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 02

복수(福手)나 복인(福人)을 갖고 말하자면, 박참봉 이상 갈 사람이 이 고을 안에 있을 성부르지 않다. 재산을 두고 보아 그러하고, 자식이 사남일녀요, 손자 손녀가 모두 건강할 뿐 아니라, 생산된 자식 중에 역참을 당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이것을 두고 일러도 또한 그러하다. 가족이 모두 산해진미에 짓물리고, 사라능단(紗羅綾緞)에 휘감기어 있고, 비복이 방 안에 찼고, 막서리와 절게가 앞뒷방에 그득하고, 소와 말이 또한 한두 필이 아니니, 어느 모로 따져도 복에 떠 있는 사람을 부르자면 그 이상 가는 이가 없을 게다. 그러나 자기 일에, 자기가 나설 수는 없다. 그래서 자식 잘 기르는 구훈장(具訓丈)을 데려다, 형선이의 머리를 올리고 성복을 시키기로 했다.
오늘은 박참봉의 둘째 아들 형선이가, 강선루 뒤 정씨 집으로 장가를 드는 날이다.
박참봉은 지난밤은 큰집 사랑에서, 처남 되는 최관술(崔寬述)이와 같이 잤다. 그는 형선이가 장가가는 데 후행을 가기 위하여, 어제 저녁 이 고을서는 한 십 리 폭이나 되는 갱고지서 일부러 들어온 것이다. 최관술이는 삼십 고개나 겨우 넘었겠는데, 주둥이 위에 자개 수염을 뻐드럭하니 기르고, 또 머리를 반반히 깎았던 것이 적지 않이 좋았다. 낡은 습관을 엄숙하게 지키는 집안이라면 동학(東學)에 취한 최관술이를 보내서 안 될 일이 많겠으나, 마침 사돈 되는 정봉석(鄭鳳錫)이가, 이즈음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는 말이 돌아다니리만큼 개화사상에 흥미를 갖는 이므로, 이 고장서는 하나밖에 없는, 서울 출입 자주 하는 처남으로 손우수를 작정한 것이다. 신식으로다 내뻗치자면, 최관술이 당할 놈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둘이 다 한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참봉은 머리맡에서 살쩍을 내어, 머리카락을 몇 번 상투 있는 쪽으로 치쓸어 올리고, 안방에서도 들릴 만큼 한 번 목을 돋우어 침을 뱉었다. 하기는 이 기침 소리는 자고 깨나면 이즈음 유난히 목이 걸걸해지는, 가래를 돋우느라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복이나 마누라에게 자기가 기침을 하였노라고 알리는 신호로도 되었다.
자리끼 물을 북 끌어다가 양치를 울걱울걱 하고, 옷 괴춤을 허리띠로 가눈 뒤에 담뱃대를 끌어 나무재떨이에 떵떵 울렸다.
관술이는 윗목에 깔았던 요 속에서 鎗큼 일어나서, 조끼 주머니를 만지더니 담뱃갑을 꺼낸다.
"히로가 마츰 두 대 남았으니, 형님 이거 한 가치 피워 보소."
하고 한 가치는 제가 물고 또 한 가치를 내대면서, 이편 한 손으론 담뱃갑을 비비어 내버린다.
"응, 히로."
하고 입 속에서 중얼거리더니, 담뱃대에 담으려던 잎담배를 놓고, 관술이가 주는 궐련을 받아 든다. 입술 가운데에 오므라뜨려 물고 주머니에서 부싯돌을 꺼내서 불티가 튀게 마주치고 있는데,
"아니 이 닢성내를 쓰지, 거, 머 시끄럽게."
하면서 선반 위에 올려놓은 긴 대팻밥을 하나 꺼낸다. 대팻밥 끝에는 노란 인(燐)이 유황색으로 반짝반짝한다.
"다 됐쉐. 괜한 돈을 색여, 이게믄 심심치두 않구 좋은걸."
손끝으로, 불붙어 오르는 불깃을 꼬집어 들고 궐련 끝에 갖다 댄다. 서너 모금 뻐금뻐금 빠니 불은 담배에 옮아 붙는다. 관술이는 슬며시 잎성냥을 다시 바나나 뭉치처럼 묶어 놓은 속에 꽂고, 박참봉에게서 담뱃불을 빌려 온다.
