뻗쳐서 보자기를 따온다. 모두 그 보자기 푸는 것을 눈이 뚫어지게 들여다들 본다. 알백이는 재치 있게 풀어 젖히면서,
"이번에 아마 또 대포 맞는가 보다."
하고 싱글싱글 웃어 댄다.
"흥, 이번엔 아마 모두 헛불인가 볼세."
덕대의 웃는 품이 수상하다고 곰보가 건네 보는 수작이다.
"대포라는데 왜 이러나, 자 대포다, 대포 보게."
그러나 보자기 속의 육계문은, 필득(必得)이었다.
"누가 맞혔나."
필득을 써넣은 자는 곰보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곰보는 제 꿈에 그리 자신이 없었는지 얼마 많은 돈을 대지는 못하였었다. 댄 돈에 사십 곱을 치러 주고 나니, 나머지 붙였던 돈은 모두 덕대가 휩쓸어 갖는다.
한 시간 안짝에 돈 스무 냥을 날리고 보니, 도박이나 잡기에 경험이 없는 형준이는 좀 입맛이 밍밍했다.
"아니 무슨 꿈이길래 점괴를 썼습마."
하고 신도감이 묻는다. 그래, 쌍네 방에 들어갔다든가 이런 건 쪽 빼고, 그저 순사한테 박승을 지워서 내굴리는 통에, 문턱에 발뒤꿈치가 걸려 넘어진 꿈이라고만 말하니,
"그럼 해몽을 잘못했네그려. 발뒤꿈치가 걸렸으니까, 필득이야 되잖나, 꿈은 참 잘된 꿈인데, 그걸 그만 점괴를 써서 틀렸네그려. 참 그 꿈 용하이, 자네는 좌우간 복은 잔뜩 지구 다니는 사람일세."
하고 진정으로 탄복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도감의 말이 딴은 그럴듯도 했다. 발뒤꿈치가 걸려서 거꾸러지다가 깨었으니 필득이라―--- 그러고 보니 한 가지 꿈을 갖고도 여러 모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그는 생각해 보았다. 스무 냥을 잃기는 했을 값이라도, 그놈의 노름도 재미나지 않는 건 아니라고 형준이는 신도감의 말마따나, 제가 짜장 일수가 좋거나 횡재할 운이 텄는지도 모를 게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날은 그걸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돈 스무 냥을 갖고 신도감 집을 찾아갔더니 신도감은 돈을 받으며,
"인제 내 좋은 판엔 가끔 알기울 게니, 꿈만 좋은 놈을 꾸시게. 판에 섞이기 싫으면 폭지만 써서 보내게나. 그러면 다 맡아서 좋도록 하지 않으리. 임자는 모르니 말이지 점잖게 사랑에 앉아서 통수들을 거쳐서 여기다 맛을 붙인 이가, 이 고을 안에도 유만부득일세. 심심파적도 되거니와 가끔 잘 맞아떨어지면 횡재도 하잖나."
그때에 형준이는 별로 또다시 삼십육계에 손을 댈 생각은 먹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아침에 깨어서 지난 밤 꾼 꿈이, 하도 신기하고 그럴듯할 때엔 조반상도 잘 받지 않고 이러저러 육계문이나 각판에 맞추어서 해몽을 하는 것이 여간 재미나는 게 아니었다. 해몽해 논 게 잘된 것 같으면 한번 붙여 보고픈 생각이 자연히 생겨났다. 그래서는 아침을 먹고 바람을 쏘이는 겸, 아내의 뒤주에서 돈을 한 오십 냥쯤 꺼내 들고 신도감한테로 가보는 것이다.
만일 세 번이면 세 번, 그것이 전부 헛방을 놓았다면, 꿈이고 벼락이고, 무에 맞을 턱이 있는 노름이냐고 쉬 집어쳐 버렸겠는데, 장님도 문걸쇠 잡을 때 있다고, 그것이 꼭 한 번 맞아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래 한 번 꿈이 들어맞은 데 입맛이 당겨서, 그 다음도 틈틈이 이 육계에다 손을 대게 된 것이다.
