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따라 없이 형걸이는 늦잠을 잤다. 여느 날 같으면 학교 뒤 솔밭이든가, 강가에 나가서 나팔을 불든가, 그러잖으면 학교 운동장에 가서, 철봉을 하는 것이 아침 먹기 전에 형걸이가 하는 버릇처럼 된 일과이었는데 오늘따라 그는 늦잠을 자고 있다.
그러나 창문이 훤하니 밝은 것을 모르고, 이불을 막 쓰든가, 베개에서 떨어져서 침을 흘리든가 하면서 늦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눈을 멀뚝멀뚝 뜨고서 뎅그렁하니 번듯이 자리 위에 누운 채 일어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 어째서 이날 아침이 다른 날 아침과 달라서,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은지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어젯밤은 큰집에서 자고 없으니, 늦게 일어나도 꾸중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그러나 아버지는 그가 늦게 일어나건 이르게 일어나건, 그런 데는 별반 참관하지 않는 이다. 지금 저 사랑방에 아버지가 앉아서 담뱃대를 땅땅 뚜드린다든가, 그러잖으면 기침을 유별나게 한다든가, 또는 아침상을 설령 받고 있다고 하여도,
"형걸이놈은 생게두 안 니러났니. 어젯밤 늦두룩 논 게로군."
하고쯤 상귀에 나앉은 작은댁에게 물어 볼는지는 몰라도, 그 이상 이러니저러니 하든가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어머니는 일어나는 것이 늦으면, 그의 방에 찾아 들어왔다.
"해가 한 빨이나 솟았던데 넌 생게두 자네."
라든가, 그러잖으면,
"오늘은 나팔 불러 안 가네."
라든가 하고 그의 자리 옆에 서서, 발심하니 웃으면서 아들의 자는 얼굴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오늘도 벌써 한참 전에 방문을 열어 보고 갔었다. 그러나 아들이 눈이 멀뚱멀뚱한 채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방싯하니 열었던 방문을 닫아 버렸다. 형걸이는 눈닦아 보진 않았으나, 어머니가 어째서 오늘따라 아무 말이 없는지, 그리고 어째서 나들이옷을 갈아입고 새벽부터 집을 나가는 것인지, 그리고 다시 아침도 먹지 않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이런 걸 그는 비로소 똑똑히 의식한다.
아니, 그가 이렇게 오늘따라 해가 한 발은 샘스러, 좀 허풍을 치는이라면, 거의 중천에 올라왔다고까지 서둘러 댈 시각에, 잠도 안 자며, 시름없이 자리 위에 누워 있는 것은, 그런 걸 모두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잘 알고 있다. 왜 자기가 자리 속에 누워서 일어나기가 싫고, 어머니도 아무 말을 못 했는지, 형걸이는 잘 알고 있다. 오늘 아침은 불과 한 달 상관으로 어엿한 형이고, 뿐만 아니라 큰어미의 소생이기 때문에 자기보다도 소중한 대우를 받는 형선이가 정좌수 집으로 장가를 드는 날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젯밤, 두뭇골로 오지 않고, 그대로 큰집에서 잔 것이고 (물론 아버지라고 장근 두뭇골만 와서 자는 것은 아니었으나) 다시 어머니도 새옷을 갈아입고 아침도 들기 전에 큰집으로 간 것이고, 방문을 방싯하니 열고 아들의 누워 있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 말 못 하고 그대로 문을 닫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가서 한참 만에 큰집에서 사환아이가 왔다고, 삼남(三男)이가 문을 열고 전고를 한다.
"큰댁에서 조반 잡수시라구, 나오시라구, 사람이 왔어요."
그대로 큰댁에서 조반 나와 잡수시라구 사람이 왔다면 될 것을, 혹시나 실수할까 어린것이 지나치게 마음을 쓰노라다, 되레 우스꽝스런 말이 된 것이, 어쩐지 불쾌해서 형걸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뻔하니 듣고도 대답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건만, '잡수시라구 나오시라구'를 또 한번 외고 섰다. 만일 대답이 없으면 작인의 아들 삼남이는 하루 종일이라도 이러고 섰을 참인가 하고 생각하니, 형걸이는 와락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한편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여기서'까지는 성난 목소리를 질렀다가, 그 다음 '여기서 먹는다구 그래라'는 나직이 부드럽게 말하였다. 그러나 성이 나서 말하거나, 부드럽게 말하거나, 그런 건 아무것도 아랑곳할 게 없다는 듯이 그대로 표정 없는 얼굴을 한 채 문을 닫고는,
"여기서 잡수신다구 그러시라구 그러시래."
한다. 형걸이는 이 말소리를 방 안에서 가만히 듣고 누웠다가, 작은 발자국 소리 둘이 대문으로 사라지는 것을 들으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놈의 하는 짓도 좀되고 불쾌한데, 아침들이 이러고 누워 있는 자기 모양도 어지간히 싱겁게 보여지는 것이다.
'우리 청년 학도들은 용감하고, 쾌활하고, 대범하고, 희생심이 있어야 한다.'
산술선생이나, 역사선생이나, 지리시간에나, 체조시간에나 언제나 들어 온 말이다.