"이놈 좀 독했으믄 좋겠데, 원 김빠진 술맛 같애서."
"깡초만 잡숫던 이야 뽕닢 말리어 피우는 맛일걸요."
안방에서 마누라가 나오더니,
"구훈장 아직 안 왔지요." 하고 물으며 자리를 가만가만히 개어 놓는다.
"내 자리는 내 개리다. 두어 두소, 뉘님." 하는 것을,
"두어 두게. 내 개게." 하면서,
"누구 사람 보낼까요?" 하고 재처 묻는다.
"두어 두소. 어젯밤 사람 보냈으니, 안 오리. 머, 그리 바쁘게 하구 어데 한 백 리 길을 갈랴우. 한고을 안인걸. 어서 최주사 세숫물이나 떠다 올리우다."
안으로 난 외짝문을 열고 마누라는,
"세숫물 사랑에 떠라."
하고 소리를 지른다. 문을 열어 잡은 채,
"어떻게, 조반 전에 해장들 하실라우."
하면서 영감과 제 오라비를 번갈아 본다.
"누님 고만두슈. 오늘 남의 집이 가면서 새벽부터 취하겠소."
하고 관술이가 말하는데, 참봉은 못 들은 척하고 나직이,
"구훈장이나 오거든."
할 뿐이다. 마침 구훈장이 마루 위에서 기침을 두어 번 한다.
"들어오우. 지금 안 온다구 사람 보내려든 참이오."
흰 두루마기에 갓을 단정히 쓰고 두 손을 맞비비면서, 오십 줄에나 든 구훈장이 들어서니, 최관술이 약간 궁둥이를 들었다 놓고, 주인 마누라는 살며시 뒷문으로 나간다.
"아직 새벽엔 춥습니다."
바른손으로 수염을 한번 싹 내려 쓸더니,
"얼음 풀린 데가 얼마 됐다구 춥지 않겠수."
하는 주인의 말에 또 한번 손을 마주 비비며 세웠던 다리를 주저앉힌다.
세숫물이 나오고 이어서 술상이 들어왔다. 그러나 모두들 가볍지 않은 책임을 앞에 둔 만큼 석 잔 이상은 하지 않았다.
곧 술상을 물리고 조반상을 받았다.
아침을 먹고 나선 구훈장을 데리고 안방 윗간으로 들어갔다. 이 방에서 형선이가 땋아 늘였던 머리를 올려 틀고, 옷을 바꾸어 입고 사모관대를 하게 마련이다.
문을 열어 보니 방 안이 텅 비었다.
"형선이 건너오구, 또 대야에 물이랑, 얼깃이랑, 모두 준비해 오나라."
이렇게 부엌과 맞은 방 쪽을 향하여 분부를 내리고,
"자 구훈장 들어앉으소. 최주사두. 난 밖에 나가 마바리꾼이랑, 권매상꾼이랑, 모두 조반들 먹었나, 좀 돌아보구 올 게니."
참봉은 담뱃대 쥔 손으로 뒷짐을 지고 중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휭하니 나간다. 허리끈에 찬 주머니와 담배쌈지와 돋보기가 움직일 때마다 일시에 출렁출렁 그네를 뛴다.
산산이 풀어 헤친 머리를 한편 목에 늘어뜨리고, 형준이와 함께 형선이가 토방으로 나서서 이편 마루로 옮아 선다. 형준이는 벙글벙글 웃는데, 형선이는 윗눈시울을 내리깔고 얼굴이 불그레해서 부끄러워한다.
"어째 머릴 안 깎구 그러는가 했더니, 장가갈 때 상투 한 번 틀어서 색시한테 뵐랴구 그랬구나."
하면서 저이 외삼촌인 최관술이가 바라보며 웃으니, 신랑 될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씽긋이 웃기만 한다.
"왜, 좋으냐."
하고 껄껄 웃다가, 문지방으로 들어갈 때 펑퍼짐한 웃지개를 보고는,
"아, 저 녀석, 저 어깨통 보게. 옛적으로 치자면 아들 삼형제는 밑졌다."
사실 열아홉 살이라면 대단히 늦은 장가다. 지금 머리를 밴밴히 깎고 히로를 붙여 물고, 서울 출입만 하는 최관술이 자신이, 열네 살에 장가를 들었는데, 그때에는 이것도 늦은 장가라고 아들 둘을 밑졌다고들 야단이었다.