밥 먹으면 잠을 잔다고 야단이었고, 잠을 잔다고 누우면, 꿈이 꾸어지이다, 라고 일부러 손을 숨통 있는 가슴에다 올려놓고 빌어섬기며 지랄이고, 자다 깨어나선 미친놈 모양으로 눈이 멀개서 꿈을 풀어 보느라고 정신이 빠져 앉아 있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처음, 제 남편이 이즈음 어이 된 일인 줄을 몰랐다. 가끔 바깥 출입이 잦고, 출입했다 돌아오면 노상 잠이다. 그래 미상불 어디 계집을 하나 두고 보아 다니는 겐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남편의 태도도 어딘가 그전처럼 저에게 삽삽지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하룻날은 남편더러,
"요지음, 머 볼일이 생겼소."
했더니 그는,
"볼일은 무슨, 누가 금점이 좋은 게 있다길래 좀 가보는 게지."
하고 대답한다.
'금점? 금점이라면 아버지도 알게 하지 않고 무슨 금점이랄까.'
그래서 다시 한번,
"어데 머 금점을 시작했소."
하고 물어 보니,
"금점을 시작했다나. 좋은 겐가 나쁜 겐가 알구야 시작하지. 여편네가 공연한 참견이야."
하고 성까지 내는 바람에 다시 그 이상은 캐어 묻지도 못했다.
오늘은 그런데 형준이는 낮잠을 자고 있다. 판이 좋고 육계꾼도 많을 텐데, 장근 산에서만 하는 것도 들킬 염려가 있다고, 이번엔 박이방네 집 뒷방에서 치장을 붙이고 육계문을 열기로 작정한 것이라고 신도감은 말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어젯밤 꿈은 신통치 않다고, 이렇게 새 꿈을 얻기 위하여 낮잠을 자고 있던 것이다. 겨우 눈을 붙여서 소원대로 꿈을 꾸었는지, 형준이는 인차 방을 차고 밖으로 나간다.
꿈은 커다란 배를 타고 비류강을 건너 본 것이니, 판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 제 손에 있는 대로 서른 냥을 댈 건가, 아내나 어머니에게 얼마를 더 타내서 한 쉰댓 냥 댈 건가, 하고 망설이다가 그대로 삼십 냥을 들고 신도감한테로 갔다. 신도감은 여태껏 기다리던 참이라고 그래 꿈을 잘 꾸었는가 묻더니, 오늘은 방이 좁고 그래서, 여럿이 모이는 건 위태한데 그래도 가보겠는가고 묻는다. 그렇다면 구태여 갈 필요도 없을 게라고 폭지에 '판계'라고 써서 꽁꽁 말아 주고 돈냥을 곁붙여 주었다. 육계문은 밤중 으슥해서 열게 될 테니 어디 만날 장소를 정하고 기다리라고 한다. 형준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러면 우리 뒷대문 밖, 가시울타리 앞에서 만나자고 말하였다.
벌써 저녁때였다. 그는 집으로 오다가 아까 형선이의 말을 생각하고, 나카니시네 집엘 들러 보았다. 거기서 이것저것 새로 들어온 물건 구경을 하다가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었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그는 방 안에 들어 있었다. 형선이가 저녁을 먹고 사랑으로 안방으로 나들더니, 종시 남포등하고 석유 한 초롱을 사왔다. 큰놈은 사랑에 매달고, 작은 걸 안방에 하나, 형준이 방에 하나, 형선이 방에 하나씩 매어 달았다. 저녁을 먹고는 이 남포등이 신통해서 모두 이야깃거리가 그것뿐이었다. 안방에서는 보패가 등잔불하고 비교해 본다고, 둘을 내놓고, 껐다 켰다 하면서 재깔대었다.