옷을 주워 입고, 공기를 바꾸느라 마당으로 난 문을 열어 젖혔다. 일어서서 자리를 개려고 하는데, 부엌에서 중년세나 되는 종이 들어와서, 이게 무슨 일이시냐구 말로는 안 냈으나, 황송해하는지 황겁해하는지, 분간할 수 없는 표정으로 이불을 빼앗듯 한다.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밖으로 나왔다. 봄날 아침의 해는 광선이 따사하다. 한참 눈이 시도록 태양을 겨누어 응시를 한 다음 그는 낯을 닦았다. 방 안에 들어오자 밥상이 나온다. 방금 함지에 이고, 큰집 종이 아침을 날라 온 걸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예전대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혹시 학교가 늦을는지도 모른다고, 좀 황황히 서두르면서 두루마기를 입고, 등골로 주의 속에 들어간 머리채를 쭉 뽑아 내다가 문득 생각히는 곳이 있다. '이 머리채'―---그것을 앞으로 끌어다 놓고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본다. '이 머리채'―---세 갈래를 잡아서 미츳하니 땋아 내려가다가 맨 끝이 꺼먼 댕기로 맺혀 있는 이 머리채.
"에히, 오늘은 세상없어두 이놈의 머리채를 잘러 버리구야 만다."
다시 휙 잔등께로 넘겨 버리는데 체조하듯 하는 그의 바른손 속에 굳은 결심이 들어 보이었다.
사포를 쓴 뒤에 문 밖에 놓은 갓신을 신고 집을 나섰다. 학교는 얼마 멀지 않다. 두뭇골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논두렁길 같은 작은 길을 한참만 가면 곧 학교의 운동장이 나선다. 솔밭 중턱에 문묘(文廟)가 있고, 그 옆에 서원(書院) 자리가 있다. 이것이 교실이었다.
대문을 나서서 큰 버드나무와 우물과 느티나무만 돌아서면 학교 운동장이 바라보인다. 검정 두루마기를 입은 채, 새끼줄 넘이를 하는 학생도 있고, 주의를 벗어 걸고 철봉에 매달린 학도도 있다. 아직 시간이 좀 있는 성싶다. 그러고서 쳐다보니 해는 생각던 것보다는 그리 높이 솟진 않았다. 학교 뒷산 솔밭 위에 한 칸쯤 솟아 있다. 그는 뛰지 않고 책보를 바른손에 들고, 갓신에 힘을 주어 병정처럼 뚜벅뚜벅 걸을 때 만족을 느낀다. 머리채가 물결치듯 잔등에서 꾸풀대며, 궁둥이께를 댕기가 스척거리는 것이 오늘 아침은 유난히 마음에 거슬린다. 제법 철석 소리가 나는 것도 같다. 이놈을 오늘 몽땅 잘라서 내 버려야 속이 시원할 게다 하고 생각하니 마치 누구에게 오래 묵은 원수를 갚는 것 같은 통쾌한 생각이 들었다.
형걸이는 고등과 일년이다. 그러므로 심상과(科) 생도는 그를 만나면 걷던 다리를 딱 모아 붙이고 경례를 한다. 그 대신 고등과 이년생, 삼년생을 만나면, 그가 경례를 해야만 한다. 경례를 하는 것이나 받는 것이나 모두 유쾌하였으나, 윗학급에서 자기보다 나이 어린 놈이 없는 건 더욱 다행하였다. 어떤 자는 경례를 붙이고는 격식을 갖추느라곤지, 입으로 나팔을 부는 자도 있다. 손대봉(孫大鳳)이가 그 중의 하나다. 이는 그의 어머니가 양덕 온천(陽德溫泉) 대탕지(大湯池) 뒷산, 대봉산(大鳳山)에서 산신령께 치성을 드리고 온정을 했더니 산덕과 물덕을 입어 잉태해 낳았다 해서, 이름마저 대봉인데, 부모가 완고해서 승혈(僧血)이 만강(滿江)이라고 머리를 깎지 못한 채 있으나, 신식이라면 머리를 싸매고 대서는 자이다. 그는 상급생을 만나면, 제가 그렇게 하고, 하급생을 만나면 그들에게 이 짓을 시켰다.
지금 형걸이가 운동장 어귀에 세운 '동명학교'의 현판이 붙은 대문을 지나가는데 운동장의 커브를 손대봉이가 껑충껑충 뛰면서 이편으로 굽어 돈다. 조끼 바람에 사포는 벗어 던지고, 머리채는 거치적거린다고 뱅뱅 둘러 머리에 가뜬하니 틀어 붙였다. 재빠르게 다리를 놀리지 않고 성큼성큼 조자를 맞추는 품이 아마도, 대운동회에 할 이인삼각(二人三脚)을 연습하고 있는 모양이다. 먼눈만 팔다가 형걸이의 한 칸쯤 앞에서 비로소 그를 발견하고, 엉겁결에 넘어질 듯이 다리를 가누지 못한 채, 겨우 기척을 하고 경례를 붙인다. 형걸이도 걷던 걸음을 멈추고 경례를 받는데, 숨이 하늘에 닿도록 헐럭시면서도 왼손을 말아서 입에 대고, 대봉이는 나팔조로 기운 있게 한 곡조 불어 넘긴다.
"띠다디따, 띠다디따, 땃따띠따 띠 띠다디 따―---"
손대봉이는 심상과 삼년생인데, 작년에 평양서 열린 대운동회에 갔다 와서부터는, 이렇게 경례 뒤에는 꼭 나팔을 불었다. 대봉이를 본떠서 이렇게 하는 학교가 늘어 갔으나, 또 같이 평양 나갔던 학도 중에는, 손대봉이가 하는 것은 괜한 제 조작이지 평양 대성학교라든가 다른 곳 학도들 중에 나팔 부는 시늉을 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그의 하는 것을 비방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대봉이는 태연하니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내려왔다.