"너이 색시가, 열아홉 되두룩 장가두 못 간 게 대체 어찌 된 병신인가 하구, 지금쯤은 조마조마해서 아침두 못 먹었을라."
하고 또 한번 제쳐서 놀려 대니, 건넌방에서 주인 마누라가 신부 댁에서 어저께 살쌍과 함께 가져온 신대의 옷을 들고 건너오면서,
"색시두 열아홉인걸, 이즈음 개화한 사람들이라 그래야 된답데."
하며 말참견을 한다. 문 밖까지 와서 마루에 아직도 그대로 서 있는 저희 오라비에게 옷보를 주며,
"아니 들어가지 왜 이러구 섰누."
한다. 관술이는 그제야 옷 보퉁이를 받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굳이 닫았다.
밑으로 땋아 내렸던 머리카락을 잡아 올려다 바짝 죄서 상투를 틀고, 농이로 바드득바드득 죄니 머리 밑이 아픈지, 형선이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꿇어앉아 있다.
"아프냐? 고것쯤이야 뭘, 남의 체니를 잡앗또리 할래문, 그만 아픔은 참으야지, 고, 좀, 밧싹 더 잡어댕겨 주우."
"외삼촌은 괘니 그럽네다레."
하고 형선이는 처음으로 입을 연다.
"어째서 언짢으냐. 네 형보구 물어 보름. 내 말이 괜한 말인가. 그런데, 너 참 색시를 한번 본 적이나 있니?"
이 말에는 형준이가 웃으면서,
"아마 본 적이 있게 혼삿말이 난다니 좋와서 하루 종일 밥두 안 먹었지."
하니, 형선이는,
"내가 왜 밥을 안 먹어, 여느 때보다 한 그릇이나 더 먹은걸. 뭐이 슬퍼서 밥을 안 먹어."
하고 흥 하니 코웃음을 친다.
"옳다. 그 말이 잘한 말이다. 늦장가들면서 기쁘믄 기뻤지, 슬퍼서 밥 안 먹을 일이야 없을 거라."
이러는 새에 상투는 다 틀어 올렸다. 상투 끝에 새빨간 산호를 꽂고 나서는,
"인젠 세수를 하시게." 하고 구훈장이 다시 한번 낯을 숙이어 형선이의 새로 단장한 얼굴을 엿본다.
머리채가 드리어서, 해에 그을리지 않은 곳이 유난히 희었다. 뒷데 석이 허청하여 솜털만이 보르르하고, 덜미가 형선이 자신에게도 한결 가뿐하다. 온순한 얼굴이, 덤부룩하던 머리카락을 다듬어 올리니, 갸름하여 더욱 이쁘장스럽다. 코밑에 수염으로 될락말락한 솜털이 아직 애숭이답게 보수수하다. 그러나 웃통을 벗어붙이고 꺼꿉 서서 세수를 하는 걸 보니, 팔과 어깨와 가슴이 어른 부럽지 않게 두드럭두드럭하다.
'저 팔과, 저 가슴과, 저 어깨로…….'
이렇게 등뒤에서 멍하니 아우의 모양을 내려다보던 형준이는, 제가 장가들던 날을 생각하면서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시절이나, 지금 생각하여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감격의 날이었다. 형선이 혼사가 대략 작정되었을 때 색시 선을 본다고, 어머니와 두뭇골 서모와, 그리고 형준이의 처가 셋이서, 정봉석이네 집을 찾아갔던 일이 있다. 이제 혼사는 절반 이상 된 혼사요, 이것은 일종의 형식에 지나지 않지만 다녀온 뒤엔 모두 색시 인물이 깨끗한 것을 칭찬하였다. 밤에 형준이가 아내더러 물으니, 얼굴은 반달처럼 실한데, 눈이 갸름하고, 콧날이 오뚝하고도 끝이 뾰죽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그마한 입술이 귀엽더라고 한다. 뒷자태가 바르고, 땋아 늘어뜨린 머리채가 궁둥이 밑에까지 치렁치렁하더라고. 그래 은근히,
"자네 체니적보담두 곱던가."
하고 물었더니,
"별말씸을 다."
하면서 옆구리를 약간 찌르는 듯하고,
"나 같은 촌 체니가 머."
하면서 씩 웃는다.