형준이 처도 밝은 불 밑에서 고운 옷을 해본다고 시집올 때 해갖고 온 영초 저고리에 깃을 달고 앉았는데, 성기와 어린 딸아이가 무릎에 기어올라서 성화를 부린다고,
"넌 좀 아버지한테루 가려무나."
하고 성기를 형준이에게로 떠민다. 형준이는 삼십육계 생각을 하느라고 아이고 뭐고 그런 덴 도시 정신이 가질 않았다. 그런 걸 모르고 아이를 떠맡겼으니, 남편이 발끈하니 성을 내는 것도 까닭이 없지는 않았다. 그는 아이들 성화 받기 싫다고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가 버린다.
"아이 안 보랄 게, 나가지 마시구레."
하고 나직이 불러 보았으나, 그 말엔 귀도 안 기울이고 어디론가 상투 바람으로 나가 버렸다. 그는 남편이 이즈음 집안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게 제 불찰인 것 같아서 내심에 조심하고 오던 차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제가 남편에게 한 거동에 대해서도 곧 뉘우침이 갔다. 그러나 그만 일에 성을 내던 남편은 아니었다. 이러다간 남편의 애정을 영영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들어 간다. 쫓아 나가 남편의 팔이나 옷자락을 안고, 제발 안 그럴 게 나가지 말라고, 어리광이라도 피워 보고 싶었으나, 아직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안방에 앉아 있고, 또 맞은 방에는 작은동서가 시아우와 자지 않고 불을 켠 채 있으니, 무엄하게 아무렇게나 굴어 댈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화나는 것을 아이들께로 돌릴 수도 없어서, 옷가지를 반짇고리에 틀어박고 새침하니 입술을 다문 채 아이들을 끼고 누웠다. 그는 마음이 언짢아서 갑자기 울고 싶었다.
형준이는 사랑 마당 가운데 서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날이 찌풋하다. 그믐이 가까우니 아직 달은 없고 별도 큰 것만이 이따금 반쩍반쩍한다. 저녁 바람은 선선하다. 박참봉이 나가 버린 사랑엔 오늘 새로 사온 대등피에도 불을 켜지 않았다. 마루에 와서 궁둥이를 걸치고 앉아 보나 삼십육계 생각만이 머리에 떠올랐다.
대체 대낮에 꾼 꿈하고는 여간 뚜렷하고 신통한 게 아닌데―---커다란 너벅선을 뱃사공이 이편 저편 장대로 짚으면서 건너던 것이며, 함께 배 위에 탔던 나뭇단을 옆에다 한 단씩 놓은 여편네들 하며, 이런 게 모두 지금도 눈앞에 선하니 나타난다. 그런데 한 가지, 무엇 하러 십이봉에로 갔다가 배를 타고 오던 길인지, 그게 똑똑질 않았다. 그러나 그까짓 배를 타게 된 원인 같은 건 별로 소용이 없을 게다. 배를 타보았으니 '판계'면 그만이다―---이렇게 혼자 두루두루 생각해 가며 생담배가 타는 줄도 모르고, 이번엔 영락없이 떼어 낸 육계문이라고 좋아서 앉았는데, 두칠이가 뒷간 뒷길로 제 방에서 나오더니, 큰 대문으로 나가려고 마당을 건너다가 형준이를 보고 인사를 한다.
"어데 가나."
하고 물으니,
"일꾼두 두엇 얻구, 또 제삿집이두 좀 들렀다 올라구 합네다."
하고 공손히 서서 대답한다.
"누가 제산가?"
해서,
"문길덱(文吉德)이 아버지 첫돌이 아니웨니까."
하고 대답한다. 그는 잠시를 더 발을 땅에다 붙이고 주춤주춤하다가, 다시 인사를 하고 대문으로 나가 버린다. 그러더니 몇 발자국도 안 나가서, 도로 돌아서 들어와 안으로 빗장을 질러서 대문을 닫고 저는 온 길로 되짚어 돌아간다. 큰대문을 잠가도 좋을 시각이라, 그는 제 손으로 큰대문을 닫고, 물역 뒷대문으로 나가려는 것이다.