퍽 전에 한 학도가 체육교사 정영근에게, 경례 붙이면서 나팔 부는 것이 격에 어그러지지 않는 게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으나, 교사는 그렇게 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정교사 역시 손대봉이를 두고 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봉이는 상급생뿐만 아니라, 선생을 만나도 한가지로 경례 뒤엔 나팔을 불었기 때문이다. 정교사는 처음 손대봉이한테서 이런 경례를 받을 때, 잠시는 웃으면서도, 좀 얼떨떨했었다. 그러나 그의 하는 품이 군대식으로 엄격했기 때문에, 적지 않이 만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형선이 장가간다구 오늘 아침은 늦었구나."
경례를 치를 때만 엄숙하고, 이것이 끝나면 그들은 너, 나 하는 장난 친구다.
"남이 장가드는데 내가 늦을 턱이 뭔가. 앞집 체니 시집가는데, 뒷집 총각은 목매러 간다든가."
농말을 하면서도 형걸이는 좀 언짢았다. 시간에 늦어진 것은 아니나, 여느 때보다 늦게 온 것은 사실이고, 또 늦어진 까닭이 형선이의 장가든다는 데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결심한 게 하나 있넌데, 넌두 나하구 같이 하자."
"결심이 또 무슨 결심인가. 네가 결심을 했건 말었건, 내가 너하구 같이 따라가야 된다껀 또 어떻게 하는 말인가. 내가 네 색시란 말가, 네 집 비복이란 말가."
"이놈은 색시하구 비복밖엔 모르냐. 그런 게 아니다, 좀 이리루 오나라."
형걸이는 대봉이를 끌고 커다란 은행나무 곁으로 간다.
"너 인제 이걸 짤라 버리자."
그리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머리채를 만져 보았다.
"지금 난 깎군 못 배겨 낸다."
대봉이는 여느 때 없이 얼굴 위에 난색을 나타낸다.
"난두 내 오마니 때문에 못 깎구 뒀넌데 오눌은 결심했다. 쓸데없넌 걸 붙여 둘 리가 하나두 없구, 매사에 방해되는 놈을 달아 둘 턱이 하나두 없구, 또 이가 끓구 구질구질하다. 자 인제 난 깎는다."
"우리 청년학도는 용기가 있어야 된다. 엣다 나두 깎았다."
둘이는 하하하 웃고 학교 사무실께로 올라간다. 형걸이는 머리채를 뽑아서 한 손으로 주무르면서 걷는데, 대봉이는 머리에 틀었던 놈을 끌러 내리고 이마와 머릿속에 젖은 땀을 댕기 끝으로 묻혀 낸다. 그러더니 별로 길지도 않은 노르스름하니 불이 붙은 머리채를 횅횅 둘러대며,
무쇠 골격 돌근육
소년 남자야,
문명의 정신을
잊지 말아라.
우리는 덕을 닦고
지혜 길러서
문명의 선도자가
되어 봅세다.
하고 창가를 불러 댄다. 두 사람은 조자를 맞추어 걸으면서 언덕을 올라갔다. 그들은 한번 결심한 생각이 다른 데로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저도 모르게 애써 딴 잡념이 섞이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다. 깎은 뒤에 일어날 것을 생각하면 혹 이 결심이 흩어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곧 학교의 심부름꾼인 사채를 불러서 이발기계를 들고 나오라고 했다.
"이제 얼마 안 해 상학 나팔 불 텐데."
하는 것을 강제로 끌고 나오면서 형걸이는,
"나팔은 내 불게 우선 대봉이부텀 머리를 깎아."
하면서 달래었고, 한편 대봉이는 언덕 옆에 있는 돌각담 위에 올라서서, 운동장과 교실을 향하여 커다랗게 소래기를 질렀다.
"고등과 일년생 박형걸이와, 심상과 삼학년생 손대봉이가 머리를 깎는다."
머리 깎느라고서 시간에 늦어졌다면 선생도 그다지 나무라지 않을 걸 그들은 알고 있다. 학도들은 머리 깎는 걸 보자고 모두 이리로 쓸어 올라왔다. 그들은 황철나무 밑에 놓인 청결통 옆으로 가서 쭉 둘러선다. 손대봉이가 웃저고리의 동정을 꺾어서 밖으로 접고, 둘러선 가운데 가 꺼꿉 서 앉는다.
"형걸이하구 대봉이하구 머리를 깎으니 아무래두 내일 해는 서편에서 뜰라는가 부다."
고 누가 중얼대는데, 벌써 삭발한 지 오래인 길손이가 가운데로 들어서면서,
"머리채는 내 들구 있지."
하고 댕기를 잡아 쳐들어 준다.
"내 머리에 기계가 와 닿을 때에 창가나 한마디 불러 주게."
하는 손대봉이의 말이 농말 같지 않고, 어딘가 비장한 데가 있는 것 같아서, 형걸이는 솔선해서 창가를 메겼다.
왔도다 왔도다
봄이 왔도다.
하고 메길라치면 일동은 거기 맞추어서,
왔도다 왔도다
봄이 왔도다.
하고 우렁차게 따라갔다.
새벽 맞는 이 산천에
봄이 왔도다.
만물은 때를 좇아
빛을 발하니,
춘풍 화기중에
은혜 깊도다.
창가 소리가 나는데, 똑딱거리면서 이가 드문드문 빠진 기계는, 대봉이의 머리를 밑으로부터 깎아 올라간다. 가장자리부터 올라가다가 맨 위 꼭대기에 가서 잠깐 기계를 멈추었다. 댕기 들고 있던 길손이가 바른손으로 잡아당겨 보니, 한 줌만큼만한 머리카락이 아직도 머리 위에 붙어 있다.