"난 그래두 자네가 제일 고운데." 하고 또 한번 빈정대었더니, 진정 노하기나 한 듯이,
"아이가 둘씩 되는 늙은 할밀 두구……." 하면서 나직이 한숨까지를 짓는다.
지금 겨우 스물셋에 이렇게 낙심을 하는가. 그래서 두득두득 잔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러나 그의 육체에서 전날과 같은 땐땐한 굳은 탄력이 없어진 것만은, 형준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튿날 형선이놈이 학교에 갔다가 오는 걸 붙들고서, 연자간 뒤로 갖다 세우고,
"너 형선이, 호박이 넝쿨째 떨어졌다."
하니, 무슨 영문인 줄은 모르고,
"왜, 내가 무슨 삼십육계를 했소."
한다.
"엑키, 삼십육계에만 호박이 떨어지냐. 그보담두, 이건 참 진짜루다 횡재한 셈이다. 아니, 네 혼삿말 난 정좌수 딸이 양귀비 찜쪄 먹게 곱드라는구나."
하고 어깨를 툭 내려쳤다. 아우는 와락 형의 팔을 자기 어깨로부터 뿌리치고 힝하니 달아나며,
"괜한 소리."
하였지만 그의 입은 터진 팥자루처럼 벌어져 있었다.
이렇게 한갓 되지 않은 생각을, 형준이가 두루두루 하고 있는 동안, 형선이는 소금으로 양추질을 하고, 더운 물에다 낯을 씻었다. 그리고는 옷보퉁이를 끌러서 흰 명주바지에 옥색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도리불수 조끼를 입은 뒤에, 삼성 버선을 한편으로 몰아쳐 신고 나서 옥색 대님을 질끈 졸라매었다. 훌쩍 일어나서, 장날 화장수한테 갓 사다 매었던 실로 땋은 허리끈을 뱀 사리듯 내동댕이치고, 전반처럼 넓게 접어 온 새 끈으로 바지 괴춤을 느즉하니 잡아맨다. 새총 바지가 된 무종아리를, 잡아 내려서 옹구뿔 바지통을 만들고, 덤덤히 자기 옷 입는 품을 바라보고 섰는 세 사람의 눈이 부끄러워, 슬그머니 돌아서서 두루마기를 쳐들어 올렸다. 그래도 웃음이 자꾸 나와서 참기가 거북하다. 괜한 실없는 웃음이 이렇게 실뚱한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지, 자기로서도 제 마음을 알 길이 없다.
두루마기를 입고 난 뒤에, 다시 단령을 입고 사모를 쓰고 각띠를 띠었다. 이제는 사선을 들고 말안장 위에 올라앉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곧 출발을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성복을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뵌 뒤에, 다시 두루마기까지를 벗고 나서 그는 비로소 여태껏 굶었던 빈 뱃속에 아침밥을 넣었다. 그러나 밥도 잘 안 먹혔다.
십이봉 밑을 꽉 얼어붙었던 두터운 땅덩지 같은 얼음이, 시루떡처럼 구멍이 숭숭 뚫어져서 그것이 노전떼만큼씩이나 크게 틈이 갈라지더니, 연사흘을 두고 쉬일 새 없이 너부주룩하니 흘러내렸다. 이것이 맑히 흘러내린 뒤엔, 물이 유난히 탁해지고, 수위가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다. 다시 물이 맑아지고 수위도 제대로 가라앉을 무렵이면, 십이봉 양지바른 곳엔 산들산들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마다 물이 올라서 목화씨같이 엄눈에 살이 오른다. 아침 저녁은 추우나, 대낮에 해가 쨍쨍 내리쬘 때엔 포근하게 따스하다. 긴 하루 해가 지리하게 졸림을 부르는 시절이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씨다.
얼마 아니해서 오정이 되리라는 때에, 형선이는 많은 사람이 둘러선 가운데서 받들어 주는 사람도 없이 말안장 위에 鎗큼 올라앉았다.