삼십육계의 '판계' 생각을, 마치 노루 때린 몽치, 삼 년 동안 우려먹듯 하고 있던 형준이는, 이때에 문득 두칠이 처 쌍네의 생각을 하였다.
'형걸이는 그 뒤에도 두칠이가 어데 간 줄만 알면 그대로 드나드는 모양이다. 대체 아버지는 형걸이보고 무슨 책망의 말이나 했는가. 책망을 했는데도 형걸이는 저렇게 다니는 것일까.'
형준이는 지금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인즉 형걸이는 이틀밖에는 드나들지 않았다. 형준이한테 들킨 건 별로 마음에 치부도 해두지 않은 양, 그 이튿날도 쌍네 방에 왔었으나,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핀잔을 듣곤 발을 끊듯이 여태껏 한 번도 발길을 안 했다. 하기는 그 이튿날 하루를 지나서 곧 두칠이가 돌아왔으니 올래야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 밤도 두칠이가 좀 늦게야 돌아올 테니, 형걸이가 기색을 알었으면 또 올는지도 모르렷다. 이번엔 아주 단단히 타이르든가, 집안에 모두 알게 하든가, 그렇게래도 해야만 할 게다.'
이렇게 생각이 갔으나, 그의 마음 한쪽에서는,
'쌍네보고 형걸이와의 관계를 갖고 위협을 하면서 신도감이 찾아오는 걸 기다리기도 할 겸, 한번 장난이래도 쳐볼는가.'
이런 걸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삼십육계로 인해서 얼마간 잊었던 딴 정력이, 이때에 불쑥이 치밀어 오르는 걸 형준이도 의식한다.
'어데까지든지 형 된 도리를 해야만 한다. 형의 책임이란 건 동생들의 행동을 감시하야 그릇됨이 없게 경계해 주는 데 있다.'
겉으로는 이렇게 저 자신에게 타이르면서, 또 한편 깊숙한 속으론,
'두칠이가 없는 방으로 들어가서, 쌍네에게 한 손으론 사탕을 주면서, 또 한 손으로 칼로 위협도 하면서, 그러면 염려없이 제 손아귀에 들게 되렷다. 그래서 한껏 속이 후련해져서 있노라면 신도감이 판계로 육계문이 딱 맞아떨어졌다고 삼십 냥의 삼십 곱이나 되는 돈을 듬뿍이 날라다 줄 것이고, 그럭하면 얼마를 처억 집어서, 신도감 수고했다고 쥐여 주고, 그 나머지에서 한 절반은 갈라서 쌍네에게다 주어 버릴 것이다. 안 받으려고 하면, 상전 서방님이 주는 돈은 받아야 한다고, 의젓하니 꾸짖으며 그에게 억지로라도 들려 줄 것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서, 그는 마루에서 통숫간 뒤로 통한 길을 걸어 뒷대문께로 갔다.
두칠네 방은 캄캄하다. 벌써 자지는 않을 텐데―---바로 얼마 전에 상전댁 부엌에서 짐승의 여물을 들고 외양간으로 나들다가 제 집으로 밥광주리를 이고 나갔으니, 두칠이와 저녁을 먹고 지금쯤은 제 부엌을 겨우 치우고 난 뒤에, 방 안에서 종일 고되게 일한 몸에 다시 바느질 같은 걸 들고서 남편 돌아올 동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이렇게 일찌감치 불을 껐다면, 이것이 혹 두칠이가 없다는 표적으로 형걸이를 끌어들이는 수단이나 아닌가. 그러나 쫙 열린 뒷대문 밖에서 흰 것이 하나 어른거리는 게 보이었다.
쌍네는 저녁을 먹은 뒤 겹옷 두어 가지를 애벌빨래를 해다가 지금 뒷대문 바깥 가시울타리 옆에 고잇다리를 걸쳐서 널어 놓고 있던 참이었다.