"자 마저 깎는다."
사채도 좀 긴장해서 두 손으로 기계를 머리카락 속에 박는다. 모두 조용하다. 기계 소리가 사채의 두 손이 움직거리는 대로 유난히 높이 들려 온다. 마지막 한 번을 휙 밀어 내면서 기계를 뽑아 올리니, 댕기 달린 머리채는 홀랑 머리에서 떨어졌다. 길손이가 고놈을 냉큼하니 쳐들고, '손대봉이 만세'를 부른 뒤에 청결통에다 집어넣는다. 대봉이는 머리를 털며 헤벌심하니, 웃는지 또 울지나 않으려는지, 분간키 어려운 표정을 하며 서운해서 일어선다.
인제 형걸이 차례가 왔다. 그는 각담 위에 책보와 사포를 놓고, 그 위에 다시 두루마기를 벗어 얹는다. 팔소매를 성금성금 걷어붙이려니,
"옛다, 형걸이 큰일 치를낸다."
하고 누가 놀려 댄다. 그러는데 마침 사무실에서 상학 나팔이 들려 온다. 이 소리를 들으며 사채가,
"한 시간 하구던가, 점심시간에던가 마저 깎자."
는 걸, 모두,
"그래서는 안 된다."
"그리다간 못 깎구 말는지두 모른다."
고 반대해서, 곧 깎기로 하고 둘러섰던 학도들은 교실로 갔다.
"선생보구는 내 말하마."
하고 손대봉이는 아까보다는 좀 기운이 나서, 학도들과 어깨를 걸고 가는 것이 보인다. 형걸이는 한번 손을 둘러 뵈고 가만히 앉았다. 사채는 빗자루로 기계를 한번 쓴다. 나사를 풀어서 소제를 하고, 안약 병에 넣은 석유를 꺼내서 쇠자박이 맞닿는 데다 바른다. 다시 나사를 죄고 귀밑에다 대는 듯하면서 팔로 기계를 가만가만히 놀려 본다. 만문한가 뻑뻑한가 그 소리를 들어 보는 게다. 사온 지 일 년이 남짓한 것인데 이 고을서는 둘밖에 없는 기계인지라, 하루도 열 명 가까운 사람을 깎아 대니 그놈이 성할 이치가 없다. 언저리에 동녹이 슬고, 이가 두세 개 빠져서 가끔 털을 꽉 문 채 옴짝도 안 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기계는 으레 좀 뜯고 아픈 것으로 모두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만 것쯤은 상관치 않았다.
선뜩하고 쇠가 형걸이의 데석에 와 닿는다. 그러더니 똑딱 소리를 연신 내면서, 찬 금속물은 머리를 한 바퀴 오르내린다. 머리에 부는 바람이 갑자기 차서 등골이 산뜩하였다. 머리채가 털석 하는 소리를 내며 귀 옆을 스쳐서 그의 눈앞 까만 흙마당 위에 떨어져 뒹군다. 그러나 기계는 아직도 머리를 다스리느라고 그냥 오르내리기만 한다. 빗자루로 머리를 확확 쓸어 내리니 시원하기는 비할 데 없으나, 또 한편으로는 걷잡을 수 없는 서운한 생각이 뿌엿하니 가슴을 치받쳤다. 바른손으로 가만히 머리를 만져 보니, 여느 때 같으면 기름진 머릿발이 미츳할 텐데, 바늘 끝처럼 손뼉을 찌르면서 착각같이 손은 허전허전하다.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손맛이 온통 변해 버렸다.
"수구했네."
하고 옷을 털며 일어서서, 머리채를 청결통에 팽개쳐 넣는데, 까만 긴 머리채에 어리어서, 어머니의 적막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눈앞에 떠오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뿌리치듯 하면서, 곧 두루마기를 입고 사포를 썼다. 사포가 귀 있는 데까지 거침없이 쑥 떨어지고 안에 대인 가죽이 싸늘적하다. 그는 책보를 끼고 장달음을 놓아 교실로 뛰어들어갔다.
점심시간에는 집에 오지 않고, 형걸이는 향교 가까이 있는 길손네 집에 가서 그와 둘이 길손이의 점심밥을 나누어 먹었다. 어쩐지 집에 오기가 싫었다. 어머니는 아직 두뭇골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므로 머리 깎은 것을 들킬 염려도 없을 것이요, 하기야 아무 때라도 한 번은 겪어야 할 판이니, 어머니의 눈을 피하느라고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나,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서 그저 어쩐지 집으로 가기가 싫었던 것이다. 오후에 한 시간을 하고는, 백 명 가까운 전교 생도가 두루마기를 벗어붙이고 신에 들메를 한 뒤에 대운동회의 준비를 위하여, 연합체조의 연습을 정교사의 지휘로 한 시간쯤 하였다. 이것이 끝난 다음엔 형걸이는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대로 산에나 강에나 가서 나팔이라도 불고 싶으나, 우선 책보를 집에 갖다 두어야 할 게요, 책보는 아무렇게나 들든가 또는 병대들의 가죽부대 모양으로 둘러진다손 치더라도 나팔이 집 안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교문을 나서며 한참 생각다 못하여 그대로 혼자서 산으로 올라갔다. 따스한 양지바른 곳에서 낮잠이나 자보려는 것이다.