박참봉네 행길 건넛집은 이칠성(李七星)이네 집이고, 윗집은 나카니시 상점이고, 아랫집은 조그만 사탕장수라고, 깨엿도 놓고 호두엿도 놓았는데 진소위 사탕이라 명칭이 붙는 것으론 채다리과자와 얼음과자가 작은 나무통에 들어 있는, 김용구네 집이다. 사나이라고 생긴 건 아이까지 나서고, 늙은 여편네들도 부엌 챙 바자 앞에 나섰다. 바자 틈으로 힐끗힐끗 흰 그림자가 보이는 것은, 행길가에 나설 수 없는 젊은 아낙네와 나이 찬 처녀들이 숨어서 행길 쪽을 엿보는 탓이다. 나카니시네 집에서는 본시 나카니시가 혼자 홀아비생활을 하고 있으니, 다른 누구가 나설 이도 없다. 처음에 체부(遞夫)를 다니면서 처음 이곳에 온, 이 나카니시는, 그 뒤에 진위대(鎭衛隊)가 없어지면서 수비대가 얼마간 주둔해 있을 때에, 용달을 맡아서 일 년 안짝에 적지 않은 이를 보아 지금은 제법 큼직한 잡화상이 되었다.
아래 윗거리에서도, 부잣집이고 행세하는 집들간의 혼삿날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이 쓸어 모이었다. 이 집과 친히 내왕하는 사람은 박참봉 옆에 서 있고, 거래가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은 저희끼리 두세 사람씩 패를 지어 수군거리며 말 있는 행길 가운데를 구경하고 있다.
신랑이 타고 있는 둘째 번 흰 말이나, 후행이 탈 갈색으로 팡파짐하니 다부지게 생긴 노새나, 안부(雁夫)가 탄 맨 앞에 자그마한 당나귀나, 모두 박참봉 제 집에서 친히 기르는 짐승들이다. 흰 말과 당나귀는 먼 길을 갈 때나, 추수할 때 타작하러 가느라고 가끔 타고, 노새는 연자질을 시키느라고 손수 먹여 기른다.
길 가운데 서서 수많은 눈이 저희들을 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발굽을 울리며 커다란 눈을 꺼벅거리고 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바리꾼에게 줄 것으로 흰 무명 세 필을 한 끝씩 풀어서, 안장과 짐승의 코숭이와 꼬리 있는 데까지 희게 줄을 늘인 것이, 풍족해 보여 볼품이 좋았다. 말꾼들은 말초리가 끝에 붙은 채찍을 등골에 꽂고, 말꼽지를 단단히 밭게 붙들고서, 그 중의 한 사람은 말의 머리를 가만가만히 쓸어 주고 서 있다. 기러기를 안은 구훈장이 탄 당나귀 앞에 저만치 앞서, 권마성꾼 둘이 서서 박참봉 쪽을 눈이 찌그뚱해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고함 소리가 청 높은 염불처럼 거리를 뒤흔들 때엔, 말방울이 울고, 말꾼의 채찍이 보기 좋게 말 궁둥이를 후려갈기는 때이다.
모든 준비가 되었는데 박참봉과 후행 갈 최관술이가 대문 안에서 무슨 일인가 수군거리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쪽으로 쏠려 있다. 말탄 채 벌써 적지 않은 동안을 기다리고 서 있는 구훈장과 신랑도, 궁금해선지, 하나는 기러기를 안고, 또 하나는 뻔히 사선을 든 채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야기는 최관술이가 쓰고 있는 국자보시를 벗고, 갓을 대신으로 쓰라는 교섭이다. 그러나 최관술이는 좀처럼 박참봉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 고을서 쓰는 개화된 신식 모자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학도들이 쓰는 삽포―---다시 말하면 학생모자가 그의 하나요, 학도 아닌 사람이 쓰는 국자보시가 다른 또 하나다. 국자보시라는 건 헌팅 비슷한 건데, 이곳서는 그것을 도리우치라고도 안 하고 국자보시라 한다. 물론 그것을 쓰는 사람도 별로 없다. 최관술이가 금테로 만든 개화경을 코허리에 걸고 검정 명주두루마기에 발목덜미까지 높이 엮어 올린 구두를 신고, 반반히 깎은 머리 위에 뎅그렁하니 올려놓은 것이, 이 국자보시란 게다. 그는 다시 울퉁불퉁한 황양목을 껍질을 벗겨서, 옹지 있는 곳을 약간 불로 태워 그것을 개화장이라 짚고 다닌다.