대문 밖에 나서서 형준이는 쌍네가 빨래를 다 널기까지 그를 바라다보고 섰다가, 쌍네가 버주기를 한옆에 끼고 들어오려고 할 때에, 그의 옆구리 괴춤을 꽉 잡았다. 버주기를 빼앗아 겨우 깨지지나 않을 정도로 토방 위에 동댕이쳐 놓고, 덤석 쌍네의 허리를 돌려 안았다.
쌍네는 형준이의 행동이 뜻밖이었다. 얼마 전에 두뭇골 도련님이 제 방에 들어왔다 나가는 것 잡아 갖고 책망을 하더니, 그 이튿날은 기어이 그걸 상전 나리에게 일러바쳐 말썽을 일으켰고, 그뿐 아니라 늙은 종의 귀에까지 가게 이야기를 퍼뜨려 놓은 이가, 지금 스스로 내 몸에 손을 댄다는 건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것도 늙은 종이 쌍네를 불러 갖고 부엌에서 들었노라고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알 턱이 없다. 사나이답지 않게 샐샐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꼽고 이튿날 다시 두뭇골 도련님이 왔다 간 뒤론 얼씬 발길도 안 하는 것이 필시 그 탓이라고 적지 않이 얄미웁게 생각하고 있는 터에, 이번엔 제 몸을 통째로 낚아 보려고 팔을 걷고 대서는 것이 아무리 상전 서방님의 하는 행동일망정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몸을 꽉 가다듬었다.
"노시라구요."
이렇게 말하면서 제 허리에 감긴 팔을 홱 뿌리쳐 버렸다. 그럴 줄은 몰랐던 터에 뜻밖에 쌍네의 하는 품이 왈패스러운 데 놀라, 뒷들뒷들 한 발자국을 물러섰다가,
"아니 네가 이럴 참이냐."
하고 적이 위협조로 다시 대선다.
"이러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그 다음 말은 입 밖에 내진 않았으나,
'내가 남편에 대한 정조는 못 지킬 갑시, 인륜을 깨트리진 못해요.'
하는 도고한 심보가 드러나 보인다.
"아니 너 정말 이러기냐."
하고 재우쳐 말하는 데는 쌍네는 아무 말도 대답지 않고, 딱 얼굴을 바로 세우고 쳐다보았을 뿐이다.
"오냐 그럴락커던 두칠이보구 말해서, 도무지 너들을 내 집안에 두질 않게 매련해 줄 테다."
이렇게 말해 놓곤 '이래도 좋으냐' 하듯이 또 한번 쌍네의 얼굴을 바로 본다. 쌍네가 아무 말 못 하는 걸 보고, 이건 필시 굴복임에 틀림없다고, 얼굴의 표정을 느긋하니 늦추고 바른손을 다시 내밀어 본다.
"맘대루 하시구려, 죽기밖엔 더 할라구요."
그러나 '맘대루 하라'는 것이 '내 몸을 서방님께 맡기니 마음대로 주무르며 놀아 대슈' 하는 뜻이 아니고 '죽으면 죽었지 난 당신 소청 들을 순 없소' 하는 의미라는 건 그의 어조로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쌍네의 뺨을 하나 갈겨 대곤 그대로 가시울 문을 지나 물역으로 나갔다. 강기슭 방수성 위에 서서 잠시 기다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신도감이 아래쪽에서 온다. 물어 보니 육계문은 '판계'가 아니고 '청운(靑雲)'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휭하니 문길덕이네 집으로 갔다.
싸리문 밖에서 웅성대는 안뜰을 향하여,
"두칠이 예 왔나."
하고 부르니 두칠이가 헐레벌떡하며 뛰어나온다.
"저를 부르셨습너니까."
형준이 앞에 서 있는 두칠이에게 그는,
"자네 아내가 행실머리가 없어 두뭇골 형걸이가 드나드는데, 그대루 두단 집안에 창피한 일 생길 테니 어데루 떠나가게."
느닷없이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함인지, 한참 동안 두칠이는 영문조차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