대성전(大成殿) 뒤 솔밭 속을 지나서 삼송정(三松亭) 앞 언덕으로 돌아왔다. 작년 가을에 말라 버린 누런 잔디에 봄날의 따스한 태양이 함뿍 내려쏟고 있었으나, 아직 푸른 움은 트지 않았다. 그는 책보를 베고 사포로 얼굴을 가린 뒤에 번뜻하니 나가넘어졌다.
역시 눈을 감아도 잘라 버린 머리채와 어머니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머니는 삭발한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여태껏 형걸이가 몇 번이나 머리를 깎으려고 할 때마다, 관례(冠禮) 지내는 것을 본 뒤에 깎으라고 한사코 말려 온 것을 오늘 아침 이렇게 깎아 버렸으니, 그의 삭발과 형선이의 혼례식과를 맞붙여서 생각할 것은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기필코 형선이가 장가드는 것에 불만하여 삭발을 해버린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가 어엿한 본댁이 아니고, 또한 단 하나뿐인 아들이 서자의 대우를 받는 것을 마음 아파하던 윤씨로서 형걸이의 이 행동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될 것이다. 형선이가 오늘 장가를 든 정좌수 집 둘째 딸 보부를 본 적은, 형걸이로서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윤씨는 처음 형걸이를 보부와 혼사 지낼 의향으로 그를 수소문해 보았고, 다시 그는 영감더러 그 뜻을 전해 본 적도 있었다. 박참봉은 혼처는 적당하고 규수가 인물로나 무엇으로나 훌륭한 것을 듣기는 하였으나, 정좌수가 필시 형걸이를 서자라고 나무랄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윤씨의 말이 나오자마자 지금 정씨 집 규수하고는 형선이와 혼삿말이 있다는 헛소리를 하고, 또 혼사는 비록 한 달의 차이라도 순서가 있으니, 우선 형선이를 보낸 다음에야 형걸이 차례가 아니냐고 말했다.
영감이 적자나 서자를 그다지 차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아무리 마음은 내켰었다고 할지라도 이 말에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만 형선이와 정씨 집 규수와 혼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형걸이는 이런 것을 자상하게 알지는 못하나, 한번 어머니가 정씨 집 딸이 훌륭한 게 있다는데, 네 맘이 어떠냐구 물어 본 일이 있었다. 그 뒤 그는 윗동리에 사는 동무들께 눈치채이지 않게 의중을 떠보고, 그 규수가 인물이 절색이고, 또 자기 부친에게서 한문과 언문 공부를 했고, 바느질도 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시 그러한 말을 하지 않았고, 뒤이어 형선이와의 혼사가 성립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가 오늘 아침 형걸이의 태도에 아무 말을 못 건넨 것도 이런 일이 있는 때문이었고, 또 형걸이 자신도 어머니의 심경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가슴에 솟구쳐 오르는 지향없는 울분을 또한 어떻게 처치할 길이 없었다. 그 울분을 억눌러서 삭발로 인도해 놓은 것만 지극히 온당한 행동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머리는 깎아 버렸다. 어떻게 되었든 이왕 머리는 깎아 버린 게다. 사실 장가를 들 때 머리를 깎았으면 어떻고, 또 상투를 틀었으면 어떨 게냐. 사모, 단령에 각대와 목화를 몸에 안 붙이고, 그대로 사포와 두루마기라도 그만이 아니냐. 언제 갈지도 모를 장가를 기다리면서 오래잖아 오월 단오가 오면, 대운동회가 있어, 각처에서 많은 학도가 모여들 텐데, 그때까지 귀찮게 머리 꽁지를 달고 다니는 것만이 더한층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 치고 어머니의 슬픔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게냐.
생각이 자꾸 두루두루 맴을 돈다. 아무것도 생각지 않기 위하여 잠을 청하나 좀처럼 눈을 붙여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늘상 잠 안 올 때마다 해보는 방법을 써본다. 콧속에다 힘을 주어 어느 정도까지 숨을 막아 놓으면, 머리의 중추가 뗑해진다. 이것을 잠깐동안 계속하면 머릿속이 혼란해지고, 와사 같은 것이 꽉차는 것 같아지면서 이윽고 진공상태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해놓으면서 일변 건둥으로 하나 둘을 세어서 백까지만 가면 알 도리가 있다. 과시 머리가 휭해 오면서 여든여섯을 세는데 팔삭하니 눈가위가 무거워 온다. 여든일곱은 채 세지도 못했다. 그는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는지, 누가 고양이처럼 살그머니 와서 그의 얼굴을 가렸던 사포를 젖힌다. 눈을 떠보니 장옷도 안 쓴 젊은 색시다. 해는 이미 지고 사방엔 산산한 저녁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솔밭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개울물 흐르는 것 같다.
웬 한 여자가 이런 산등에, 장옷도 안 쓰고 또 남의 젊은 총각이 자는 데를, 버릇없이 무엄하게도…… 하면서 자상히 쳐다보니 두칠이 아내 쌍네였다.
쌍네라면, 장옷을 쓸 리는 없다 쳐도 어인 일로 해 저물어 이런 곳에를 왔었을까. 나무하러 갔던 두칠이를 마중 나왔다가, 해 지는 줄을 모르고 찬 땅 위에 누워 있는 젊은 총각이, 상전댁 도령님인 것을 발견하고 잠을 깨우는 것인가, 하고 뻐언히 쳐다보아도 얼굴을 숙인 채 아무 말이 없다.
형걸이는 슬며시 일어나 앉았다.
"누구, 두칠이를 마중 나온 길이냐?"
물어 보아도 대답이 없고 손을 읍한 채 가만히 서 있다. 슬그머니 화가 동했다. 그래서 훌쩍 일어서서 마주서는데, 핏뜩 마주 쳐다보는 얼굴이 한없이 아름답다.