다른 것 다 말고, 저 덥부룩하니 깎은 머리 위에 홀랑하니 방정맞게 올라앉은 꼭지 있는 바리깨 같은, 국자보신가 젓가락보신가 한 것만 벗어 버리고, 그 대신 구훈장처럼 점잖은 감투와 갓만 써준다면, 그까짓 코허리가 시근시근한 개화경이니, 개백정들이나 들고 다닐 개화장이니 한 것 같은 건, 그런대로 모른 척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박참봉은 이왕 신식 사람을 보내는 바엔, 그가 어떠한 모양을 하건 눈감아 두려 했었는데, 정작 말이 나서고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처남이 하고 있는 품을 바라보니, 아무래도 마음 한모퉁이가 께름하고 믿음성이 가지 않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자가 우겨 대는 판국이니, 지금 이 자리에서 아웅다웅 다투고 있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소견대로 하라고 내맡기니, 최관술이는 자개 수염을 한번 비비고, 성큼성큼 개화장을 둘러 가며 노새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말을 타고 개화장을 두를 수도 없는 터이라, 말 옆에 우뚝 서서 몽둥이를 휭휭 객쩍게 둘러본 뒤에, 그놈을 난뜨럭 말안장 앞에다 가로 찔러 끼운다. 휙하니 말 위에 올라타더니 한번 개화경을 햇빛에 번쩍하니 빛내이고,
"자, 가자구."
하면서 발뒤꿈치로 노새 배통머리를 가만히 두어 번 찌른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잔뜩 대기하고 있던 권마성꾼이,
"아― 아으아―"
하고 앞에서 목청을 돋워 세워서 소래기를 지른다. 당나귀가 아장거리고, 신랑 탄 흰 말이 꼬리를 두어 번 치다가 떼꾹떼꾹 걸어간다. 새서방은 사선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앞에 우쭐거리는 먼 앞길을 황홀하게 비치어 본다. 손우수가 탄 노새도 냉금냉금 발굽을 두어 번 구르듯 하더니, 방정맞게 외해행 소리를 치며 앞말을 따라간다. 말이 강선루를 바라보며 앞으로 움직이는 대로, 권마성과 말방울 소리에 맞추어 구훈장의 갓과 신랑의 사모와 손우수의 국자보시가 후물후물 춤추듯 한다.
강선루 앞에서 망을 보던 아이놈이, 먼 데서 권마성 소리가 나고, 말과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보더니, 풀맷돌처럼 날쌔게 달음질을 쳐서 정좌수네를 향하여 뛰어간다. 눈앞에 정좌수네 집 대문이 보이고 그 앞에 많은 사람이 아물거리는 걸 보고는 바른팔을 내두르며,
"샛시방 온다. 구릉다리께 지냈다."
하고 아직 구룡교에 다다를 겨를도 못 된 것을 보탬을 해서 지저귀어 댄다. 이 아이놈의 소리를 받아 가지고, 대문 밖에서 어정대며 잔심부름을 하던 축들이, 두서넛 안마당으로 뛰어들어가며,
"샛시방 구릉다리께 지낸 지 오래다니, 어서 상 준비하우."
하고 소래기를 지른다. 이 말은 순식간에 마당과, 후간과, 청간과, 부엌과, 움 안에까지 퍼져 나갔다.
과방간에서 큰상을 고이 든 과방꾼들이 약과 과줄을 산같이 괴어 놓은 목구를 옮겨 주고 옮겨 받으며,
"빨리빨리 합세다. 샛시방 문 밖에 왔답네다."
하고 수선을 피운다. 신랑이 들어앉아 큰상을 받을 안방 웃간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호랑요를 깔던 이 집 막서린가 누군가는 뒤꼍에 펼쳐 놓은 산수 병풍을 바라보면서 툇마루로 뒷걸음을 치다가, 엉겁결에 실족을 하여 뜰 가운데 비스듬하니 나가떨어져 뒹굴었다. 남이 아프거나 말거나, 모두 와― 하고 웃는 가운데서, 넘어졌던 자는 궁둥이를 턱턱 털며, 소리난 것 봐선 별로 다친 곳도 없는지 제풀에 벌씬 웃고 돌아서는데, 사랑 뒷문을 열고, 떠들어 대는 안마당에 눈을 돌렸던 정좌수가 일의 사연을 알고 별반 상처난 것도 없는 것을 안즉,
"덤베지들 말구 조심조심히 해라."
하고 나직이 기별을 하고는 문을 도로 닫는다. 부엌에서도 이것을 내다보고, 국숫물을 끓이던 용네 어미가, 뒤뜰 안 움 잔등에서 떡에 참기름을 바르고 있던 주인 마누라에게 달려가서,
"마루에서 떨어져서 누가 다리를 상한가 봐요. 지금 막 밖에까지 샛시방이 왔다는데. 다리를 삐었는지 부러뜨렸는지 일어나질 못하고 쩔름거립네다."
누가 상하였다는 바람에 주인 마누라가 떡함지를 놓고 부엌으로 뛰어나와 안뜰을 내어다보니, 별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지도 않다. 모두 음식을 들고, 과방간으로 왔다갔다하는데, 어디 한 사람치고 몸에 상처를 입은 이가 있는 성싶지 않다.
"누가 업구 사랑엘 갔나."
하고 용네 어미가 그 뒤의 일을 조사하러 뜰 안으로 나가려는 것을 원반 할 만두를 빚고 있던 부인네 하나가,
"상하긴 뭐이 상했다구 용네 엄매는 저러구 댕기나."
하는 바람에, 두룩두룩 여러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는데 벌써 주인 마누라는 용네 어미의 허풍선인 것을 알아차리고 그대로 떡함지 있는 움 잔등으로 간다.
사랑에서는 신랑 일행이 오기를 대기하고 있는, 인접과 손대들이 모두 의관을 갖추고 부슬부슬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권마성 소리가 안 들리니 아직 강선루 앞에두 안 온가 부다. 너머일즉 나가 뭘 하간."
하고 정좌수는 여러 젊은이들에게 말하였으나, 자기 자신도 일어나서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었다.
강선루의 옆 담장을 휙 돌아서니,
"아― 아으아―"
하는 권마성 소리가 유난히 높이 들려 오고 이어서 구훈장 탄 당나귀가 빼뚝빼뚝 나타난다. 신랑 탄 흰 말과 그 뒤로 최관술이의 국자보시가 보이면서, 올숭졸숭한 많은 아이들이 옆으로 뒤로 따라선 것이 보인다.
"기러기 안은 건 구훈장이구, 손우수는 갱고지 최주사로구만."
하고 눈 밝은 젊은이들이 떠들어 대는 것을, 정좌수는 대문 아래 서서 먼발로 일행이 올라오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새서방이 왔다는 바람에, 일하던 사람들까지 일손을 놓고 모두 대문 밖으로 몰려나왔다. 부인네들만이 안타까운 생각을 누르고서 부엌 안에서 허성대었다. 본시 바탕이 없는 여편네들만은 사나이 장정들 틈에 끼어, 시시덕거리며 말 위에 탄 신랑을 보고, 다시 노새를 탄 최주사의 모양을 웃었다. 이 고장서는 볼 수 없는 가죽구두를 신고 머리 위에도 뭔가 별스러운 걸 썼다. 미상불 이들에게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므로, 놀랍고도 우습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럿이 부축해서 신랑을 말께서 내려 세우니, 파란 명주두루마기를 입은 젊은 인접이 두 사람, 그를 안내해 대문 안으로 데리고 가고, 안부와 후행은 손대가 나서서 사랑으로 인도한다.
"최주사, 수구러히 오셨습네다."
하고 인사를 하니, 어느 새에 빼어 들었는지, 개화장을 두르며 걸어오던 최관술이는, 바른손으로 국자보시를 벗어 들고,
"천만에 말씀이올세다. 퍽이나 바쁘시겠습네다."
하고 전부터 안면이 있는 정좌수에게 마주 인사를 한다.
"춘부장께서도 안녕하시겠습지요."
하고 다시 한번 정좌수가 인사말을 하니,
"덕분에 건강하올세다."
하고 대답한다. 그들은 사랑으로 들어갔다. 엮어 올린 구두끈을 끄르느라고, 한참이나 마루에 꺼끕 서서 어물거리는 최관술이를, 행길에 서서 바라보고 있던 어린 아이놈들은 구두 속에서 나오는 것이 흰 버선이 아니고 까마툭툭한 양말인 데 또 한번 놀라,
"야 저게 구두 버선이다. 가죽으루다 맹그른 겐데, 아마 백 냥 남아 한대."