스물두 살, 형걸이보다 그러므로 세 살이나 위이다. 그는 비로소 그의 앞에서 어려서부터 그의 집에 팔려 와서 잔뼈가 굵은 종간나도 아니요, 지금은 막서리 두칠이의 아내도 아닌 하나의 난만한 원숙한 여자의 육체를 발견하는 것이다. 붉게 큼직한 입술이 쭝긋쭝긋하고, 퀭하니 뚱그런 눈에는 꺼먼 그림자가 약간 어리어 있는 듯하다. 머리는 좀 흩어진 채, 흰 수건 뒤로 꺼먼 댕기의 꼬둘채가 늘어져 있다. 앞섶을 팽팽하니 여미어서 불룩하니 터져 오르는 젖가슴을 겨우 가누고 있다. 그는 손과 팔을 본다. 추운 삼동간 물에 튼 손잔등은, 그러나 벌겋게 달뜨면서, 팔소매 안에서 흘러 내려온 흰살과 비스듬하니 잇대어서 아마, 그것이 어깨와 가슴으로 부드러운 구릉처럼 뻗어 있을 것이다.
이렇도록 아름답고 탐스런 색시를 어째 자기는 여태껏 몰라 보았을까―---이렇게 생각에 취해 황홀히 바라보는 순간, 그는 색시의 손을 덤석 쥐었다. 색시의 얼굴에 붉은 물감이 쪽 돈다. 귀는 얼굴보다도 더 빨개졌다. 폭 수그린 얼굴, 등골에 나풀거리는 솜털이 형걸이의 두 눈을 간지럽게 한다. 무어라고 말하려고 하나, 말문이 막혔는지 목구멍이 움직이지 않는다. 밤은 벌써 산을 캄캄하니 둘러 감았다. 가슴을 치받는 정열이 가리키는 대로, 그는 색시의 손을 이끌고 솔밭 숲속으로 뛰어든다.
덤성덤성 끄는 대로 소와 같이 유순하게 따라올 줄 알았던 색시가, 그 자리에 오뚝 선 채 움쩍도 안 한다.
"저는 남의 아내 된 몸이에요."
그러나 지금 와서 이 소리는 형걸이의 행동을 제어할 아무 힘도 없었다. 그것은 쌍네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체 두칠이는 뭐고, 두칠이의 아내란 뭐냐. 그는 삼십이 되도록 절게로 있다가, 작년에 겨우 쌍네를 아내로 맞은 것이 아니냐. 쌍네를 주지 않았으면 그는 지금도 더벅머리 늙은 총각으로, 을씨년같이 지냈을 것이요, 쌍네 역시 종간나로 늙어 꼬부라질 것이 아니냐. 지금 그들이 어엿한 부부처럼 제법 '남의 아내 된 몸이에요' 하지만 지금도 그대로 박참봉네 집에 매여 있는 비복과 다를 게 없다. 도련님이 이끄는데 '남의 아내 된 몸이라'니 어디다 대고 하는 무엄한 수작이냐―---그러나 이런 것까지를 구차하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성난 호랑이처럼 휙하니 쌍네의 몸을 낚아 들고, 성큼 앞으로 바꾸어 안은 뒤에 그는 으슥한 솔밭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색시는 발버둥을 치며 네굽질을 하는 듯하더니, 그대로 털썩 몸을 도련님께 실으며 두 팔로 그의 목을 둘러 감는다. 뜨거운 입김을 사나이의 목덜미에 쏟으면서, 그러나 그것과 함께 형걸이의 귀에 들린 말은 뜻밖이었다.
"아무리 매인 사람이래두, 너무 숙보지 않아요."
그러나 그 다음 말은 더욱 그를 놀라게 하였다. 떨어지게 해라를 하면서,
"넌두 첩자식이라고 수모 사는 일은 없냐."
도무지 쌍네의 말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어디다 뫼를 쓰고 어느 하늘에다 머리빡을 솟구고 이런 죽여 마땅할 수작을 쏟아 놓는 게냐, 하고 품에 안은 쌍네를 보니, 그는 조금 전에 낚아 안은 쌍네가 아니었다. 녹의홍상에 큰머리를 해 얹은 새색시, 이는 정녕 정좌수 집 둘째 딸이 아니냐고 기겁을 하는데―---
빽 그의 귀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깨어나니 꿈이었고, 그의 옆에는 나팔을 든 손대봉이가 웃고 서 있다.
"산에서 낮잠이 뭐야. 귀신한테 홀릴라구. 옛말도 몰라, 산에서 자다 여우한테 홀린 말."
대봉이의 말이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그는 지금껏 취해 있던 꿈에서 아직 깨지 못한 채 있는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는 뗑하고, 나팔 소리에 고막이 윙 운다. 아직 긴 봄날의 해는 십이봉 화줏머리 위에 높이 떠 있다.
"머, 정말 꿈이래도 꿔댄나."
털썩 그의 옆에 앉는 대봉이를, 윙하니 덮쳐서 깔고 앉고, 멱암치를 내리눌렀다. 느닷없이 몰아치고 덮쳐 대는 바람에, 미처 손쓸 새도 없이 밑에 깔린 대봉이는, 들었던 나팔을 마른 잔디 위에 내던지고 바른팔로 형걸이의 한 손을 잡아 비틀었다. 두 다리에 힘을 넣어 뒤채는 바람에 둘은 함께 부여안은 채 언덕을 굴러 내려간다.