하고 한 아이가 아는 듯이 설명을 한다. 나카니시 상점에서도 구두 버선은 파는 것이 없었다. 한 켤레밖에 없는 구두 버선은, 가죽으로 만들기는 샘스러, 발뒤꿈치가 나간 것을 삼성 조박지로다 잡아 옭아 매었다. 그러나 최관술이는 의기양양해서 개화장을 마루에 세워 놓고, 개화경을 번쩍이면서 방 안으로 들어간다.
안방 윗간에서는 지금 막 큰상을 들인다. 가운데 앉은 신랑의 상이 들어가고 양쪽에 앉은 두 사람 인접의 상이 들어간다. 절편, 증편, 이차떡, 조차떡, 설기떡으로 높직하니 다섯 목구가 높은 축대처럼 올라 앉았는데 흰 과실, 붉은 과실이 한 목구씩, 약과가 첨성대처럼 한 목구, 이 밖에 깨다식, 콩다식, 지짐, 산적, 행적, 파적, 사과, 배, 날밤, 대추 빠진 거 없이 듬뿍이 쌓아 올렸다. 그 위에는 오색이 영롱한 갈꽃이 한 떨기씩 꽂히어 있다. 세 개의 상이 가지런히 놓인 앞으로, 국수 그릇과 술잔과 은수저가 놓인 작은 상이 곁따라 놓였다.
구훈장네 서당에서 지난 밤새도록 구훈장더러 단자를 베껴 가지고 온 어린 총각아이들이, 마루에 한 뭉치 모여 앉아서 단자 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입월복기삼(立月卜己三)'이니, '좌칠우칠횡산도출(左七右七橫山倒出)'이니 뭐니 하고 여남은 장 써가지고 그 중의 한 장을 인접을 통해서 들이니, 신랑의 학식을 시험하느라 사람은 백차일 치듯 마루와 뜰 안에 둘러섰다.
부엌 안에서 작은사위의 얼굴을 엿보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큰딸이 쪼루루 사람들 등뒤에서 신랑의 얼굴을 보고 와서,
"얌전한 게 새서방이 곱게 생겠소다."
하는 바람에 주인 마누라는 벌써 오무라지기 시작한 볼편과 입 가상으로 해족하니 웃음을 짓는다. 용네 어미가 또 손을 내두르면서 뛰어 들어오며, 큰딸이 있는 것도 모르곤지,
"큰사위 둘 가지구두 못 당하겠쇠다. 아니 이게 남중절색이 아니외까. 오마니두 참 잘 맞었단 말요. 엥이 나두 고런 새서방이나 한번 얻어 봤으믄."
하고 객쩍게 웃어 보다가, 옆에 입을 딱 다물고 섰던 이 집 큰딸을 발견한즉,
"어머니는 딸두 잘 나섰거니와 사위두 잘 맞으신단 말이에요. 아니 어쩌면 큰사위가 그렇게 인물이 절색인데 또 작은사위마저 저렇게 곱답네까."
하고 다시 마당으로 뛰어나간다.
인접에게서 단자가 온 것을 힐끗 보더니 들려 주는 붓은 받지도 않고, 형선이는, 옆에 있는 인접에게,
"그대루 물레 주우."
하고 나직이 말한다. 모든 사람은 적지 않이 실망하였다. 서당 공부도 상당히 했고, 벌써 몇 년째 기독학교니 동명학교니를 다니는 학도니 만큼, 십여 장의 단자 같은 건 훌훌 써 내갈길 줄 알았던 그들은, 아예 들이댈 척도 안 하는 신랑의 태도에 실망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상을 안 주겠다면커니와, 딴말 없이 물리라는 데는 다시 두말이 있을 수 없다. 인접이 대신하여 커다랗게 '퇴(退)'자를 써서 내갈기니, 이 소리를 부엌에서 들은 신랑의 장모는,
"단자상은 따루 채려 올릴 게니, 큰상은 그대루 둬두소."
하고 밖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큰상은 웃어룬들이 계시다니 보내 올려야 하겠소다."
하고 다시 뇌우친다.
큰상을 놓아 둔 채 원반상이 들어왔다. 만둣국에 흰밥을 만 것이다. 인접이 권하는 대로 신랑은 술을 들어 원반을 몇 술 떠먹었다.
"만두 세 개는 먹어야 첫아들을 본다네."
하고 어느 늙은 노파가 놀려 대니 모두들 와 하고 웃어 댄다. 그러나 형선이는 만두 한 개를 먹었을 따름이었다. 사랑에서는 주안이 한참 벌어져 있었다.