한 번 뒤채고, 두 번 고비를 돌고, 또 한 번 굴러 내리려는데, 조그만 솔포기에 걸려서 두 살덩어리는 멈칫하니 언덕에 걸렸다. 밑에 깔린 건 형걸이고, 위에 타고 앉은 것이 대봉이다.
'이 자식' 하고 멱살을 내리누르려다 두 눈이 서로 마주쳤다. 밑에 깔린 형걸이가 먼저 벌심하니 웃는다. 위에 타고 앉았던 대봉이도 따라서 웃었다. 그 다음엔 소리를 내서 웃었다. 이윽고 그들은 손을 털고 일어났다.
우물에 물을 뜨러 나왔던 길손이 어머니는, 바로 조금 전에 집 앞을 지나 올라가던 손장이 아들 대봉이가, 삼송정 앞에서 웬 총각하고, 맞닥뜨려 단판 씨름을 해서 나가뒹구는 걸 보고, 물동이를 우물가에 놓은 채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톱으로 널쪽을 헤고 앉았는 길손이를 보더니,
"어서 손장이네 집에 가 알려라. 큰일났다, 큰일났어. 그 애가 누구하고 칼을 번쩍이면서 맞닥뜨릴 하는데, 지금쯤은 모두 누혈이 낭자해서 나가넘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서 손장이네 집에 가 알리우라구. 원 저 일을 어떡허나. 남의 집 외아들, 불공 디리고 치성 디려서 낳은 걸 원 하눌도 무심하다."
길손이가 뛰어나와 보니 언덕 위에는 두 총각이 가지런히 서 있다. 하나는 대봉이고 하나는 형걸이다. 그래서 지금도 야난났다고 덤벼 대면서 대문 밖으로 나오는 어머니를 보면서,
"아니, 어데서 누가 싸웠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하니,
"넌 눈깔이 썩어졌네, 저 삼송정 언덕도 안 보이네, 저기 저."
하며 삼송정을 가리키나, 안개 낀 그의 눈에도 나란히 서 있는 두 총각밖에 보이는 게 없었다. 아, 이놈들이 대체 어이 된 일인가, 눈을 비비며 다시 보는데,
"엄맨 노망했건, 노망해서, 어서 물이나 길어라 얘."
하고 길손이는 늙은 어머니를 핀잔 준다. 이윽고 산에서는 나팔 소리가 들려 온다. 길손이 어머니는 아직도 혼자 마당귀에 서서 삼송정 쪽을 바라보며, 내가 아마 죽을 날이 머지않은가 보다 하고 쓸쓸하니 제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두뭇골 집에 돌아와서 종보고 물어 보니, 형걸이는 아무 말 없이 큰집에서 가져온 조반을 먹고, 학교로 시간 맞추어 갔다고 한다. 그가 대문을 나간 뒤에도 퍽 오래 지나서야, 나팔 소리가 학교에서 났다고 하니, 그리 늦게 일어나지 않은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점심을 먹으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무슨 바쁜 일이라도 생겼던 게지, 아침 잘 먹고 갔으면 뭐 그리 배가 고프랴, 하고 저로서도 생각하고, 또 근심하는 종에게도 말하였으나, 학교가 필한 뒤에도 일찌감치 돌아오지 않으니, 윤씨로서는 근심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삼남이와 종을 시켜 학교와 또 강가에 나가 찾아보라 했으나, 학교는 텅 빈 채 아무도 없고, 강가에도 그럴듯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해가 거의 넘어갈 무렵에야 손장이 아들하고 둘이서 대문을 들어선다. 형걸이는 모자를 푹 쓴 채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손대봉이가 일부러 안마당을 겅충겅충 걸어오더니, 영창문을 열고 앉았는 윤씨를 보고, 토방 밑에서 사포를 벗어 인사를 한다.
"그새 안녕하신가요."
"대봉이 오래간만에 오는구나. 그런데 너 머린 웬일이가."
대봉이는 머리를 한번 바른손으로 북 쓸어 보면서,
"거치적거리구, 말째서 오눌 깎았이오. 학교에서도 깎으라고 해서."
그러고는 헤벌심하니 웃어 보인다. 그러나 윤씨는 웃지 않고,
"너 어머니랑 아버지 보이셨네."
하고 재우쳐 묻는다.
"낮에 뵈었어요."
"그래 잘했다고 그러시던?"
"그럼 깎은 걸 뭐 별수 있나요?"
"장가도 안 가고 머릴 깎으면 쓰나. 학굔지 뭔지, 원 무슨 영문인구."
"머리 깎어야 산술 잘한대요."
"전에 사람들은 그래 과거한 사람도 없고, 진사 급제한 사람도 없다더라."
"학교 공부가 서당 공부와 같은가요. 그러게 서당에서 신식 공부는 모르지요."
윤씨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담배를 피워 문다. 이윽고 대봉이는 형걸이 방 있는 데로 걸어간다. 토방에 갓신을 벗어 놓고 방 안으로 들어서면서 눈을 찔금하는데, 형걸이는 약간 혀를 빼보았다.
대봉이가 형걸이 방으로 건너가는 것을 보고 윤씨는 영창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두 놈의 하는 품이 께름하다. 대봉이가 인사를 하는 거야 언제나 놀러 오면 하는 일이지만 머리를 갓 깎고 우정 그걸 보이듯이 토방 밑에까지 와서 나부라지게 반절을 한다든가, 그놈이 이러니저러니 말대꾸를 하는 거라든가, 또는 형걸이가 이쪽을 본 체 만 체하고 제 방으로 휭하니 들어가 버리는 품이라든가, 모두가 무슨 까닭이 있어 보인다. 그래 윤씨는 담뱃대를 놓고 마당으로 나와 신을 신고 뜰 안을 건너갔다. 아들의 방문을 드윽 열면서,
"너 점심은 어떻게 핸."
하고 물어 본다. 대봉이는 사포를 벗고 맨 머리째, 다리를 펴고 앉아서 나팔을 닦다가, 문 여는 소리에 다리를 끌어 세우는데, 형걸이는 사포를 귀에 닿게 꼭 쓰고 다리를 세우고 앉았다가, 어머니의 낯을 바라본다.
"바뻐서 길손네 집에서 얻어먹었어요."
"남의 집에서 그렇게 얻어먹어 버릇 하면 쓰나."
하고 형걸이의 귀 옆을 보았다. 구레나룻에 비죽이 내밀던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고 새하얗다. 가슴이 뚱 하고 물러앉는다.
어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보고, 형걸이는 황급히 낯을 푹 숙였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 한다. 한참 그럭하고 섰더니, 문을 닫고 다시 안방으로 건너가 버린다. 무어라고 말할는지 도무지 생각이 엄두에 오르질 않던 것이다.
한편, 어머니가 삭발한 것을 알고도 아무 말 못 하고 건너가, 잠잠하니 소식이 없는 걸 본 형걸이는, 윤씨와는 다르지만, 역시, 그는 그대로 또한 마음이 언짢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삭발한 걸 지금 새삼스럽게 후회한다든가, 그런 마음은 터럭만치도 없다. 해야 될 것을 해버린 데 불과하다. 단지 이것 하나만이 원인이 되어, 어머니가 슬퍼한다든가 노여워한다면 손대봉이처럼 그런 걸 무시해 버려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삭발이 가져오는 문제는 결코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온몸을 내던져서, 죽어라고 분풀이를 해대야만 할 곳이 어디엔가 꼭 한귀퉁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누구를 실컷 뚜드리든가, 그러잖으면 누구한테 늘어지게 맞아 보고도 싶다. 그랬으면 한결 가슴이 후련하고 속이 시원하니 뚫릴 것 같다. 그러나 누구를 때리고, 또 누구에게 맞아야 할 것이냐. 그 대상이 그에게는 똑똑지 않았다. 간지러운 것처럼 안타깝다.
그는 대봉이가 간 뒤에, 저녁을 대강 먹어 치우고, 번듯이 방 가운데 누웠다가, 맨머리 바람으로 어머니의 눈을 피해 방을 나와 버렸다. 강에 나가 시원히 바람이라도 쏘이면 좀 나을 것 같다.
두뭇골서 흐르는 작은 개울물은 구룡교 다리로 흘러서 비류강으로 들어간다. 그는 이 개울물을 쫓아서 작은 길을 더듬어 큰 거리로 나간다. 밤은 벌써 캄캄하다. 바람이 살랑살랑 앙상한 나무를 건너간다. 달이 실낱같이 차다.
임강정(臨江亭)을 지나 강선루의 우중충한 큰 그림자를 무시무시하게 먼발로 바라보면서 그는 천추봉 있는 쪽을 향하여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휘파람을 불어 본다. 그러면 마음이 좀 시원할 것 같다. 권학가(勸學歌)를 조자를 맞추어서 날카롭게 불어 넘겼다. 그의 휘파람 소리는 냉랭하니 괴괴한 밤하늘에 퍼져 나간다. 뒤에서 발자취 소리가 나는 것 같다. 휘파람을 멈추고 돌아보니 허연 두 여자의 그림자가 강선루 뒤 자복사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곧 각담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다. 승선교(乘仙橋) 밑 여울물 소리가 와― 귀에 새롭게 들려 온다. 소나기 소리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가는 빗소리 같기도 하다. 그는 방수성을 내려서 마른 잡초를 헤치고 강가로 나갔다. 물 있는 쪽은 더 캄캄하다. 하늘이 비친 곳만 초승달을 거꾸로 마주 그리면서 좀 희끄무레하다. 가만히 앉아 본다. 물 위에서 오는 찬 김이 머리에 시리다. 손을 담가 본다. 얼음 같다. 그걸로 머리를 적시어 본다.
그러는데 선뜻 생각이 떠오른다. 지금 탑 골목으로 가는 두 여자는 정좌수 집 사람은 아닌가. 올라가던 골목이 그곳이다. 신부가 어디 가서 숨었다가 신랑 방에 단장하고 들어가려고 지금 그의 친척집 부인네와 함께 돌아오는 길은 아닌가.
뒤를 돌아다보니 강선루의 커다란 그림자, 그리고 그 뒤에 자복사의 오뚝한 탑, 그 뒤로 인가가 있는지 없는지 그대로 꺼멓다. 정녕 정좌수의 딸, 형선이의 새색시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는 손을 털고 일어섰다.
낮에 산에서 꾼 꿈 생각이 불현듯이 솟아난다. 정좌수 딸의 녹의홍상하고 큰머리한 몸집, 두칠이 처 쌍네의 풍만한 육체, 그는 그의 가슴이 갑자기 물차관처럼 설렁거리고, 커다란 몽둥이 같은 것이, 가슴으로 뿌엿하니 치받쳐 오르는 것을 느낀다. 코에서 더운 김이 훅 하며 내솟는다. 그는 한참 멍하니 서서 제 욕망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다가, 그대로 느리게 발을 옮겨 놓으면서 다시 길 위에 나섰다.
그는 한참 뒤에 자복사 골목을 올라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잠깐 주춤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더듬어 올라가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